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거짓말 두 번째 이야기 인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2
박홍규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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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거짓말 두 번째 이야기

 

이 책은?

 

이 책 인문학의 거짓말 두 번째 이야기<인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굵직한 물음을 부제로 하고 있다.

 

저자는 박홍규, <현재 영남대학교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로 전공뿐만 아니라 정보사회에서 절실히 필요한 인문·예술학의 부활을 꿈꾸며 왕성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동안 제우스는 죽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조지 오웰, 니체는 틀렸다, 인문학의 거짓말등 수많은 저서를 펴냈다.>

 

이 책은 인문학의 거짓말에 이어서

 

이 책은 인문학의 거짓말의 후속편으로, 첫 번째 책에서는 고대를 다루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중세를 다루고 있다.

 

다른 인문학 책들이 다루고 있는 지역이 대개는 유럽 쪽인데 비하여 이 책에서는 서양도 다루고 있지만 그 비중은 적은 편이다. 대신 인도, 이슬람 지역, 그리고 동양에서 중국과 한반도를 다루고 있다.

 

지금껏 인문학이란 타이틀로는 가보지 못한 시대와 지역이다.

해서 일단 서구 쪽으로만 향하던 인문학에서 벗어나 그 인식의 지역이 넓어지니 자연히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는 경험을 맛볼 수 있다.

 

이 책에서 특히 강조하고 있는 것은 서양의 중세 하면 보통 암흑기로 알고 있는데, 해서 서양이 그러니 다른 지역들도 모두 전세계적으로 암흑시대로 생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것이 잘 못이라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암흑기였지만, 인도, 이슬람, 그리고 동양은 문화가 발전한 시대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중세의 인문학을 얘기하면서, 서양의 비중을 대폭 줄이고 인도 등에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 한 마디로?

 

저자가 인문학의 거짓말이란 제목을 붙인 것이 저자의 주장을 잘 반영하고 있다 할 것이다.

인문학이라는 타이틀 하에 아무렇게나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것들 - , 주장, 사상 -을 거침없이 검토하고 비판의 대상으로 올려 놓는다.

 

그래서 인문학의 거짓말이란 제목의 의미는, 인문학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거짓말의 주체가 인문학이 아니고, 그 대신 거짓말을 하는 주체는 인문학을 거짓으로 사용하는 자 ? 그게 사람이든, 시대든, 또는 경향이든 ? 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그러한 거짓을 하는 사람들, 그런 경향을 비판하고, 인문학을 제대로 살려보자고 하는 주장이 담긴 책이다.

 

몰랐던 것, 잘 못 알고 있던 것들 - 바로잡게 된다.

 

타고르는 그 유명한 시를 왜 썼을까?

 

우리나라를 동방의 어쩌고 하면서 찬양했다고 타고르를 유별나게 치켜세우는데, 이는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타고르가 스스로 쓴 시가 아니라 한국인이 부탁해 억지로 내갈긴 메모 한 귀퉁이를 해방 후에 교과서에 실었던 이유는 그것이 소위 저명한 외국인 작가가 한국에 대해 쓴 유일한 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일분자인데도 2011년 서울에 그의 흉상까지 세운 것이리라. (60)

 

당시 타고르는 일본에서 유명했고 특히 그 어떤 외국인보다 일본 문화에 탐닉했기 떄문에 환영받았다. (59)

 

타고르에게 한국을 위한 시를 써달라고 부탁한 사람 이름을 저자는 밝히지 않고 있어 아쉽다.

 

한손에는 칼, 한 손에는 코란

 

이슬람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오로지 무력으로만 전파되었다는 것인데

그 대표적인 게 한손에는 칼, 한 손에는 코란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중세 기독교를 대표하는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십자군 전쟁에서 싸운 적인 이슬람을 폄훼하기 위하여 퍼뜨린 과장된 말이다. (110)

 

아리비아 나이트가 호색문학?

 

아라비안 나이트가 유럽에 소개된 것은 제국주의가 시작되면서다. (……) 호색문학이나 성애문학 측면이 강조된 것은 아랍세계를 음란한 비도덕적 사회로 오해하도록 해서 식민지 침략을 정당화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126)

 

이슬람 세계에서 인간이나 동물을 형상화 하지 않는 이유는?

 

생명체를 표현하는 것이 이슬람 미술에서 처음부터 금지되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코란><성경>처럼 이야기가 아니어서 형상화할 사건이 없다. 즉 형상화가 불가능하기에 없을 뿐이다. (146)

 

구스타프 클림프의 그림, 관능적인 것?

 

구스타프 클림프의 그림은 종교적이라고까지는 하지 못해도 정적의 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클림프의 그림이 곧잘 관능적인 것으로 오해되어 유감이다. (214)

 

밑줄 긋고 새겨야 할 말들

 

언제 어디서나 외부의 적을 만드는 비열한 가짜 보수의 방식이 정치판과 똑같이 득세한다.(106)

 

한국에서 기독교인들이 해야 할 일이 그렇게도 없는가? 도리어 기독교인들을 성경을 제대로 따르는 참된 기독교인으로 개종시켜야 하지 않는가?( 113)

 

종교가 재앙으로 변하는 것은 그것이 정치화될 때라기보다는 권력화될 때라고 보는 것이 옳다. (120)

 

이런 글은 어떤지? - 그 내용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바울은 할례와 식사 규정을 없애는 동시에 처녀 출산이나 3일만의 부활 등 사람들을 매혹하는 신비로운 이야기를 많이 첨가했다. (17)

 

바울이 <(마리아의) 처녀 출산이나 3일만의 부활>을 첨가했던가?

 

불교는 서서히 몰락하다가 12세기 이후 인도에서 자취를 완전히 감추었다.

물론 이슬람 세력은 불교와 힌두교 사원과 성지를 파괴하고 승려들을 학살했다. 특히 나란다 불교대학을 비롯해 수많은 불교 사원을 파괴해 승려 대부분이 네팔과 티베트, 남인도로 떠났다. 티베트에서는 그곳의 고유 종교와 융합해 라마불교가 생겨났다. 그러나 이슬람은 전래 이후 불교나 힌두교와 공존을 모색했다. (39)

 

그러나이후의 발언은 앞의 말과 배치된다.

 

게다가 봉제사(奉祭祀)와 대가족제도를 대단한 이상사회로 미화하는 소위 페미니스트들을 보면 아연하다. (47)

 

페미니스트는 봉제사 등 대가족제도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다시, 이 책은?

 

이 책은 저자가 <월간 인물과 사상>20182월부터 20199월까지 연재한 글을 엮은 책이다. 그만큼 심혈을 기울여 쓰여진 책이라는 것이다.

 

특히 주류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쓰는 것은 더 힘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하여 쏟은 땀이 제대로 존중받아야 할, 가치 있는 책이라 생각이 된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그간 읽었던 인문학 책들에 대해 제대로 평가를 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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