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가족은 안녕한가요
윤철 지음 / 지북(g-book)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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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가족은 안녕한가요?

 

이 책은?

 

이 책 당신 가족은 안녕한가요는 수필집이다.

저자는 윤철, <공무원으로 정년퇴직을 했다. 공직생활 중 전라북도 투자유치사무소장, 전라북도 국책사업단장, 전주시 2002 FIFA 월드컵추진단장, 전주시 기획조정국장, 진안군 부군수를 역임했고, 현재 전주강림교회 시무장로로 활동 중이다.>

 

저자의 다른 책, 수필집 칸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수필은 말 그대로 붓 가는대로 쓰는 글이다. 붓 가는 대로라는 말은 마음 가는대로 쓴다는 말이다. 그래서 수필을 읽으면 저자의 마음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 길을 같이 따라 걷는 기쁨이 있다. 이 책은 더더욱 그랬다.

 

다 읽고 나니, 저자의 생각에, 그 마음에 어느덧 박수를 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왜 그럴까. 그 이유를 몇 가지로 생각해 보았다.

 

글은 일단 문장이 좋아야 한다.

 

그래야 읽힌다.

문장이 좋아, 글에 빠져들어야, 그다음 내용도 눈에 들어오게 된다.

 

저자는 문장을 잘 다룬다. 글을 쓰는 게 보통이 아니다.

글을 가지고 논다, 는 말이 그대로 들어맞는 경우다.

 

이런 문장 읽어보자.

이슬 같이 촉촉한 새벽바람을 흠씬 마신다. 새벽엔 바람끝에도 달착지근한 향내가 있다. 풋내 풀풀한 여명이 노쇠한 모습으로 서성이는 어둠을 밀어내며 사물의 분별을 돋운다. 토함산은 수천, 수만 년의 깊이와 사유로 새벽 명상에 빠져있다. 잔잔한 표정이 뿜어내는 무르익은 침묵에 나도 스르르 스며든다. (134)

 

석굴암 가는 길, 때는 새벽이다.

그 길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 감각은 어떤 게 있을까?

시각이 있고, 촉각이 있다. 후각도 나타나 새벽을 그리고 있다.

그래, 그렇다. 석굴암 가는 길은 이런 총체적 감각으로 다가가야 하는 법이다.

 

여기 놀라운 표현 몇 가지 있다.

바람끝에도 달착지근한 향내가 있다.”

 

바람끝이라니? 저자의 혜안이 그저 경탄스럽다.

바람의 도 저자의 눈에는 보이는구나, 저자는 그 바람의 끝에서 풍기는 향내를 맡을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일어난다.

 

또 있다. “무르익은 침묵”   

대체 저자가 알고 있는 침묵의 종류는 몇 가지나 될까?

무르익은 침묵이라니? 그렇다, 침묵에도 격이 있다. 저자의 삶에서 만난 침묵 - <고사포 겨울바다>의 침묵은 후술하기로 하자 - 은 한창 무르익어 온몸으로 스며들기좋은 침묵인 것이다.

 

해서 석굴암 가는 길, 저자는 그 길에 서정을 담뿍 담아 뿌리며 간다.

 

이제 고사포 겨울바다의 침묵을 이야기해보자.

고사포는 전북 변산반도에 있는 고사포 해수욕장을 말한다.

저자는 언젠가 심란한 마음을 달래고자 한적한 고사포 해수욕장을 찾았다, 한다. (158쪽 이하)

 

거기에서 만난 침묵, 또 다른 모습의 침묵이 있다.

 

겨울바다는 유난히 깊은 적막에 빠져 지낸다. 솔밭에서 새어나온 침묵은 모래사장을 가로지르고 바다를 건너 멀리 하섬까지 이어진다. (159)

 

세상에! 독자들은 지금 침묵이 이동하는 현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글에서 침묵은 살아 움직이며 그 범위를, 그 세력을 바다를 건너 하섬까지넓혀간다.

그래서 그 침묵을 아는 자의 마음에 와 닿는 것이다.

그런 감성, 그런 감성을 뽑아내는 저자의 눈, , 부럽기만 하다.

 

그렇게 침묵을 살아 움직이게 만든, 저자는 <새벽 산행>에서 또 몇 가지를 살려, 살아가게 한다.

