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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독재자, 디지털 빅브라더가 온다 - 21세기 전체주의의 서막
한중섭 지음 / 웨일북 / 2021년 6월
평점 :
친절한 독재자, 디지털 빅브라더가 온다
왜 이 책을 읽었는가?
강성호의 『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을 읽었는데, 그중 몇 구절을 새겨 두고 있었다.
플랫폼 기업들은 감시자본주의하에서 소비자들에 대한 정보를 오랫동안 수집해왔다.
이는 기존 금융회사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데이터다. (위의 책, 151쪽)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플랫폼 기업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카카오, 네이버가 있고, 세계적으로는 GAFA라는 빅테크 기업들이 그렇다.
이 기업들은 나에 대해 나보다 훨씬 잘 안다. 인터넷 방문 기록을 통해 나의 최근 관심사와 취향에 대해서 아는 것은 기본이다. 내가 방문했던 장소도 구글맵과 네이버 지도, 카카오 지도에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으며, 내가 특별히 오래 머물렀거나 좋아했던 장소도 기록하고 있다. (위의 책, 80쪽)
기업이 우리의 일상을 관찰하는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감시 자본주의(surveillance capitalism)’라 부른다. 감시자본주의는 우리의 일상 행동에서 데이터를 추출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방식의 자본주의다. (위의 책, 82쪽)
조지 오웰의 『1984』에 등장하는 빅 브라더가 딴 게 아니다.
바로 플랫폼 기업이 빅 브라더다. 그렇게 우리는 감시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이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읽게 했다.
이 책은?
이 책 『친절한 독재자, 디지털 빅브라더가 온다』는 <21세기 전체주의의 서막>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팬데믹 이후에 도래할 감시 자본주의 시대를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한중섭, <생각하고 기록하는 사람. 인문학과 신기술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잡다한 분야에 호기심이 많다. 저서로는 『비트코인 제국주의』, 『결혼의 종말』 등이 있다. 유튜브와 SNS에서 책을 리뷰하는 〈21세기 살롱〉이라는 채널을 운영한다. 글쓰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감을 주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기를 바란다.>
이 책의 내용은?
먼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강렬하다는 것, 말해둔다.
저자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저자의 주장을 강력하게 명토박아 놓는다. .
<프롤로그>는 ‘나는 고발한다’이고 <에필로그>는 ‘감시를 감시하라’라는 타이틀이 이 책의 내용을 웅변하고 있다.
이 책의 요지를 간추려본다.
감시는 불평등과 계급사회를 낳은 문명의 부산물이다.
인터넷은 초창기 산업 발전을 주도한 이상주의자들의 바람과는 달리 막강한 권력을 지닌 빅브라더를 탄생시켰다.
전례없는 방식으로 친절한 독재를 행하는 디지털 빅브라더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코로나 19가 디지털 빅브라더의 감시를 정당화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다양한 첨단기술 발전과 맞물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초감시사회가 도래할 것이다.
(193-194쪽)
그런 모습을 살펴보는 이 책은 다음과 같이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디지털 빅브라더의 탄생
2장 디지털 빅브라더의 횡포
3장 감시와 통제를 돕는 첨단기술들
4장 포스트 코로나, 초감시사회의 도래
그중에서 특기할 사항 몇 개 간추려 본다.
‘
지옥으로 가는 길을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인터넷이 맨처음 개발되어 도입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 편리함에 모두들 놀라워하고 신기하게 여겼다.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다른 사람과 비대면으로 소통할 수 있고, 우체국에 가지 않고도 편지를 보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30쪽)
그렇게 시작된 인터넷 세상, 시작은 선의로 시작되었으나 요즘 그 과정을 살펴보면,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문제점들 어떤 게 있을까?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감시
인터넷이 도입되고, 이제 우리는 인터넷과 떼려야 뗄 수 없이 살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문제가 하나씩 불거지게 되었다.
바로 우리가 인터넷을 사용한 모든 것이 기록으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인터넷을 이용하여 검색한 내용들, 구입한 물건들, 모두 다 인터넷 회사에게 데이터로 전환되어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용자 개인으로서는 인터넷 사용에서 필터 버블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즉 편향된 정보의 그물에 갇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과 인터넷에서 만나지 못한 채 ’나의 편‘만 계속 만나, 내 견해를 더욱 강화시키게 되는 일이 생긴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
필터 버블에 갇힌 것은 정보의 바다에 위치한 작은 무인도에 고립된 것과 같다‘(69쪽)고 한다. 그래서 필터 버블에 갇힌 현대인은 결코 서로를 이해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된다.
