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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 인간과 괴물의 마음 - 나를 잃지 않고 나와 마주하는 경계의 감정
이창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4월
평점 :
수치 인간과 괴물의 마음
이 책은?
이 책 『수치, 인간과 괴물의 마음』은 <나를 잃지 않고 나와 마주하는 경계의 감정>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심리학을 중심으로 한 인문학 책이다.
저자는 이창일,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철학박사를, 서울불교대학교에서 상담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동아시아 자연학과 인간학의 미래적 비전을 제시하는 연구와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먼저 저자의 수고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수치’라는 감정을 파고 들어, 여러 갈래의 분석 도구를 활용하여 수치라는 감정을 그야말로 샅샅이 파헤쳐 놓았다.
저자가 다루고 있는 분석 도구는 어떤 것이 있을까?
심리학, 각종 종교의 경전, 뇌과학, 신화, 언어학, 어원학, 동양 경전, 각종 문학작품, 등
그야말로 인문학의 성찬이 벌어지고 있다.
해서 이 책은 먼저, 수치를 분석하려는 저자의 노력 덕분에 수치라는 말이 여러 방면으로 역사적으로, 드러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수치와 관련된 인간의 각종 감정을 세밀하게 살펴볼 수 있으니, 예컨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교감과 공감의 차이는?
뇌의 언어로 보면, 교감은 내가 타인의 감정을 거울뉴런으로만 느끼는 것이다. 반면 공감은 타인의 감정을 느낄 뿐만 아니라 타인의 감정을 마음속에서 재생해 이 재생된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감은 공감을 위해 토대를 이루는 중요한 이전 단계다. (46쪽)
이런 분석을 위시로 하여 저자는 우리 사람들이 가져야 할 감정의 교류를 분석해 놓고 있다.
수치와 부끄러움
수치와 부끄러움은 우리에게 낯붉힘을 일으키는 감정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수치는 ‘부정적인 의미’ 맥락을 가진 것이고 부끄러움은 ‘긍정적’이거나 ‘중립적’인 의미 맥락에서 사용된다 (6쪽)
이 책은 두 가지 방향으로 읽을 수 있다.
하나는 수치와 관련한 각종 정보를 알게 된다. 지식적 차원에서 수치를 알아보는 것이다.
수치라는 감정을 샅샅이 훑어나간 저자 덕분이다,
다음으로는 이 책을 정신 수양을 위한 교재로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을 실천적 차원에서 읽어보는 것이다.
수치에 관한 각종 명언들, 격언들, 잠언들을 읽어가면서 내 마음을 가꿀 수 있을 것이다
신화 시대의 수치
신화는 과학의 사실성과는 또 다른 차원의 사실성을 가진 설명방식이며 통찰의 세계다. 신화에는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설명이나, 과학이 접근하기 어려워서 괄호 속에 넣어 놓은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 있다. 신화가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 까닭은 이러한 설명과 해답에 인간의 자기 이해 방식이 배어들어 있기 때문이다. 신화는 과녁을 돌려 인간에 대한 진실한 내용을 좀 더 원초적인 형태로 전달하고 있다. 원초적이기 때문에 더 간단하고 쉬우며, 인간을 빗대어 설명하는 것이라서 그 은유적인 설명방식이 재미나다. 그러니 신화적인 설명을 포기할 수 없다. (112쪽)
신화는 인간 자신이 동물과 자연에 속하는 것에 대한 수치를 불복종의 결과로 제시했다. 초자연적인 본성을 어긴 죄는 인간 안에 깊은 죄의식을 심었다. 동물에게는 죄의식이 없고 수치도 없다. 자연상태를 혐오하는 인간만이 그것을 수치로 여기고 죄의식을 갖는다. (359쪽)
플라톤의 『프로타고라스』
인간은 프로메테우스에게서 불을 선물받았지만 여전히 서로 싸우며 불화 속에 살았다. 이를 보다 못한 제우스는 인간에게 다시 두 가지를 나눠준다. 염치(명예)와 정의였다. (256쪽)
플라톤의 『프로타고라스』에서 해당되는 부분을 찾아보았다.
