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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의 사회학 - 디자인으로 읽는 인문 이야기
석중휘 지음 / 도도(도서출판) / 2021년 1월
평점 :
호구의 사회학
이 책은?
이 책 『호구의 사회학』은 <디자인으로 읽는 인문 이야기>란 부제를 달고 있다.
저자는 석중휘, <디자이너로 여러 회사에서 근무했으며, CI회사 로고파티를 운영하기도 했다. 2012년부터 숭의여자대학교 시각디자인과 조교수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저서로는 『불친절한 디자인』등이 있다.>
이 책의 내용은?
먼저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호구’의 의미를 살펴보자.
‘착한 사람’이라고 했다. 일도 잘한다고 했다. 또 많이 베풀수록 성공에 가까워진다고, 그래서 당신은 꼭 성공할 거라고 했다. 나를 잘 알았던, 아니 몰랐던 많은 사람들도 말이다. 하지만 사실 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착한’의 뜻이 ‘호구’의 의미라는 걸 말이다. (288쪽)
그 아래 호구의 사전적 정의를 밝혀 놓고 있다.
호구 (虎口)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그 밖에 두 가지 다른 의미도 있는데, 대개는 위의 뜻으로 쓰이고, 이 책에서도 위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런 호구, 대개는 갑과을의 관계에서 을의 위치에 서는 사람이 호구다.
이 책에서는?
저자는 디자이너인데, 디자이너가 호구 역할을 톡톡히 하는 모양이다.
디자이너로서의 애환, 호구 잡힌 사연들이 가득하다.
이런 말부터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저자가 책을 펴낸후 들었다는 말.
“디자이너인데도 글을 잘 쓰네요. 이런 시선으로 당신만의 글을 계속 썼으면 좋겠습니다.”(13쪽)
뒤에 나오는 말은 괜찮은데 앞의 말은 조금 거북하게 들린다.
본격적으로 호구 이야기 하자.
저자가 겪은 일이다. 아니 당한 일이다.
백화점의 전단지를 만드는 작업을 3 년여 하는데, 일의 속도가 전혀 빨라지지 않는 것이다. 항상 야근을 해야 하고, 때론 밤을 새워야 하는 일도 있었다.
저자 생각한다, 대체 왜 이렇게 변하지 않는 것일까?
일의 프로세스를 분석해 본 결과, 발주처인 백화점에서 피드백을 항상 그들의 시간에 맞춰, 즉 퇴근 때에 보내주기 때문에 디자인업체에서는 밤을 새워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이유는?
디자인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 즉 백화점의 결재권자들이 디자인에는 문외한임에도 불구하고 디자인의 단계에 끼어들어 그들의 목소리를 남기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이 구조 속 모든 이들이, 이 단계의 낯섦에 끼어들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새로운 디자인을 지적함으로써 그들 자신의 목소리가 그곳에 남겨지기를 원했다. 가장 위에 있는 ‘분’까지도 말이다. 그것이 곧 그들의 성과라고 믿고 있었기에.> (28쪽)
그래서 그들이 성과라고 생각한 것들이 다자인 업체의 밤샘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호구의 적나라한 실상이다.
저자는 그런 시선을 이제 외부로 돌려, 우리나라에에서 호구되는 것들을 보여준다.
그 중의 하나, 지하철 객차의 핑크 의자에 관한 논란.
임산부를 위한 배려로 만들어진 지하철 객차의 핑크 의자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이런 논의가 있었다.
- 노약자 석이 다른 곳에 마련되어 있는데 이 핑크석을 따로 만들어야 했는가?
- 이 좌석은 꼭 임산부만 앉아야 하는가? 혹은 임산부가 없더라도 좌석을 비워두어야 하는가?
- 노인은 이 좌석에 앉을 수 없는가? 바꿔 말하면 임산부는 노약자 석에 앉을 수 없는가? (252쪽)
이런 논의, 황당하지 않는가?
이 좌석의 취지를 안다면, 저런 논의는 불필요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쓸데없이 논쟁을 부풀리는 걸 좋아한다. 어디 호구잡을 것 없나, 노리는 하이에나 같다.
다시 이 책은? - <내가 공짜로 일하지 않는 이유 7가지>
저자에게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을 공짜로 부탁하는 일이 빈번하다는데, 저자는 그래서는 안되는 이유를 다른 사람의 글을 인용하여 밝히고 있다. 한번쯤 음미해 볼만하다.
항목만 적어둔다.
- 시간이 든다.
- 대가를 지불하는 고객에게 피해가 간다.
- 창의력이 떨어진다.
- 대다수 사람들은 공짜로 얻은 것은 시시하게 여긴다.
- 디자이너는 전문직이다
-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 품질관리, 책임, 평판에 문제가 생긴다.
이 책은 그렇게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단면들을 꺼집어내어 보여준다.
호구의 사회, 뜻밖에 디자인으로 촉발되어 살펴보게 되자, 우리니라 호구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펼쳐지고 있다는 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