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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ㅣ 책세상 세계문학 3
다자이 오사무 지음, 정회성 옮김 / 책세상 / 2021년 11월
평점 :
인간 실격
사진 석 장, 인생 세 고비
이 소설은 <머리말>과 <맺는말> 사이에 갈무리 된 세 개의 수기로 이루어져 있다.
<머리말>에서 사진이 석 장 소개된다.
나는 그 남자의 사진 석 장을 본 적 있다.
한 장은 남자의 어린 시절이라고 해야 할까. 넓은 줄무늬 하카마를 입은
( ........)
정원 연못가에 서서 보기 흉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다. 보기 흉하게?
(.......)
두 번째 사진의 얼굴은 깜짝 놀랄 정도로 변해있다. 교복 차림인데, 고등학생인지 대학생인지 확실하지 않다. (..........) 그런데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잘 생긴 학생에게는 왠지 모를 으스스한 기운마저 느껴진다.
나머지 한 장의 사진이 가장 기괴하다. 나이부터 전혀 가늠이 안된다. (9-11쪽)
이렇게 석 장의 사진이 이 책의 주인공 요조를 설명해준다.
그런 <머리말>에 이어서 세 개의 수기가 전해진다.
요조 자신의 1인칭 서술로 이어지는 수기가 이 소설이다. 그 내용은 스포일러가 되니 소개하지 않으련다.
몇 개 짚고 넘어가자.
이 소설의 저자와 이 소설의 주인공
간단히 말해, 동일인이다.
이 소설을 다 읽고, 저자인 다자이 오사무의 소개를 읽으니, 이 소설은 자전적 소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저자는 몇 차례의 자살 시도 끝에 도쿄 미타카의 다마강 수원지에 투신하여 삶을 마감하였고, 주인공도 자살 시도를 하며, 결국은 자살로 추정되는 삶을 끝냈다. (135쪽)
“집에 돌아갈래” - “나 다시 돌아갈래!”
삶의 어느 단계에서 요조는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한다.
상자안에 든 것을 한입에 털어넣고 컵에 담긴 물을 침착하게 마신 뒤 전등 스위치를 내리고 그대로 잠들었습니다.
사흘 밤낮을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고 합니다. ( ............) 의식이 돌아온 내 입에서 맨먼저 튀어나온 헛소리는 “집에 돌아갈래”라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어느 집을 가리키는 말이었는지 당사자인 나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그렇게 중얼거리며 처량하게 울었다고 합니다. (117-118쪽)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오버랩되는 장면이 하나 있다.
설경구 주연의 영화 <박하사탕>에서 철교를 배경으로 하여, 두 손을 높이 들고 ‘나 돌아갈래’라고 외치는 장면이다.
그 장면은 이내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겠다는 것인가"이며,
다른 하나는 "왜 돌아가겠다는 것인가"이다.
똑 같은 질문을 요조에게 던질 수 있다.
어떤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인가?
왜 그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인가?
그래서 다시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요조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가 원하는 삶은 어떤 것이었는가?
그저 돌아가서 편히 쉴 수 있는 집이 그의 행복의 조건이다.
그는 일생 동안, 편히 쉴 수 있는 자신만의 집이 없었다.
무슨 부동산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는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났지만, 그래서 집 자체가 없었다는 게 아니라 그가 마음 놓고 쉴 공간인 집이 없었다는 말이다.
그런 공간이 없어 그는 자연 떠돌이가 되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정착지를 찾아낼 수 없었다.
천사같이 착한 사람이 왜?
그런 행복을 왜 요조는 찾아내지 못했을까?
그 답이 <맺는말>에 나온다.
그를 알던 마담이 전해주는 말이다.
“우리가 아는 요조는 아주 순수한 데다 남 배려할 줄도 알고, 술만 마시지 않으면, 아니 마셔도....천사같이 착한 아이였어요.” (135쪽)
천사같아서 세상을 힘들게 살았단 요조, 그는 왜 행복을 찾지 못했을까?
주인공 요조에게 그런한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 자신이다.
그가 고백하는 불행의 단서들을 여기저기에서 포착할 수 있다 .
말하자면 언제부터인가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 아이가 된 것입니다. (17쪽)
말수가 적은 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상대방과 나 사이에 무시무시한 침묵이 가로 놓일까 두려워 필사적으로 어릿광대짓을 해 왔는데, (........) (44쪽)
겁쟁이는 행복조차 두려워합니다. (59쪽)
반쯤 포기한 상태에서 어릿광대짓으로 적당히 얼버무리거나 말없이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모든 것을 상대방에게 맡기는, 말하자면 패배자의 태도를 취했습니다. (75쪽)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주는 능력이 내게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79쪽)
내 불행은 거부할 능력이 없는 자의 불행이었습니다. 권하는 것을 거부하면 상대방 마음에도, 내 마음에도 영원히 메울 수 없는 커다란 틈이 생길 거라는 두려움에 괴로워했습니다. (127쪽)
그런 불행의 조건을 지니고 살아간 요조, 그는 심지어 스스로 ‘인간 실격’이라 자신을 평한다.
언젠가 이곳에서 나가더라도 내 이마에는 미치광이, 아니 폐인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을 것입니다.
인간 실격.
이제 나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닙니다. (128쪽)
그는 그렇게 해서, 인간 역사에서 한 점을 찍는다.
그래서 이 소설의 제목이 『인간 실격』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