인간에게 국가를 경영하는 기술은 아직 없었는데, 전쟁의 기술은 이 기술의 일부니까, 그래서 인간은 함께 모여 공동체를 건설함으로써 자신을 구하려 했으나 함께 모일 때마다 인간은 국가를 경영하는 기술이 없어 서로 불의한 일을 했고. 그래서 인간은 도로 흩어졌고 다시 도륙되기 시작했소. 그러자 제우스는 우리 인간 족속들이 완전히 멸종하지나 않을까 두려워 헤르메스를 인간에게 보내 염치와 정의를 가져다주게 했는데, 공동체를 구성하고 우애를 맺는데 이것들이 원칙이 되게 하기 위해서였소.
(천병희 역, 『프로타고라스』 323b,c, 『플라톤 전집』 III, 222쪽)
그 다음, 이 책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중요한 대목이니 인용해 본다.
헤르메스는 인간에게 어떤 방식으로 염치와 정의를 나눠주어야 하는지 제우스에게 물었소.
모든 인간에게 나눠주라고 제우스가 말했소. ‘모든 인간이 나눠 갖게 하라. 다른 기술들처럼 정의와 염치가 소수의 것이 되면 국가가 생길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 염치와 정의를 나눠 가질 수 없는 자는 공동체의 역병으로 간주하여 죽여 없애야 한다고 내 이름으로 법으로 정하라.’ (위의 책, 223쪽)
이러한 신화적 인식은 이후 철학에 지속적인 영향을 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스 윤리학』에서 수치의 의미를 탐구했다. 여기에는 수치의 두 얼굴이 나타난다. (256쪽)
맹자, 유자입정(儒子入井)의 논증
어린아이가 천진하게 우물 쪽으로 기어 가다가 그 곳에 빠지려 하는 일촉즉발의 위태로운 순간에 그것을 본 사람은 당장에 몸을 날려 아이를 구하려고 한다. 이는 머릿속으로 이로움을 계산한 뒤에 한 행동이 아니다. (236쪽)
맹자는 이런 상황을 예로 들면서, 수오지심을 논한다.
그런 수오지심은 결국 정의와 연결이 되는데,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끄러움과 미워함, 곧 수치와 혐오는 의로움과 연결된다.
우선 혐오는 생리적인 차원에서, 생존을 위해 썩거나 더러운 음식, 똥오줌, 고름, 침, 땀, 피 등의 오물을 더러워하고 그것을 가릴 줄 아는 고유한 능력이다.
이 생리적 차원의 능력은 심리적 차원으로 옮겨져 가서, 싫고 꺼리는 마음을 드러내는 혐오의 감정이 되었다, 이어 윤리의 차원에서 더러운 언행을 서슴지 않고 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가차없이 그것을 미워하는 공분으로까지 전용되었다. (238쪽)
수치와 혐오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감정이며, 둘은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239쪽)
맹자의 생각은 계속된다.
『맹자』 <진심, 상>에 나오는 말이다.
인간이라면 부끄러움이 없을 수 없다.
부끄러움이 없음을 부끄러워할 수 있다면, 부끄러워 할 일이 없을 것이다.
人不可以無恥라! 無恥之恥면 無恥矣.
또 이 말도 기억해두자.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고 맹자는 말하는데, 그 중 두 번째 즐거움 기억해 두자.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하늘 아래 부끄러움이 없는 것, 그게 두 번째 즐거움이다.
다시, 이 책은?
우리 주변에서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가지지 못한 자들이 자주 눈에 띈다. 이들이라고 부끄러움의 상황을 모르겠는가? 알지만 그것이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실제로는 모르는 것이다. 왜 부끄러움은 우리 몫인가? 그것은 당신이 온전한 사람이기 때문이고, 사이코패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46쪽)
해서 우리는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책을 쓴 목적도, 이 시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 많이 나타났기에, 그들에 부끄러움을 알려주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은 부끄러움 자체에 대해 관심이 없다.
해서 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시대에, 부끄러움은 부끄러움을 아는 자의 몫일뿐이다.
참된 인간은 부끄러움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끄럽지 않도록 삶의 궤도를 수정하는 것이다. (243쪽)
아, 이런 때에는 플라톤이 말한 제우스의 법이 자꾸만 떠오른다.
<염치와 정의를 나눠 가질 수 없는 자는 공동체의 역병으로 간주하여 죽여 없애야 한다고 내 이름으로 법으로 정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