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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는 책, 너라는 세계 - 어느 탐서가의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독서기!
박진희 지음 / 앤의서재 / 2021년 9월
평점 :
당신이라는 책 너라는 세계
이 책은?
이 책 『당신이라는 책, 너라는 세계』는 <어느 탐서가의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독서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저자는 박진희, <출판 편집자, 독서가로 살며 탐독해온 숱한 책 속 세계와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며 스스로 작은 우주가 되어 사는 사람들의 세계가 만났다! 문예창작을 공부하고, 오랜 시간 출판 편집자로 일했던 작가는 ‘책을 읽고 만드는 사람’에서 지금은 ‘사람을 만나고 기록하는 사람’으로 살며 글을 짓고 있다. >
이 책의 내용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기뻤던 것은 내가 읽지 않은 책을 저자가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내가 읽은 책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읽었을까 하는 궁금증을 채우기 위해 내가 읽은 책을 소개하는 책도 읽을 가치가 있지만, 이런 책도 그만큼 더 가치가 있다.
내가 읽지 않은 책을 새로 알게 되니, 나의 지평이 넓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책 중, 저자가 탐서가라는 말이 어울리게 다양한 책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러한 내용 인터넷으로 확인하기 바란다.
당신이라는 책, 너라는 세계
http://www.yes24.com/Product/Goods/103596403?OzSrank=1
이런 책들 접해본 적이 없어, 일단 신선했다.
인생은 어차피 홀로 걷는 것........?
저자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적이 있다.
거기서 저자는 홀로 걸었다.
'난 일찌감치 누군가와 같이 걷는 일을 포기했다.'
혼자 길을 걷게 된 것, 어떤 책의 영향을 받았는데, 그건 하페 케르켈링이 쓴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를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만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
하페 케르켈링은 독일의 유명 코미디언이다.
그 책에서 저자는 이런 글을 읽다가 감동을 먹었다. 저자가 혼자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잘 뒷받침하는 구절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파트너 옆에서 잘못 된 속도로 칭얼대며 몇 마일을 걷다가 서로를 증오하게 된다. 친한 친구들도 즉흥적으로 각자 헤어져서 길을 가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순례자들은 대개 혼자서 길을 간다. 리듬과 속도가 사람들을 길에서 갈라놓는다. (61쪽)
그렇게 해서 저자는 50여 일을 거의 혼자 걸었다.
그러나 다음 글을 읽어보자. 반전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내 길이 충만했나, 그건 절대 아니다. 나는 ‘사무치도록 외롭다’라는 말이 어떤 것인지, 그 길 위에서 뼈저리게 경험했다. (.......) 그 외로움이 진절머리 나서 아무도 없는 알베르게 안에서 꺼이꺼이 소리를 내며 운 적도 있다. (61쪽)
그래서였나? 자세한 말은 없지만, 저자는 남편될 사람을 거기에서 만났다.
분명 50여일을 거의 혼자 걸었다 했는데, ‘거의’라는 말 속에 우리가 놓친게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해서 남편을 만나, 한국에서도 만남이 이어졌는데, 인생길은 단지 혼자서만 걷는 게 아니라는 것을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해준다.
그 남자의 우산, 같이 받으며 걸었다.
무슨 이야긴가 하면 이런 이야기다.
따지고 보면 저자가 남편을 은근히 자랑하는 이야기지만, 그런 자랑쯤 들어줄 만하다.
장소는 낙산공원 (어딘가 찾아보니, 서울 종로구에 있는 공원이다.)이다.
저자와 남편(당시는 결혼 전이니 그저 남자친구)이 만나 데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다른 커플의 프러포즈가 진행되고 있었다. 미니오케스트라까지 동원된 프러포즈 현장, 대형스크린엔 남자가 만든 영상도 흐르고 있고, 바야흐로 행사는 절정을 향하여 치닫고 있었는데, 바로 그때였던 것이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좀 전만 해도 무척 화창했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더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촛불이 꺼지고 연주자들은 악기가 젖어가는 바람에 음악은 멈추고, 이제 막 여자의 눈에서 감동의 눈물방울이 떨어질 찰나였는데 비가 뿌려대는 바람에 행사는 엉망이 되어버린 것이다.
저자도 마찬가지로 비를 맞을 수밖에 없었는데, 바로 그때 난데없이 우산 하나가 펼쳐지는 것이 아닌가? 그 장소에 딱 한 명 우산을 가지고 온 이가 있었다. 바로 저자의 남자친구 문경록 (저자가 얼마나 이 이름을 자랑스럽게 외쳤을까. 그 외침이 책의 지면에 고스란히 박혀 있다.)이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 쫘악 펼쳐준 것이다. “오늘 서울에 비온다고 했거든.”
