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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네시아, 나의 푸른 영혼 - 세계일주 단독 항해기
알랭 제르보 지음, 정진국 옮김 / 파람북 / 2021년 7월
평점 :
폴리네시아, 나의 푸른 영혼
이 책은?
이 책 『폴리네시아, 나의 푸른 영혼』은 저자의 <세계일주 단독 항해기>이다.
저자는 알랭 제르보, <프랑스의 신화적인 국민 영웅이다. ‘20세기의 오디세우스’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젊은 시절 테니스 대회에서 우승하고, 축구를 즐기는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에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해 뛰어난 무공을 세웠다. 무엇보다 유럽인으로서는 최초로 조그마한 돛배로 세계일주 단독 항해에 성공하는 초인적인 성과를 남겼다.>
이 책의 내용은?
“그는 다른 유럽인들과는 다르다.” (236쪽)
마오리족의 한 사람이 그에 대해 한 말이다.
그처럼 그는 보통의 유럽인과는 달리 여행한 지역의 문화를 경외감으로 바라본 사람이다.
그래서 이 책은 그런 그의 문화관이 그대로 드러난 작품이다
<그중에서도 이 책 『폴리네시아, 나의 푸른 영혼』은 백미로 꼽힌다. 해양 다큐멘터리 문학의 세계적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 책은 세계일주 단독 항해의 일기이자, 그가 사랑한 남태평양의 섬과 사람, 삶과 풍속에 대한 소중한 기록이기도 하다.> (책 날개의 저자 소개 중에서)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간결한 문체로 쓴 해양 다큐멘타리 문학의 걸작(6쪽)으로, 백인의 식민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자, 사라져 가는 고대 문명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넘(7쪽)치는 작품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살펴볼 것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고독한 항해자로, 그가 요트를 타고 바다에서만 700일 넘게 보내고, 4만 마일의 뱃길을 주파(224쪽)하면서 겪은 해양모험담으로 읽어보는 것이다.
그런 모험 때문에 그를 ‘20세기의 오디세우스’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것이다.
두 번째 그의 타자 문화에 대한 경외심을 찾아볼 수 있다.
그가 여행중 만난 폴리네시아를 비롯한 타자 문화를 대하는 그의 인생관을 표현하는 구절이 있어 소개한다.
내가 폴리네시아에서 꿈꾸었던 것은 분명하다. 나도 어느 날 아무도 살지 않는 환초의 주인이 되어, 내가 고른 폴리네시아 주민들을 끌어들이고, 그것에서 사람들이 돈을 쓰지 않고, 운동을 하고 예술을 즐기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133쪽)
그런 그의 눈에 보인 것들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
이 섬 원주민 5,000명은 폴리네시아 유구한 인종 통가족의 후손이다. 이들은 같은 종족인 타히티, 하와이 후손이 이룩한 높은 문명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여전히 흥미로운 문명을 보여준다. (54쪽)
그는 특히 그런 원주민 민족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도착한 지역마다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서, 위와 같은 기록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숲속의 그림같은 원주민촌은 사모아 고유의 흥미롭고 청결하고 예술적인 오두막이다. (19쪽)
피지 사람은 크고 튼튼하며, 부에 무심하고 재미있게 즐기며 산다. (81쪽)
아무튼 내가 가고 싶었던 곳은 움바우 섬으로, 그곳에 사는 피지의 대족장 라투포피의 초대에 응해, 문명에서 가장 먼 섬들을 찾고 싶었다. (82쪽)
하지만 그들이 생계를 위해 일하는 시간은 일주일에 대여섯 시간에 불과하다. 이 섬들은 놀랄만큼 비옥하다. 아직도 백인 문명으로부터 생필품을 공급받지 않는 행복한 민족이다. (90쪽)
유럽 제국은 어떻게 그들을 지배했는가?
그런 문화를 지닌 민족들을 유럽인들은 어떻게 대했을까?
용골을 제자리에 놓는 일은 극히 어려워 며칠이 걸리고, 사람도 60명은 있어야 했다. 그런 작업을 부탁하기가 거북했다. 원주민들은 이미 정부와 선교사들이 시키는 온갖 부역에 지쳐 있었다. (66쪽)
나는 마타유투의 청년들과 친했다. 나는 그들에게 프랑스와 그 사람들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곳 식민지 이주민과 다르다고. 원주민을 희생시켜가면서 부자가 되려는 이 사람들의 꿍꿍이와 다르다고. (68쪽)
원주민들을 식민지의 종으로 여기는 행태를 저자는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는 다른 결의 사람들도 있다.
원주민을 어떻게든 유럽 문화로 흡수하려는 오세아니아의 프랑스 당국과 다르게, 미국인은 백인과 원주민 간에 높은 장애를 치고 있어, 원주민은 오히려 자기네 해묵은 풍습을 많이 보존했다. 그만큼 그들에게 유리한 셈이다. (20쪽)
여기에서 ‘장애’라는 말은 잘못된 번역이 아닌가 싶다. (물리적인 것은 아닌) ‘장벽’이라고 하는 게 옳을 듯하다.
영국령 누벨기네 총독 허버트 머레이 경의 점심 초대도 받았다. 머레이 경은 특출한 인물이었다. (........) 20년간 파푸아령을 통치하고 있었다. 머레이경은 백인 문명을 급하게 채택하는 데에서, 원주민이 당면한 현실적 위험을 인정했디. 또 그들이 특히 음식과 의복 등 가능한 한 옛 풍습의 장점을 지킬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이 부족의 미래에 초래될 결과를 아랑곳하지 않고 눈앞의 이익만 추구하는 상업적 착취로부터 그들을 보호하려고 했다. (.........) 원주민 종족을 보호하고 방어하는 것을 행정의 막중한 대사라 생각하던 주목할만한 인물과 만났던 일은 파푸아 체류 중 가장 멋진 추억이다. (98-99쪽)
이런 인물 만나,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둔 것도 이 책의 의미가 있다.
유럽 제국들이 가서 뿌려놓은 문명, 그리고 기독교의 모습은?
되려 나를 문명의 적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이 정녕 문명일까?
(157쪽)
새 종교가 너무 엄하고 두려워 그들의 생활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고 했다. (91쪽)
다행히 배가 침몰하기 직전에 돛을 높일 수 있는 시간에 맞추어 도착했지만, 일요일이라 원주민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할뻔 했다. 기독교는 주일에 쪽배를 띄우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되었다. (91-92쪽)
기독교에도 여러 갈래가 있는데, 근본주의 기독교가 들어가 뿌리를 내리는 바람에 ‘그들의 생활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고 하니, 안타깝다.
다시, 이 책은?
‘20세기의 오디세우스’ 라는 말에 끌려 이 책을 열었다.
처음으로 바다를 우리 인생의 은유로 읽기 시작한 『오디세이아』의 주인공이 바로 오디세우스다. 그만큼 바다는 인생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저자는 그런 바다를 요트를 타고 다니며 파도와 바람과 맞서 싸우며, 인생을 모험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폴리네시아 원주민을 만나 그들의 순수한 문화를 찾아 보여주었는데, 그런 저자의 노력, 지금도 제국주의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이 세상에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저자를 기리는 책으로, 새겨 읽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