 

새벽 산에는 바람이 산다. (……)

새벽 산에는 이슬도 산다. (……) 길가 풀 섶 제집을 스치는 내 다리를 내치지 않고 받아들인다. 제 몸을 던져 바짓가랑이를 붙잡는다. 쉬어가기를 권하는 것이리라. (156)

(……)

새벽 산에는 편안함도 산다. (……)

 

또 있다.

 

오늘은 몰래 달아나버렸던 생각까지 되돌아와 나를 재촉한다. (157)

 

놀라운 솜씨다. 바람을 살리고, 이슬도, 편안함도 그를 만나면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 된다. 마치 창조주처럼, 저자는 글로 그것들을 살아 움직이게 한다.

 

그 다음 저자의 마음을 따라가 보자.

이런 문장에 저자의 마음 담겨있다. 읽어보자.

 

<석불의 미소가 조금 더 깊어진 듯하다.> (137)

 

보통의 경우 미소와 연결되는 형용사는 어떤 것일까?

나 같은 경우, 아무리 묘안을 짜낸다 하더라도 미소깊다를 연결시킬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깊은 미소

저자는 석불의 얼굴에서 미소가 깊어지는 것을 본다.

이는 저자의 마음이 석불의 미소에 머물렀다는 얘기다.

그건 저자의 이런 생각과 연결되어 나온 말일게다.

 

천년 명상의 깨달음을 담아 석불이 미소를 짓는다. 세속의 욕망을 말끔히 씻어낸 희미한 목소리가 내게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자연의 섭리를 들려준다. 내 삶은 얼마나 깊고 넓었는지 잠시 되돌아본다. 겨우 백년도 살지 못하는 일회성 삶에 연연하며 버리지 못한 것들에 짓눌린 작은 내가 거기 있었다. 삶의 곳곳에 스몄던 얼룩들이 하나둘 들춰지며 회개의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석불의 미소가 조금 더 깊어진 듯하다.

 

돌로 만들어진 부처가 미소를 짓는다고 해서 그 얼굴에 움직임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그 깊어보이는 미소는 순전히 저자의 느낌이리라. 바로 삶의 깊이를 성찰하는 그 마음으로 본즉, 석불의 미소가 깊어진 것이다.

그 유명한 말 있지 않은가?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고. 해서 삶의 깊이를 성찰하는 저자에게 돌로 된 부처지만, 그 미소가 깊어 보이는 것이다.

혹시 저자의 얼굴에 그런 미소가, 석불의 깊은 미소가 어려있지 않을까?

 

왜 이 책이 그리 잘 읽혔나?

 

이 책을 읽으면서, 한번 잡고는 내리 읽었다. 마침 식사 때가 아니어서 그렇지 밥이 나와도 잠시 물리고 읽었을 것이다. 그만큼 몰입도 만점인 책이다.

 

왜 그런가를 생각하니 어느새 저자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의 생각에 공감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칭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 평범은 표준이 되는 평범이다.

 

그러나 내 삶이 평범하다는 건 객관적인 의견일 뿐이다.

아무리 평범하기 그지없는 삶이라고 해서 어찌 애환이 없었겠는가. 밋밋한 삶에도 무수히 많은 사연이 존재한다. (145)

 

그러니 저자가 살아온 삶은 평범하지만 그 평범은 누구나 겪었을 표준적인 삶이다. 해서 그의 생각과 그의 글이 잘 읽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자의 글은 바로 이 책을 읽을 수많은 의 이야기이니, 그 속으로 저절로 빨려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저자의 우리말 사랑

 

수필가는 물론 글쓰는 사람은 모두 다 우리말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 이론의 여지가 없다.

저자의 우리말 사랑, 이 책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저자는 우리말을 잘 골라내어 보여주는데, 우리말 맛이, 이거 맛있다.

또한 정겨운 지방 방언도 잘 살려내고 있다. 몇 가지 예를 적어둔다.

 

<동네를 가로지르는 깔끄막진 골목길을 한 사내가 걸어가고 있다.> (15)

깔끄막지다

방언 (군산, 임실) 땅바닥이 가파르게 비탈져 있다.

 

<단대목이다> (31)

단대목 (대목)

명절이나 큰일이 바싹 다가온 때.

