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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들 - 냄새로 기억되는 그 계절, 그 장소, 그 사람 ㅣ 들시리즈 4
김수정 지음 / 꿈꾸는인생 / 2021년 11월
평점 :
냄새들
‘냄새가 난다’고 하면 무언가 의심이 간다는 의미렸다.
해서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냄새가 난다고 하면 잘 못된 표현이 될까봐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이 책에서는 ‘냄새가 난다.’ 분명 난다.
제목이 『냄새들』이니 냄새가 안 날 수가 있나? 냄새 난다. 좋은 냄새가.
이 책에서처럼 냄새를 깊이 들이마시고, 맡고 파들어간 글, 아마 처음인 듯 싶다.
별의별 냄새가 다 있다. 마치 냄새 박물관 같다.
다 찾아 적자니 너무 많아 그 중에서 냄새 진한 것으로 몇 개 추려본다,
이런 냄새 느껴본 적이 있는지?
후각은 참 신기하기도 하지. 여행지의 사진만 보아도 그때 그곳의 냄새가 느껴진다. 병에 담아온 것도 아닌데 여행지의 비 냄새, 바다 냄새, 나무 냄새가 사진 한 장으로 고스란히 맡아진다. (56쪽)
이 글을 읽고 나도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꺼내 보았다. 사진만 보고도 과연 냄새가 느껴지는지? 느껴졌을까? 느끼긴 했다. 오래된 사진에서 날법한 냄새, 표현하기도 어려운 그런 ‘오래 됨’의 냄새만 맡았을 뿐, 비 냄새, 바다 냄새는 맡을 수 없었다. 그러니 내가 이런 글을 못쓰는 것 아닌가? 당연하다.
아, 저자가 맡았다는 냄새중, 나도 맡았던 게 있다. 다음과 같은 냄새.
책장을 넘길 때 코끝에 닿는 파삭파삭한 책 냄새도 좋았다. 책의 종류에 따라 냄새가 달랐다. 양장본은 냄새도, 촉감도 매끈했다. 재생지로 만든 책에서는 오래된 종이 냄새가 났고, 올컬러 책에서는 사인펜 냄새가 느껴졌다. 책마다 냄새가 다르다는 건, 책을 대하는 나의 마음도 달라진다는 뜻이었다. (153쪽)
‘올컬러 책에서 맡았다는 사인펜 냄새’를 제외하고 거의 다 맡은 것도 같다.
이런 글, 기억해두고 싶다,
이런! 저자의 감성에 나도 모르게 젖어들어 이런 것 느껴본다.
저자는 <비오는 날의 수채화> 가사를 옮겨놓고 있는데, 어라, 이 노래 알고 몇 번 분명 부른 적이 있건만, 가사를 눈으로 다시 읽어보니, 내가 알던 노래가 아닌 듯 새롭게 다가온다.
빗방울 떨어지는 그 거리에 서서
그대 숨소리 살아있는 듯 느껴지면
깨끗한 붓 하나를 숨기듯 지니고 나와
거리에 투명하게 색칠을 하지
음악이 흐르는 그 카페엔 초콜렛색 물감으로
빗방울 그려진 그 가로등불 아랜 보라색 물감으로 (83쪽)
이렇게 다시 적으며 읽어보니, 이젠 색깔마져 도드라져 보인다. 돋을새김으로 색이 솟아오르는 듯하다. 이건 그래서 한번 불러봐야 한다. 해서 조용히 소리내어 불러본다.
글쓰면서 노래부르기는 처음이다. 다 저자가 글을 잘 써준 덕분이다.
그리운 장소에 대한 추억의 냄새
누구에게나 그리운 장소들이 있을 것이다. 당신이 지금 가장 그리운 곳은 어디인지 가만 떠올려보고, 한걸음에 달려갈 수 없는 곳이라면 그곳을 떠올릴 만한 냄새들을 찾아보길 바란다. 분명 어딘가에는 그리움의 흔적이 묻어있을 테니까. 오늘의 이곳에 충실한 것도 중요하지만 그리움의 마음을 외면하며 살고 싶진 않다. 그때 그곳의 나도 분명 나의 일부니까. 오늘의 이곳에 그리움의 향기를 살짝 추가하는 일, 그렇게 잠깐이라도 여행지를 추억하는 일, 그것 또한 오늘에 충실한 나만의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다. (121쪽)
코로나 19로 인해 여행이 자유롭지 않은 이 시절에, 위의 글은 우리에게 위안이 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움을 그렇게 녹여내면서,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방법, 냄새를 활용하는 제법 그럴듯한 방법이지 않을까?
냄새를 더 짙게 하는 문장들, 표현들
그곳에 두고온 내 마음들이, 기억들이, 냄새들이 거품과 함께 자작자작 스며든다. (121쪽)
여기 이 문장에서 ‘자작자작’이란 말이 참 좋게 들려온다,
[자작자작 : 액체가 점점 잦아들어 적은 모양.]
뜻은 분명 액체와 관련된 것이니 스며드는 게 어디 밖으로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인데도, 우리말로 읽으면 마치 나무로 불을 때는 듯한 소리가 되어, 냄새가, 기억들이 코끝으로 전달되는 느낌이 든다. 냄새가 주는 착후(착시錯視를 본따서 해본 말이다.)현상이 아닐까?
사족 : 착후라는 말을 쓰고 나서, 사전을 찾아보니 정말 그런 말이 있다.
[착후(錯嗅) 후각 이상의 하나. 좋은 냄새를 악취로 느끼는 병이다.]
병이라서 문제긴 하지만.
뒤에 가서야 ‘환후’라는 단어를 만났다.
미세한 환후 현상은 피곤한 한 주를 보낸 주말이면 여지없이 찾아온다. (169쪽)
[환후(幻嗅)실제로 나지 아니하는 냄새를 맡는 환각 현상.]
겨울이다, 겨울을 맞이하는 마음다짐 하나!
이런 글, 다가올 겨울에 대비하여 기억해 두고 싶다.
바뀐 계절의 냄새를 한 움큼 마시며 오늘 하루를 가뿐히 보내기로 한다. 코끝을 살짝 들어 새로운 계절과 잘 지내보려 인사한다. 어느덧, 어느새, 새 냄새와 함께 가을이 찾아왔다. (14쪽)
맨 마지막 ‘가을이 찾아왔다’를 계절마다 살짝 살짝 바꿔가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맞이하는 다짐으로 삼고 싶다.
그래서 이미 겨울을 왔지만, 오늘 겨울을 맞이한다고 생각하고, 오늘 하루 가뿐히 보내기 위해 코끝을 살짝 들어본다.
겨울이라서 ....... 좋은 냄새,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