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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자들 ㅣ 걷는사람 소설집 4
임성용 지음 / 걷는사람 / 2021년 1월
평점 :
기록자들
이 책은?
이 책 『기록자들』은 소설집이다. 단편소설 7편이 실려 있다.
저자는 임성용, <201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였다. 2020년 현진건문학상에 「지하 생활자」가 추천작으로 선정되었다.>
이 책의 내용은?
이 책에는 표제작인 「기록자들」을 비롯하여 모두 7편의 단편소설이 담겨있다.
그게 무엇이든
지하 생활자
공원 조 씨
기록자들
원주민 초록
맹순이 바당
아내가 죽었다
장편적 서사를 담고 있는 단편들
얼마든지 길게 쓸 수 있는 소재다. 길게 이야기를 엮어내면 장편이 될 만한 줄거리다.
그걸 압축하여 단편으로 썼기에 이야기가 주는 힘은 강렬하다. 이야기 전체가 한꺼번에 떠오르는 것이다. 특히 「그게 무엇이든」과 「맹순이 바당」에서 그게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게 무엇이든」에서 주인공 근수는 살인을 저지르고 다닌다. 청부살인자다.
이 짧은 단편 속에 근수의 아버지, 어머니 이야기가 담겨있고,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의 지저분한 놈들 이야기도 담겨있다.
어릴 적, ‘가난하고, 또 그래서 한심한 생각이 드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날도 분명 그런 한심한 날 중 하나였다.’ (16쪽)
그날 아버지가 죽었다. 망나니였던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 지실댁은 과부가 되었고 근수는 아비 없는 자식이 되었지만, 먹고 자는 일은 더 편해졌다.(19쪽)
하지만 정작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동네 아줌마들은 지실댁을 왕따시키고 근수 역시 같은 일을 당한다. 그리고 늦은 밤에 누군가 담장을 넘어오기도 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래도 소문이 무서워 경찰을 부르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그런 가운데 근수는 성장한다.
소설의 말미에 근수는 동네 양아치들을 없애버린다. 공적인 복수를 할 수 없으니 사적인 복수를 감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가 단편에 담겨 있으니, 당연히 장편으로 읽히는 것이다.
「맹순이 바당」도 긴 이야기를 짧게 한다. 단편에 장편 이야기를 압축하여 담은 것이다.
제주도에서 평화롭게 살던 몽돌과 끝분 부부는 하루아침에 죽고,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잠자리에 들었던 부부에게 날벼락같이 들이닥친 청년들, 빨갱이를 잡는다고 들이닥쳐 몽돌을 죽이고 끝분을 윤간하고 사라진다.
사지에서 부산으로 도망친 끝분에게 태기가 보이고, 딸을 낳게 된다.
그런 이야기가 펼쳐지는 「맹순이 바당」, 그 안에 기구한 인생이 담겨, 끝분과 딸 선녀 2대에 걸친 이야기가 진행이 된다. 해서 단편이지만 장편적 서사가 담겨있는 것이다.
(끝분에게) 긴 하루였다. 몽돌을 잃고 집을 잃었다. 하루 만에 모든 걸 잃고 낯선 땅, 낯선 굴 속으로 도망 와 누워있다. (171쪽)
서투르지만 한 걸음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다른 작품을 살펴보자. 먼저 무기력한 주인공들이 나타난다.
이 세상의 길에 합류하지 못하고 뒤처져 있는 사람들이다.
「지하 생활자」의 ‘나’, 「원주민 초록」의 ‘나’가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정상적인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지하 생활자」의 ‘나’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직원으로 근무지는 지하 3층의 기계실이다. 그저 평온한 나날을 무기력하게 보내고 있는 그에게 문제가 있다면, 2005호의 치매에 걸린 노인이다.
2005호에서는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가 불을 피워 스프링클러가 작동되는 바람에 몇 번이고 ‘나’는 출동해서 그걸 수습해야만 한다 그래서 결국 그 집의 스프링클러를 잠그게 되고, 그것 때문에 사건이 발생한다. 결국 그들의 삶에 끼어들게 된 것이다.
「원주민 초록」의 ‘나’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무기력한 삶을 살아간다. 주거지는 대학 동아리 방의 한 켠 아무도 모르는 ‘먼지 방’이다. 거기에서 남의 텃밭의 채소를 훔쳐다 먹으며 사는 것 같지 않은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상추와 고추를 훔치다가 그 밭의 주인과 조우하게 된다.
결국 두 사람의 ‘나’는 혼자서만 무기력한 삶 가운데 살아가다, ‘진짜’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게 계기가 되어 세상 속으로 행군하려는 의지를 갖게 된다.
비극의 향이 가득한 2005호가 앰뷸런스 소리와 함께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돌아간다. 리어왕( 치매 걸린 할아버지)은 죽었을까? 그의 아내였다가 어머니이기도 했던 할머니는? 스프링클러를 잠그지 말았어야 했나? 지하로 숨지 말았어야 했을까? (62쪽)
천천히 걸어서 먼지의 방으로 돌아왔다. 머리카락에 맺힌 빗물을 닦고 컴퓨터 앞에 다시 앉았다. 창밖을 보니 초록의 삼각형이 비를 먹고 훌쩍 자랐다. 숨을 한껏 들이쉬고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148쪽)
그들은 서툰 걸음이나마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떼놓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현실을 보여주는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맹순이 바당」에는 냉혹한 현실이 ‘실제 상황’인 것을 보여준다.
정신이 없어 말을 더듬는 사이 누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상할망이었다. 상할망이 끝분의 손을 잡자 그제야 눈물이 왈칵 나왔다. 할망, 어허어어…. 내 이럴 줄 알아서. 밤중 내내 삽작 밖이 소란스라방 내다봐신디, 굼부리로 올라가는 뒤꼭지가 딱 분이 너랑 닮아서라.
아이고, 이게 무신 일이냐. 정신 채리라게. 지금 정신 안 챙기면 너도 죽어, 알아들엄서?
상할망이 끝분의 뺨을 철썩 갈겼다. 끝분은 울다가 어안이 벙벙해서 할망을 쳐다보았다. 빨갱이 마누라로 몰리믄 너도 죽은 거. 저 잡놈들이 살인귀가 씌엉 탐라 사람 모조리 빨갱이로 몰앙 죽이려는 건디, 정신 차령 내 말대로 해라. 그래야 산다, 내 말 알아들어 지커냐! (164쪽)
바다 건너에서는 사람이 죽어 가는데 육지에서는 아무 일 없이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170쪽)
다시, 이 책은?
7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감정이입이 되는 인물들인가?
그렇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렇다.
감정이입이 된다. 그래서 소설 읽을만하다.
그들은 버텨낸다. 이 질곡의 삶 속에서도 그들은 버텨낸다, 그리고 세상을 향하여 나아간다.
‘힘이 있는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이기는 것’이라는 금언이 여기에 적용된다. 해서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 힘들어도 살아남기를, ‘살다보면 세상이 달라질 것’(169쪽)이니, 그때까지 버티고 살아남기를.
그런 소원을 하게 된다. 마치 그들이 실존인물인 것처럼 말이다.
아니, 분명 그들은 어딘가 현실 속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이름만 다를 뿐, 그들은 분명 살아있다. 독자로 하여금 이런 생각하게 하는, 이게 바로 소설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