 

<깨복쟁이 친구인 K에게는 손주가 없다.> (65)

방언 발가벗은 사람 (전남)

벌거숭이, 옷을 다 벗은 사람을 뜻하는 전라도 방언. 주로 '깨복쟁이 친구'로 쓰이는데, 옷을 다 벗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함께 자란 허물없는 친구라는 뜻이다.

 

<몇 미터 가지 않아 뒤를 돌아보며 느실거리기 일쑤다.> (77)

느실거리다

1. 느릿느릿 걷거나 움직이다.

2. 축 늘어져 너울너울 움직이다.

 

<길고양이로 인해 생기는 피해와 귀찮은 일도 솔찬하다.>(77)

솔찬하다.

형용사 방언 꽤 많다. 전남 지방의 방언이다.

 

<초다짐하기에는 국수가 제격이다 싶어 국숫집 문을 열었다.> (81)

초다짐하다 (다짐하다)

정식으로 식사를 하기 전에 요기나 입가심으로 음식을 조금 먹다.

(예문) 주인어른이 일 보러 가시면서 늦거든 초다짐으로 손님에게 술 한 상 먼저 들이라고 했소.

 

이런 것 알게 되다니!

 

꽹과리를 타격하는 꽹과리채의 동그란 끝부분을 이라 하는데, 뽕을 만드는 재료로 탱자나무를 최상으로 친다.(131)    

 

탱자나무로 만든 뽕은 단단하면서도 질겨서 수명이 길고 꽹과리를 칠 때의 타격감도 부드러워 으뜸으로 친다.

이런 탱자나무의 쓸모가 이렇게 대단하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되니, 탱자나무 이제 다르게 보인다.

 

<35천원의 체면 유지비> (152쪽 이하)

 

이런 것, 필히 기억해두자.

요즘 요상한 자리를 잠시 지나간 것만으로 호사가들의 입초시, 입길에 오르내려 본의 아닌 봉변을 당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그렇다고 일일이 다니면서 변명하기도 그렇고, 그런 자리, 그렇다고 내버려두면 발 없는 말은 저 혼자 몇 천리를 다니니, 참 난감한 일이다.

저자도 그런 경우를 당했다.

 

초저녁에 모텔에 갈 일이 있었다. 외지에서 친구들이 와서 묵고 있는 모텔에 잠시 들렀다 나오는 길인데, 그만 딱 아는 사람과 만나고 말았다. 그 모텔 주인 - 이 역시 알고 있는 사람 -과 마주친 것이다. ‘초저녁에 이런 모텔에 출입하는 내가 저사람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까?’ 하는 생각이 순간 스친다.

더군다나 당시 저자는 공직의 책임 있는 자리에 있었기에, 분명 이런저런 말이 돌 게 분명했다.

 

, 이 경우 저자의 행동에서 우리는 배워야 한다.

저자는 다시 그 사장을 찾아갔다.

그리고 구질구질하게 그 모텔에 왔다가는 이유를 설명하는 대신, 맥주 다섯 병, 오징어 한 마리를 그 방으로 보내달라고 주문을 한다. 정말 솔로몬을 방불케 하는 지혜다.

이런 지혜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다시, 이 책은?

 

이 책을 읽고, 수필에도 격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품격있는 수필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 이 수필집은 그런 격을 모두 갖추고 있다.

 

지금까지 읽었던 수필집과는 맛이 다르다.

수필로서 담아야할 요소들을 골고루 갖추고 있으니, 이 책 수필의 모범을 보여준다. 더하여 자기만족에 빠지지 않고, 그 자리에서 잠시 멈춰 서서 성찰을 보여주는 인생론또한 이 책을 깊이 있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저자의 이런 글로 이 리뷰를 마무리하고 싶은데, 어떨까?

<오늘 저녁엔 당당하게, 신나게, 멋지게, 그러면서도 져주는 넉넉한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을 담아서 내가 나를 위해 건배를 제의해 봐야겠다. “당신, 멋져!”> (117)

 

이 말을 약간 바꿔, 이렇게 말이다.

당당하게, 신나게, 멋지게, 그러면서도 져주는 넉넉한 삶을 살고 있는 저자를 위해 건배를 제의해 봐야겠다. “당신, 멋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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