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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K의 미필적 고의 - 이춘길 소설집 ㅣ 걷는사람 소설집 3
이춘길 지음 / 걷는사람 / 2021년 1월
평점 :
형사 K의 미필적 고의
이 책에는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한 표제작 <형사 K의 미필적 고의>을 비롯하여 모두 7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형사 K의 미필적 고의
동파
관리인
잡식동물의 딜레마
실종
카라반
피터의 편지
7편의 소설 특징을 말하자면, 작가는 소설 줄거리를 여간해서 보여주지 않으려 애쓰는 것 같다. 소설의 내용이 쪽수가 지나감에 따라 어느 정도 모습을 드러내야 하는데, 독자들은 그걸 잡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숨바꼭질 하는 동안에 숨어버린 아이를 찾다가, 찾다가 지쳐버린 술래처럼 말이다.
해서 읽다가 순간 당황해진다, 이거 뭐지, 요즘 소설은 이런가, 하는 의아함에 앞으로 돌아가 다시 읽는다.
나만 그런가 싶었는데, 다른 분들도 그걸 지적한다.
책의 후미에서 평론가 윤재민도 그걸 지적한다. 읽어보자.
이춘길 소설은 쉽사리 플롯의 전모를 드러내기 않는다. 등장인물들이 처한 상황 혹은 그들의 판단에 플롯을 전적으로 내맡기기 때문이다.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감추고자 한다.(248쪽)
평자의 말을 더 읽어보자.
때로는 은폐를 향한 열정의 강도가 너무 지나쳐 소설 구성과 구도마저 ‘왜곡’해버리는 지경으로 나아가기까지 할 정도이다.
물론 평자가 진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다음 말에 있다.
기묘한 건 이런 구성적 은폐와 왜곡이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사실이다.
이 말을 하려고, 평자는 플롯 감추기에 관한 말로 평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 다음 말도 역시 긍정적이다.
그들이 행하는 상식 밖의 선택과 태도가 이야기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쉽사리 예축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나 같은 독자는 그 끝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중간에 지쳐버린다는 데, 문제가 있다.
단편 소설인데도 중편, 혹은 장편 같은 도입부에 무언가 애가 타는 것이다.
예컨대 <동파>같은 경우다.
등장인물은 ‘나’와 J다. ‘나’는 남성, J는 여성이다.
‘나’와 J는 P 시로 숨어든다. 어떤 아파트에 숨어들어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당분간 피해’ 있는 것이다. J는 임신한 상태다.
그 둘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참고자료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정도, ‘J와 내가 업무 파트너 이상의 관계로 발전한 건 순전히 빌딩 사이로 불어오던 초여름밤의 신선한 바람때문이었다.’(49쪽)
그날 밤, 사건이 벌어졌다는 암시인 것이다.
해서 J는 임신을 했고, 이제 두 사람은 무언가를 피해 P시로 숨어든 것이다.
아내가 있는 기혼자인 ‘나’인데(64쪽) 무작정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닌데, 이에 대하여는 별다른 말이 없으니, 독자들은 이 소설 여기저기에서 애가 탄다.
정작 벌어진 사건은 이것이다.
숨어든 것은 겨울, 날씨가 추워 그들이 숨어든 아파트가 얼어버린 것이다. 수돗물이 나오지 않는 것......
그러면 이제 물이 나오도록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인데, ‘나’는 어떻게 대처하는가?
옆집에서 정과 망치를 빌려와서, 수도관이 지나갔음직한 부분을 깨기 시작한다.
주방 바닥을 깨부수고, 배관을 찾느라 방까지 들어와 방바닥을 깨기 시작한다.
이런 방법이라면 주방을 가로질러 화장실 앞까지 방바닥을 들어내야 할 텐데, 엉망이 될 집 안을 생각하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털썩 주저앉아 벽에 등을 기댔다.(66쪽)
그런 소동 끝에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진 차를 보러 나왔다가, 시청에 항의하러 가자는 옆집 사내의 손에 이끌려...
그런 줄거리다.
중간 중간에 어떤 힌트나 암시도 없이 그만 그렇게 끝이 나는 이야기다.
평자의 말을 빌려, 이 소설에 대해 말하자면, 이렇다.
그들이 행하는 상식 밖의 선택과 태도가 이야기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쉽사리 예축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난,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겠고, 전혀 예측하지 못한다. 못했다.
나는 한국 소설 특히 단편의 수준 높은 경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이 책으로 알게 되었다.
부끄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