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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센스 노벨
스티븐 리콕 지음, 허선영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0년 12월
평점 :
난센스 노벨
이 책은?
이 책 『난센스 노벨』 은 제목 그대로 소설이다. 난센스한 이야기로 가득한 재미있는 유머 소설집이다.
저자는 스티븐 리콕, <1869년 잉글랜드 햄프셔 지방의 스완모어에서 출생한 후 캐나다 온타리오주로 이민을 갔다. 토론토 대학교에서 언어학과 문학을 공부하였고, 미국의 [Truth]와 [Life], 토론토에서 발행되는 [Grip] 같은 잡지에 글이 실리면서 유머 작가로 명성을 얻었다.>
이 책의 내용은?
이 소설, 그냥 스쳐지나가며 읽어도 재미있고, 또한 천천히 음미하며 읽으면?
더 재미가 우러나는, 몰입도 최고의 책이다.
그래서 이 책 읽으면서 서양식 유머 코드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미국 TV 프로그램에서 코미디언이 토크 쇼에 나와서 재담을 할 때, 빵빵 터진다고 표현하는,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먼저 이런 글 읽어보자. 첫 번째 이야기인, <여기 해초에 묻히다>에 나오는 장면이다.
화자인 ‘나’가 '소시 샐리' 호에 승선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내 앞에 있는 선장은 서른에서 예순 사이의 건강한 선원처럼 보였다.(7쪽)
찾았는지? 어느 대목에 저자가 방점을 찍고 있는지를?
‘서른에서 예순 사이’, 거기에서 일단 한번 웃음이 나온다.
그 말과 다음 문장을 같이 한꺼번에 읽어보자.
내 앞에 있는 선장은 서른에서 예순 사이의 건강한 선원처럼 보였다. 커다란 구레나룻, 무성한 턱수염과 두꺼운 콧수염만 빼면 깔끔히 면도한 얼굴이었다. (7쪽)
구레나룻, 턱수염, 콧수염을 빼면, 얼굴에 남아 있는 부분은 어디일까?
구레나룻은 귀 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을 말하니, 턱과 코 밑을 제외한다면, 남아있는 얼굴은 이마 정도일까?
이런 식으로 유머는 진행이 된다.
해적이 쳐들어와 싸우는 장면을 살펴보자.
두 배가 옆으로 나란히 붙었다. 배가 가방끈과 새끼줄로 서로 단단히 묶였고, 가운데에 널빤지가 놓였다. 순식간에 해적들이 눈알을 굴리고 이를 갈고 손톱을 줄질하며 우리 배의 갑판으로 몰려들었다. (20쪽)
이 정도야 뭐. 그 다음 읽어보자.
그리고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점심시간 15분을 포함하여 두 시간 동안 계속된 싸움은 그야말로 끔찍했다.
마치 우스개말을 던지고는 시치미 뚝 떼고 다음 말을 천연덕스럽게 이어가는 코미디언, 그런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니 그 끔찍할 거라는 싸움 장면, 기대가 된다.
그런데 지금 ‘나’가 탄 배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나’가 탄 배는 선장이 선원들 몰래 보물이 묻힌 섬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런데 그 보물을 찾아낸 다음 배분할 몫을 줄이기 위해 선장은 선원들을 물에 빠뜨려 죽이고 있으며, ‘나’에게도 그 일에 동참할 것을 권유한다.
드디어 교활한 선장과 ‘나’는 가라앉는 배를 떠나 뗏목으로 갈아탄다. 비상식량을 두둑하게 챙긴 다음의 일이다. 상자 두 개 안에 들어있는 비상식량을 얼마 후에 꺼낸다. 내용물은 파란색의 네모난 소고기 통조림, 드디어 식사를 하려고 다가앉았는데..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23쪽을 참조하시라.
그렇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이 책에는 모두 8편이 실려 있다.
그런데, 이 책 그런 유머로만 읽혀지는 소설이 다가 아니다.
현대 문명을 비판하는 예리한 시각도 찾아볼 수 있다.
8번째 이야기, <석면 옷을 입은 사나이> 편이다.
‘나’는 지금 잠들었다가 2, 3백년 후에 깨어나고 싶어, 미래로의 잠을 준비한다.
잠에서 깨어난 ‘나’는 한 사람을 만난다.
그 사람의 발언이다. 들어보자.
하지만 당신들은 곧 기계가 쓸모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계가 좋아질수록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많이 가질수록 더 많이 원했지요. 삶의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습니다. 당신들은 힘겨워 소리를 질렀지만, 기계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이 스스로 만든 기계의 톱니바퀴에 갇혀버린 것이지요.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204쪽)
이 대목에서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가 떠오른다.
공장 톱니바퀴에 끼어 돌아가던 챌리 채플린의 모습, 그게 연상이 되는 것이다.
과연 2, 3백년후의 시대는 어떤 모습일까?
이 작품 <석면 옷을 입은 사나이>는 반전이 얌전히 기다리고 있다는 것, 그 다음 이야기는 스포일러니까 생략할 수밖에.
다시, 이 책은?
일단 이 책은 가볍다. 책의 무게도 가볍고 다루고 있는 내용의 무게 또한 가볍다.
그러나 그 가볍게 느껴지는 작품들이 품고 있는 메시지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가벼우면서도, 무언가 진중한 울림을 주는 작품, 웃으며 시작했다가 그 웃음 뒤에 숨어있는 진한 삶의 무게, 느끼면서 책을 덮을 수 있다.
아, 참! 2화 <넝마를 걸친 영웅>은 마치 우리나라 현재의 그 무엇을 풍자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범죄자가 등장하고, 경찰이 등장하고, 재판장이 등장하는데, 그 범죄자가 오히려 대우를 받는 게, 누군가를 자꾸만 떠올리게 하니, 참 별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