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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한 번은 읽어야 할 시경 - 완역본 ㅣ 옛글의 향기 8
공자 엮음, 최상용 옮김 / 일상이상 / 2021년 10월
평점 :
인생에 한 번은 읽어야 할 시경
『시경(詩經)』은 공자가 편찬했다고 알려진 중국의 고전이다.
『논어』 「위정편」에 “시경 삼백여 편은 한마디로 사악(邪惡)함이 없다”는 구절이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시경을 읽고, 그 시에 의탁하여 인간의 희로애락을 노래해 왔다.
시경에는 『시경』에는 인간의 감정을 제대로 살펴볼 수 있는 노래가 그대로 담겨있다.
이 책은 그러한 『시경』을 우리말로 번역해 놓은 것이다.
이 책의 특색을 살펴보자.
첫째, 각주나 해설등이 전혀 없다.
둘째, 본문에 대한 해설 역시 보이지 않는다.
셋째, 다른 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본문의 한자에 대한 해설 역시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이 책에는 오로지 원문과 번역문만 보인다.
그런 점이 특색이다.
맨처음 이 책을 손에 잡고 시를 읽어가면서, 그러한 점이 의아했다.
왜 이 책은 원문 한자나, 본문에 대한 배경 설명들 그러한 것이 없을까?
심지어 어떤 책을 읽어보았는데, 거기에서는 이런 식으로 분문 해석 이외에 다른 것들을 덧붙여 놓았다.
『시경』에 대한 전반적인 해설
각 편에 대한 해설
본문에 대하여는, 배경 해설, 번역문, 원문, 원문의 한글 표기, 해의(解義). 주(註).
그런데 이 책은 그러한 부수적인 해설이 전혀 없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를 본문을 읽다가 깨닫게 되었다.
소남(召南)편의 풀벌레[草蟲]라는 시를 읽어보자. (23쪽)
우선 첫 연만 읽어보자.
풀벌레 울고 메뚜기 뛰어놉니다. 당신은 보이지 않으니 우울한 내 마음은 미어집니다. 당신을 본다면 당신을 만난다면 내 마음이 가라앉으련만. ??草蟲, ??阜?. 未見君子, 憂心??. 亦旣見止, 亦旣?止, 我心則降. (요요초충, 적적부종, 미견군자, 우심충충, 여기견지, 역기구지, 아심즉강) |
시에 대한 아무런 해설이 없다. 한자나 시의 배경 해설이 없으니, 시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그런 해설에 의지하지 않고, 온마음을 기울여 시를 쓴 사람, 여기서는 여인, 그것도 남편 또는 정인이 어딘가 나가 있는 여인이 그리운 정을 못 이겨 부르는 노래를 듣는다. 음미한다.
처음에는 자연을 노래한다. 외부로 시선을 돌려서 풀벌레 소리도 듣고 메뚜기 뛰어노는 것도 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런 것들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낭군 생각이 떠오른다. 그의 빈자리가 못내 아쉬운 것이다. 그런 그리움은 이내 그가 어서 돌아오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바뀐다.
그가 돌아온다면, 그를 만난다면, 내 마음이 가라앉을 텐데, 하는 바람을 섞은 아쉬움으로 시를 마무리한다.
그 여인의 심정이 그렇게 절절하게 마음에 와 닿는 것이다.
만약 다른 여러 가지 해설이 붙었다면, 거기에 신경을 쓰느라, 정작 시에는 관심이 덜 갔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편집하는 것이 의외로 시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렇게 우리말 번역을 읽어보면서 바로 그 밑에 있는 한자를 같이 읽어보다가 맨 마지막 我心則降(아심즉강)에 눈이 머물렀다. 그걸 번역하기를 ‘내 마음이 가라앉으련만’으로 해 놓았기에 ‘강(降)’을 찾아보았다.
‘강’ 또는 ‘항’으로 읽는 한자인데 여기서는 가라앉는다로 번역이 되고 있기에,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이런 해설이 나온다.
강(降) 내려가다. 나의 마음의 근심이 내려가다. 마음이 가라앉는 것,
(『시경』, 이가원 감수, 35쪽)
이렇게 해서 시를 제대로 읽어보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전에 다른 시경 책을 읽을 때에는 관련된 해설을 읽기에 급급한 나머지 정작 시는 뒷전이었으니, 이제야 시의 맛을 느껴보게 된 것이다.
나머지도 마저 읽어보자.
저 남산에 올라서 고사리를 뜯었습니다. 당신이 보이지 않으니 우울한 내 마음은 미어집니다. 당신을 본다면 당신을 만난다면 내 마음이 기쁘련만. 陟彼南山, 言采其蕨. 未見君子, 憂心??. 亦旣見止, 亦旣?止, 我心則說. (척피남산, 언채기궐, 미견군자 우심철철, 역기견지, 역기구지, 아심즉열) |
마지막 한자 說은 기쁠 '열'이다. 이 경우에는 ‘설’이 아니라 ‘열’로 읽는다.
님을 기다리는 그 여인, 낭군을 어서 만나 기쁨을 나누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를 읽어본다.
저 남산에 올라서 고비를 뜯었답니다. 당신이 보이질 않으니 우울한 내 마음은 서글퍼집니다. 당신을 본다면 당신을 만난다면 내 마음이 평온해지련만. 陟彼南山, 言采其薇. 未見君子, 我心傷悲. 亦旣見止, 亦旣?止, 我心則夷. (척피남산, 언채기미, 미견군자, 아심상비, 역기견지, 역기구지, 아심즉이) |
또 하나 읽어보자.
소아편 (無將大車)라는 시다. (241쪽)
큰 수레를 따라가지 마라. 다만 자신만 먼지를 뒤집어쓸 뿐이라네. 온갖 걱정일랑 하지 마라. 다만 자신만 병들 뿐이라네. 無將大車, 祇自塵兮. 無思百憂, 祇自?兮. (무장대거, 기자진혜, 무사백우, 기자저혜) 큰 수레를 따라가지 마라. 다만 흙먼지로 길이 어두울 뿐이라네. 온갖 걱정일랑 하지 마라. 목침에서 벗어나지 못할 뿐이라네. 無將大車, 維塵冥冥. 無思百憂, 不出于?. (무장대거, 유진명명, 무사백우, 불출어경) 큰 수레를 따라가지 마라. 다만 흙먼지만 길을 막을 뿐이라네. 온갖 걱정일랑 하지 마라. 다만 스스로를 괴롭힐 뿐이라네. 無將大車, 維塵雍兮. 無思百憂, 祇自重兮. (무장대거, 유진옹혜, 무사백우, 기자중혜) |
여기서 지혜 한 조각 얻어듣는다.
큰 수레를 따라가지 마라. 다만 흙먼지만 길을 막을 뿐이라네.
거기에 덧붙여 말하길,
온갖 걱정일랑 하지 마라, 즉 .無思百憂!
그러니 시경을 읽으면서 시의 감흥도 느껴보고, 세상사 염려하지 않고 살아가라는 말씀도 듣게 되니, 일석이조다.
그러고 보면, 두 번째 시를 첫 번째 시를 짓던 그 여인이 읽었더라면 잠시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멀리 떠난 낭군도 곧 돌아올거니. 온갖 걱정일랑 하지 마라, 즉 .無思百憂! ,
이런 마음 갖게 되는 것, 이게 바로 『시경(詩經)』의 진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