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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0월
평점 :
한 남자
이 책은
이 책 『한 남자』는 소설이다. 장편소설.
저자는 히라노 게이치로.
이 책의 내용은?
맨 처음은 ‘이게 뭐지? 뭐 이렇게 시시하지’ 라는 말 저절로 나온다. 시작이 그렇다.
언뜻 보면 아주 재미없는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 정확히 44쪽부터 이야기는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읽는 독자의 뇌는 활성화되기 시작한다.
아, 이거 누구예요?
어떤 사진 말씀이시지요? 아, 그 쪽은 아버지와 제 아들이에요.
아들? 아니, 그쪽이 아니라 이쪽 말이에요. 다이스케 사진은 없어요?
.....그 사진인데요.
이건 다이스케가 아니에요.
......예?
다이스케와 결혼한 리에는 다이스케가 죽은 후 그의 형이 찾아오자 죽은 동생 영정사진이 있는 불단 앞으로 형을 안내한다. 불단 앞에 선 형, 영정 사진을 보고 리에와 나눈 대화다.
죽었다는 동생 다이스케의 사진이 자기가 알고 있는 동생 다이스케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누군가 동생 다이스케 이름을 빌려, 다이스케 행세를 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모르고 다이스케라 알고 결혼까지 한 리에, 그때부터 혼란에 빠져든다.
이 소설은 그래서 ‘나란 누구인가?’란 주제가 묵직하게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호적상으로는 ‘다니구치 다이스케’라는 사람이 죽은 것이었다. 하지만 ‘다니구치 다이스케’의 죽음은 오로지 그 본인밖에는 죽을 수 없다. 그는 대체 누구였을까, 라고 리에는 죽은 남편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은 결국 그가 누구의 죽음을 죽은 것인가, 라는 질문이었다. (101쪽)
딱히 현실에 절망한 게 아니더라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은 것은 단 한 번뿐인 인생이라는 운명을 짊어진 인간이 흔히 품을 수 있는 바람이 아닐까. 막상 결단을 내리고 실행에 옮기는 무모함이 없어서 그것은 단지 꿈꾸는 단계에 머물 뿐이다. (234 쪽)
그런 질문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우리는 누군가를 좋아할 때, 과연 그 사람의 무엇을 사랑하는 걸까요. 처음 만나서 현재의 그 사람에게 호감을 갖고, 그다음에는 과거까지 포함해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죠. 근데 그 과거가 생판 타인의 것이라는 걸 알았다면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은……? (323쪽)
이에 대한 대답은 이렇다.
“알게 된 그 지점에서부터 다시 사랑하는 거 아닐까요? 한 번 사랑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몇 번이고 다시 사랑하잖아요. 여러 가지 일을 함께 겪으니까.” (323쪽)
이런 질문과 대답을 다른 형식으로 읽어보자.
나하고 나의 가짜가 있다면 진짜, 나 알아볼 수 있어?
그야 알지, 아빠 아들인데.
어떻게 알아?
딱 보면 알아. 목소리도 알고.
근데 얼굴도 목소리도 완전히 똑 같으면?
그러면.....아, 추억을 물어봐야겠다. 작년 여름에 함께 갔던 가족 여행은 어디였지? (205쪽)
아들과 기도 아키라의 대화다.
이런 질문을 독자들도 해 보면 어떨까? 나는 어떤 것으로 타인과 구별될 수 있을까?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가 참고자료로 사용된다.
저자는 기도 아키라와 아들의 대화를 통해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꺼집어낸다.
나르키소스 신화에서 나르키소스가 왜 수선화로 변했는지를 묻는 아들의 질문에 화자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읽게 되는 것이다.
『변신 이야기』에는 그리스 신화 중 온갖 변신담이 담겨 있다.
나르키소스를 비롯해, 파에톤의 죽음을 슬퍼하다 눈물의 보석 호박이 된 파에톤의 누이들, 사슴으로 변해 죽음을 맞이한 악타이온 등 많은 변신 이야기가 등장한다. (352쪽)
저자가 『변신 이야기』를 들고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변신 이야기』를 통해, X의 변신이야기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살인자의 아들인 X 가 신분 세탁을 통해 다니구치 다이스케로 변신한 사건을 『변신 이야기』를 통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의 특징 하나 - 주석
이 책은 소설이다. 그러니 굳이 책에 주석까지는 필요없다.
책을 읽는 독자의 층은 다양하니까, 각각 자기 양에 맡게 읽고 받아들일 것이다.
해서 어떤 소설은 그야말로 참고자료를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읽기도 한 적이 있고, 또 어떤 책은 그저 후루룩 읽어간 것도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책 말미에 주석을 달아 놓았다, 역자가 만든 주석이다.
주석을 읽어보니, 이게 없었다면 아마 그냥 모르고 넘어간 것 많이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 역자에게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드는 책이다.
한 남자, 그 남자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듯, 옷깃을 여미며 읽게 된다.
이런 것도 이 책을 읽고 얻게 된다.
인간은 다면적인 존재인데, 어떤 한 면만 보고 사람을 판단한 적은?
스티그마 얘기다. (162쪽)
사람들은 사람을 어떤 특징 하나로 규정해버리는 잘못을 범한다.
아이덴티티를 하나의 뭔가로 묶어놓고 그걸 타인이 쥐어 잡고 흔든다는 건 정말 못견딜 일이다. (163쪽)
인간에 대한 생각, 통찰력, 얻게 되는 소설이다. 일본 소설 중 많이 읽히는 추리소설 류와는 색깔이 다른 이 책, 정말 묵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