부산에 사는 그 남자 서울의 일기예보를 검색해보고 우산을 챙겨온 것이었다.
저자가 그 우산에 대해 가지게 된 소회 들어보자.
눈앞에서는 어떤 이의 프러포즈가 망해가고 있는데, 나는 이 우산 하나로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었다. 차가 없으면 어때, 집이 없으면 어때, 남들 다 비 맞을 때 나는 비 안 맞게 해주는데. (168쪽)
그 두 사람의 만남을 저자는 이렇게 정리한다.
남들은 박진희 순례길의 결과는 ‘남편을 만난 것’이라 생각할지 몰라도, 나에겐 그 외로운 길 끝에서 나를 만난 것이었다. (63쪽)
저자의 세계는 확장일로(擴張一路)
그렇게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이제 저자의 세계는 더 넓어진다.
왜? 어떻게?
아이가 저자의 세계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육아하면서 자연스럽게 아이의 관심사에 따라 내 취향도 바뀌는 경험을 한다. (174쪽)
그 예로, 저자는 본인이 벌레 포비아였음을 고백하고, 어느 순간 벌레 공포증에서 벗어나게 되었는데 그 과정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그런데 여섯 살 아이의 진득한 곤충 사랑이 내 공포심을 완화시켰다. 처음엔 만지는 것만 봐도 기겁했는데, 도무지 말릴 수 없을 만큼 관심을 보이니 자포자기 심정이 되었다가, 이후엔 나도 같이 도감을 찾으며 이름을 알려주는 경지에 이르렀다. 관심사가 생기면 당연히 지적 욕구가 샘솟고 덩달이 그 욕구를 채워주다 보니 어느 순간 공포심이 사라졌다. (175쪽)
그러는 사이에 아이가 어른을 만들어간다.
자신의 세계를 인정받고 더없는 신뢰를 받으며 자란 아이는 훌륭한 어른의 세계를 만들 것이고, 그 훌륭한 방법으로 또 다른 어린이라는 세계의 후원자가 될 것이다. 결국 모든 세계는 연결되어 있다. (183쪽)
그렇게 홀로 고독한 길을 선호하며 산티아고 순례길을 홀로 걷던 저자, 모든 세계가 그렇게 연결되어 간다는 사실을 책을 읽어가며, 인생으로 체득한 바를 통해 증명해주고 있다. 그래서 이 책 제목이 ‘당신이라는 책, 너라는 세계’가 되는 것이다.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빠져들려면 기슭을 떠나야 한다. 구명대 없이. (53쪽)
사실 상처는 대부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해 몹시 신경을 쓰면서 ‘스스로 지옥을 만들며’ 시작된다. (63쪽)
사물을 구체화하는 것이 글쓰기의 기본이다. (163쪽)
다시, 이 책은?
이 책의 백미는 <조카의 마음 속엔 아직도 외계인이 산다>에 소개되는 내용이다.
저자는 먼저 김초엽의 <공생가설>을 소개한다.
김초엽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실린 단편소설이다.
중간 이야기를 생략하고, 결론만 이야기하자.
저자는 그 소설을 인용하면서 저자의 조카, 즉 동생의 아들 이야기를 꺼낸다.
그 아이가 ‘레녹스가스토증후군’이라는 것, 그것을 밝히며 그 아이 은우가 가져다 준 가정의 변화 과정을 차분하게 설명한다.
은우의 엄마이자 나의 동생인 박진영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가족은 은우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발달 지연...... 나조차도 불쑥불쑥 우울감이 찾아왔는데.......그래서 치료와 검사를 반복했다......여러 약을 한꺼번에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발작성 고통을 완전히 멈출 순 없었다. (83-84쪽)
그런데 드디어 가정에 평화가 찾아왔다.
어떻게? 아이가 완치되어서? 그건 아니다.
아니러니 하게도 ‘병을 고치겠다’는 일념을 내려놓고 은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면서부터 우리 가족에게 천천히 평화가 찾아왔다. (84쪽)
그런 변화는 이어진다.
실제로 동생은 아들과의 여행을 주제로 짧은 에세이를 쓴 적이 있다. 에세이는 제주의 로컬 매거진에 실렸다. 은우로 인해 엄마 진영이 글을 쓰게 된다면?
저자의 동생의 세계는 또 다른 세계와 연결되어,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렇게 내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아, 책이 그렇게 작동하는구나, 그렇게 움직인 마음은 또 다른 사람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또 .....
이 책, 정말 내 마음이 움직이는 소리, 다른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 그런 경험을 하게 만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