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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평점 :
이 시대를 살아낸 거룩한 존재 - 『아버지에게 갔었어』
이 책은?
이 책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소설이다. 장편소설.
저자는 신경숙, 신경숙의 8번째 장편소설이자, 2020년 6월부터 12월까지 6개월간 [매거진 창비]에서 연재한 작품을 공들여 수정·보완하여 새롭게 선보이는 작품이다.
이 책의 내용은?
살아가는 것은 사건이다. 사건의 연속으로 삶의 모습이 구체화되는 것이다.
그 사건을 통해, 그 사건을 통과하면서 사람은 사람이 되어간다.
소설도 그렇다. 사건으로 이어지면서, 사람을 그려내고, 그 사람의 모습을 알게 해준다.
이 소설은 특히 더 그렇다.
이무렇지도 않게 보이던 아버지의 모습, 그저 평범하게 보이던 그의 모습이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면서 서서히 드러난다.
이 소설, 사건이 시작되면서 그건 알지 못했던, 아니 구태여 알려고 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모습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나는 아버지를 한번도 개별적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도 그제야 깨달았다. 아버지를 농부로, 전쟁을 겪은 세대로, 소를 기르는 사람으로 뭉뚱그려서 생각하는 버릇이 들어서 아버지 개인에 대해서는 정확히 아는 게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197쪽)
그 사건은 <엄마가 입원>한 사건이요, 엄마가 입원한 동안 < J시 집에 홀로 남게 된 아버지를 보러 가기 위해 ‘나’가 5년 만에 기차에 오르>는 것이 이어지는 사건이고, 그 사건을 시작으로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 사람은 아버지다.
여기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J시라고 이니셜로 등장하는 도시는, 전라북도 정읍시다. 근처에 내장사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렇다. 또한 C시는 전라북도의 도청소재지인 전주시다. 예수병원이 있는 곳이라 하니, 전주시가 맞다.
그렇게 기차를 타고 정읍으로 내려간 화자, 아버지의 큰 딸이다.
큰 오빠, 둘째 오빠, 셋째 오빠, 그리고 화자, 그리고 여동생 이삐, 그리고 막내 동생, 아들이다. 이렇게 4남 2녀의 큰 딸이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저자 소개말에 이런 글이 보인다.
삶과 세상에 대한 무르익은 통찰과 철학, 여러겹의 아버지의 모습과 가족을 향한 연민에서 비롯된 깊은 사유를 시리고도 찬란하게 펼쳐놓는다. (앞표지 날개)
해서 이 소설에서는 아버지의 모습이 ‘여러겹’으로 펼쳐져 나타난다.
아버지는 어느날의 바람 소리, 어느날의 전쟁, 어느날의 날아가는 새, 어느날의 폭설, 어느날의 살아봐야겠다는 의지,로 겨우 메워져 덩어리진 익명의 존재. 아버지 내면에 억눌려 있는 표현되지 못하고 문드러져 있는 말해지지 않은 것들. (76쪽)
그 익명의 존재가 이제 4남 2녀의 자식들의 ‘아버지’이자. 한 여자의 남편으로 구체화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떻게?
먼저 화자인 큰딸의 눈으로, 다음 헛간의 궤짝에서 찾아낸 큰오빠와 아버지의 오고간 편지를 통해서, 다음에는 <그에 대해 말하기>에서 둘째 아들의 눈으로, 엄마 정다래의 입으로, 그 다음 아버지와 함께 전쟁을 겪어낸 ‘박무릉’의 입으로, 또 손자의 눈으로 아버지의 모습이 변주되어 나타내 보인다.
1933년, 아버지가 그해에 태어났기 때문에 나는 어디서든 1933년이라는 연호를 발견하면 잠깐 그 숫자에 시선을 멈추곤 했다. (23쪽)
딸과 함께 이 집에 오면 저 침대에 셋이 누워서 아버지 얘기를 나누곤 했다. 딸은 엄마가 하는 아버지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그게 사실이에요? 책에서 나오는 얘기 같아요, 하면서 귀를 기울이곤 했다. (48쪽)
큰오빠가 파견근무로 리비아에 나가 있었을 때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 묶음.
그리고 아버지가 그 편지에 답장한 것들.
집에 혼자 나머서 애들 기르고 현이랑 셋째까지 데리고 있는 니 처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뿐이다.
성푸미 오나한 사람인줄은 이미 알앗지마는
고마운 일이다 멀리서도 공경하고 성실하고 상냥히 대히라
나는 더 바랄 거시 업다. 1989년 4월 18일 아버지가.
아버지는 익숙하지 않은 책 읽기와 쓰기를 위해 한글을 배우러 야학에 다녔다.
덕분일까, 처음엔 단문이던 아버지의 편지는 때로 복문이 되기도 하고 부호와 마침표를 쓰기도 하며 길이도 점점 길어졌다. (182쪽)
아버지가 가장 많이 쓰는 말은 말할 것이 없제, 였다. 말할 것이 없다........아버지는 기쁜 일이 생겨 그걸 표현할 때도 말할 것이 없제, 라고 했고, 고통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도 말할 것이 없다,고 했다. (198쪽)
점점, 점점 아버지의 모습은 그렇게 살을 입고, 옷을 입어가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한다.
다시, 이 책은?
언젠가 내가 아버지에게 당신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내가 무엇을 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내가 응수하자 아버지는 한숨을 쉬듯 내뱉었다.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살아냈을 뿐이다,고.
(7쪽,제사)
그렇게 세월을 살아낸, ‘우리들의’ 아버지가 이 책에 있다.
더 하나, 이것 기록해두고 싶다.
인생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내용을 다 잊었는데 하나는 생각나는군.
삶에는 기습이 있다, 라는 문장 말일세. (323쪽).
아버지와 전쟁통에서 만나 생사를 같이 했던 박무릉의 말이다.
살아가는 시간 속엔 기습이 있지. 기습으로만 이루어진 인생도 있어. 왜 이런 일이 내게 생기나 하늘에다 대고 땅에다 대고 가슴을 뜯어 보이며 막말로 외치고 싶은데 말문이 막혀 한마디도 내뱉을 수도 없는…… 그래도 살아내는 게 인간 아닌가. (323쪽)
이건 아버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니, 밑줄 굵게 긋고 새겨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