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학과 양명학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시마다 겐지 지음, 김석근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10월
평점 :
품절


주자학과 양명학

 

이 책은?

 

이 책 주자학과 양명학은 이 책 표지에 적힌 소개글 시대의 요청과 새로운 질서, 같으면서도 달랐던 두 가지 시선!’이라는 말로 알 수 있는 것처럼, 중국의 두 사조인 주자학과 양명학을 살펴보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일본인 시마다 겐지, <1917년 히로시마에서 태어났다. 전공은 중국사상이며, 동양사학자, 교토대학 인문과학연구소와 사학과 교수, 교토대학 명예교수를 지냈다. 일본 학사원 회원이기도 했다. 1940년대 중국 근세 · 근대사상사 연구를 시작한 이후 일본의 중국 근세 · 근대사상사 분야를 이끌어왔다. 2000년에 별세하였다.>

 

이 책의 내용은?

 

중국 송나라 이후 중국은 사대부들의 천하가 되었다. 사대부들의 철학과 사상 이데올로기를 넓은 의미의 송학이라 할 수 있는데, 송학은 크게 다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274)

 

첫째는 장재(張載, 張橫渠)가 세운 유물론, 즉 기의 철학이다.

둘째는 정이가 시작해서 주희가 완성한 객관유심론 즉 성즉리의 철학이다. 이를 주자학이라 부른다.

셋째는 육구연에서 시작하여 왕양명이 계승한 주관유심론, 즉 심즉리의 철학이다. 이를 양명학이라 부른다.

 

이 책은 위의 세 가지 중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 즉 주자학과 양명학을 다루고 있다.

 

그럼 주자학(朱子學)은 무엇인가?

 

주자학은 송나라의 유학자로, 그 이름을 떨친 주희(朱熹, 朱子, 1130-1200)가 수립한 학문 체계를 일컫는 말이다. 이 책에서는 주자가 말하는 존재론부터 윤리학을 거쳐 고전 주석학에 이르기까지 주자학의 모든 것을 살펴보고 있다.

 

주자학(朱子學)은 그 영향을 미친 곳이 단순히 중국에만 머물지 않고 동아시아 전체를 아우르고 있으며, 우리나라 조선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주자가 죽은 것은 1200, 그때까지만 해도 주자학은 지배적인 위치에 있지 못했다.

송나라를 거쳐 원나라가 중국의 지배자가 된 후, 1314년 원나라가 오랫동안 중단했던 과거를 다시 시행했을 때, 사서(四書)를 채택하고 또한 그 주()를 주자의 사서집주(四書集註)를 사용하도록 했으며, 그 밖의 오경(五經)에 대하여도 종래의 학설이었던 한나라와 당나라의 주석 대신 주자와 그의 제자들이 만든 새로운 주()를 지정 사용하도록 하였다.(203)

 

사서 오경을 해석함에 있어, 그 때부터 주자의 해석을 통설로 하였다는 말이다.

주자의 해석을 제일 권위있는 학설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러니 당시 선비들이 과거 시험을 보는데 주자의 학설을 위주로 공부하게 되었고, 이 말은 주자학이 과거의 시험이 됨으로써 압도적인 권위를 가진 학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주자학, 그 정체를 알고 싶었다.

 

그런 주자학이 대체 무엇이기에, 조선 시대 선비들은 거기에 목숨을 걸었을까?

왜 송시열은 주자의 견해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윤휴를 사문난적이라 해서 죽였을까?

 

조선왕조실록에 주자와 관련된 기록이 보인다.

윤휴는 주자(朱子)에 대해서 반대하고 거슬려서 장구(章句)를 마구 뜯어 고쳤으며, 중용(中庸)에 이르러서는 주()를 고친 것이 더욱 많았다. 그리고 항상 스스로 말하기를, ‘자사(子思)의 뜻을 주자가 혼자 알았는데, 내가 혼자 모르겠는가?’ 하였으니, 이는 진실로 사문(斯文)의 반적(叛賊)이며 (……) (숙종실록 31017, 조선왕조실록)

 

결국 주자의 견해와 다른 생각을 했다고, 윤휴는 사문난적으로 몰린 것이다.

 

유학에 대한 주자의 견해인 주자학이 대체 무엇이기에?

나의 의문은 거기에 있었다.

공자의 말씀을 나름 자기 식으로 해석한 것이 주자학이라면, 주자가 신이 아닐진대 주자의 의견과 달리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자연 주자학과는 다른 편에 선 양명학에 관심이 가게 되고, 그의 생각을 짚어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자학과 양명학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조선시대, 학설이 다르다고 사람 목숨를 뺏을 정도로 다른 것이었나?

 

주자학과 양명학의 차이는 성즉리와 심즉리로 그 차이점을 말할 수 있겠다.

 

주자학에서 말하는 성즉리(性卽理)란 다음과 같다.

 

()는 개인의 내적인 리()인 동시에 외적인 여러 사물의 리()이기도 하다. 사물을 지극히 궁구함으로써 앎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내적인 리()만으로 가능하지 않으며 외적인 리()도 궁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213)

 

여기서 외적인 리()’라는 것은 사물에 대한 리()’를 말한다.

그래서 역시 주자학에서 출발한 왕양명 역시 천하의 사물을 격물(格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격물(格物)이란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끝까지 따지고 파고들어 궁극에 도달함을 이르는 말이다.]

그래서 우선 정원에 있는 대나무를 격물한 것인데, 그는 그렇게 격물한지 7일만에 병이 나고 말았다. (213)

 

주자는 격물을 해석하기를 천하의 모든 사물을 궁구한다, 즉 격한다고 했는데 도대체 천하의 모든 사물을 하나하나씩 따지고 파고들 수 있겠는가? (215)

왕양명이 정원에 있는 대나무를 따지고 파고 들다가 병이 난 것,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이다.

 

그러므로 결국 주자의 학설은 으로 을 보충하는 것이 불과한 것이다.

결국 왕양명은 그러한 주자의 격물에 대하여, ‘심즉리(心卽理)’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218)

 

그래서 저자의 견해에 따르면, 주자학과 양명학은 목숨을 걸고 다툴만한 차이점은 없는 것이다.

저자는 양명학을 주자학과는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형이상학을으로 보는 입장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오히려 주자학이 전개되는 연장선 위에서 양명학이 등장했다고 보는 것이다. (343)

 

이런 저장의 주장에 의하면, 우리나라 선비들은 본질을 보지 않고 말단 지엽에 불과한 것을 가지고 싸운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되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다시, 이 책은?

 

나의 관심은 주자학, 양명학 그 자체에 있지 않다.

단지 그런 사상이 당시에 어떤 역할을 했으며, 더하여 그 두 사상의 차이점은 무엇이었나, 하는 점이다. 조선 시대에 윤휴를 둘러싸고 벌어진 사문난적 사건에 대하여 궁금증을 풀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나의 의문에 이 책은 훌륭하게 답을 주고 있다.

그것으로 이 책은 가치가 있다.

 

또한 주자학과 양명학에 대하여 깊은 논의 또한 전개하고 있으니. 관심있는 독자들의 궁금증도 충분히 풀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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