또한 개인적으로 문제가 되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인터넷을 통하여 정보를 접하는 방식에 익숙하게 되면, 우리의 뇌는 수동적으로 변한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뇌회로가 수동적으로 변하고, 단기적이고 말초적인 자극에만 조건반사적으로 반응하는 형태로 변한다. 쉽게 말하면 바보가 된다는 뜻이다. (80쪽)
게다가 인터넷과 스마트폰 때문에 우리가 깊이 있는 긴 글을 읽거나 사유하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우리의 사고능력이 저하되고 있다. (81쪽)
이제 거시적으로 살펴보자. 바로 감시의 문제다.
미세한 센서가 부착된 온갖 종류의 스마트기기들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추출해 낸 데이터를 중앙 서버에 전송한다. (100쪽)
이렇게 감시를 당하면서 우리가 사용하는 인터넷은 고스란히 자료로 남아, 감시자들의 지갑을 채워주는 원천이 된다.
우리는 그들의 고객이 아니라 노동자요, 상품인데도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열심히 그들의 하인 노릇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소설과 영화를 참조하여 미래사회를 구체적으로 떠올려보자.
소설로는 『1984』, 『멋진 신세계』, 영화로는 〈트루먼 쇼〉, 〈마이너리티 리포트〉, 〈매트릭스〉를 떠올려보면서 이 책을 읽으면 훨씬 더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1984』와 『멋진 신세계』의 차이는?
『1984』의 빅브라더가 공포로 사람들을 통제한 반면, 『멋진 신세계』의 총통이 선택한 수단은 쾌락이다. 소마라는 마약을 주기적으로 시민들에게 배급하여 시민들의 불안을 잠재운다. (74쪽)
저자는 시민들의 ’불안‘이라 표현했는데, 이는 ’불만‘이 더 적절한 표현이라 본다.
〈트루먼 쇼〉, 〈마이너리티 리포트〉, 〈매트릭스〉에서는?
〈트루먼 쇼〉는 주인공 트루먼의 모든 삶이 생중계되는 이야기다.
무려 5,000대의 카메라가 트루먼의 일상을 24시간 감시하고 220개국 17억명의 시청자들이 트루먼의 삶을 시청하고 있는데, 정작 그는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 (84쪽)
그게 남의 이야기 같이 들리는가?
우리의 움직임도 그처럼 생중계는 아니지만, 감시받고 있다는 것, 확실하다.
믿지 못하겠다면, 차를 몰고 고속도로로 나가 속도를 30~ 40킬로 정도 과속해서 1시간만 달려보자. 아니 10분만 달려보자. 그러면 며칠 후 우리는 우편으로 통보를 받게 된다.
운전석 옆자리는 시커멓게 칠해진 채로, 당신은 모년 모월 모일 모처에서 몇 킬로 속도 위반을 했습니다, 라는안내문.
이런 통보를 받고,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았지?‘ 라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만든 또다른 세상
아직 우리나라는 코로나19의 영향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해서 재택근무가 일상화되었고,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도 낯선 용어가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디지털 가상공간으로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메타버스라는 말도 이제 낯이 익고, 가상 현실이라는 말도 친숙해졌다.
그게 바로 영화 <매트릭스>에서 그리고 있는 가상세계다.
다시, 이 책은?
저자의 다음과 같은 주장에 귀기울여보자. 현재 시민들은 코로나 19로 인한 감시의 전방위적 확산에 순응하고 있다. 다중 이용시설에 출입할 때 QR 코드를 인증하거나 출입명부에 휴대전화 번호를 적는 것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194쪽) 앞으로 1-2년 이내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완전히 종식된다고 상상해보자. 감시에 순응하게 된 우리가 과연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까? (195쪽) |
우리는 이미 미래를 살고 있다.
미래에는 우리의 행동에 사생활이란 게 없다. 오늘 내가 쓴 글도 누군가의 눈에 띄여 읽히게 되면, 모년 모월 모일에 오아무개가 그런 글을 쓰고 있었구나, 하는 데이터로 남게 될 것이다.
그런 내용, 나에게는 알리바이가 되겠고, 누군가에는 나에 대한 데이터가 되어 남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미 나는 이미 그런 미래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회?
’친절한 독재자. 디지털 빅브라더가 지켜보는 사회‘!
내가 그곳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