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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마이 갓 오 마이 로드 - 바이러스 · 종교 · 진화
방영미 지음 / 파람북 / 2020년 9월
평점 :
오 마이 갓, 오 마이 로드
이 책은?
혹시 책을 읽다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는지?
고개를 자기도 모르게 끄덕이다가, 문득 그걸 깨닫고, 저절로 나오는 말.
‘어, 나도 모르게 이 말에 그만 공감해버렸어!’
그런 외침, 자주 한 책이 있다.
바로 이 책, 『오 마이 갓 오 마이 로드』이다.
<바이러스ㆍ종교ㆍ진화>라는 이 시대를 통찰할 수 있는 적절한 부제를 달고 있다.
저자는 방영미, <방 박사는 팟빵 ‘종교모두까기’의 운영자로 코로나19 이전이나 이후나 한결같이 제도화된 종교를 모두 까고 있다. 팟빵 사씨맨투맨의 출연자로 시사·예능 방송에서 교양 지식을 담당(아마도 시작은?), 극우 유튜버 들의 동태를 살피며 극우 논리를 습득하다 급기야 멘탈 붕괴, 이로 인한 자아 이탈을 해탈로 오인하는 정신승리 과정에 대한 분석가로 거듭나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저자가 이 책의 부제로 <바이러스ㆍ종교ㆍ진화>라 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 소개에서 그 이유를 추론해 볼 수 있다.
<종교학 전공자, 종말론 묵시록 연구자로서 방 박사는 말한다. 바이러스 테러를 운운하며 정작 교회가 시민사회를 위협하는 공공의 적이 돼버린 현실에서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나와 우리 이웃이 덜 상처 입도록, 이미 내상이 깊다면 치유할 수 있도록 종교를 아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여겨 이 책을 썼다.>
또한 이런 발언, 역시 부제의 의미를 밝혀주는 글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그런 문제 제기가 전혀 근거 없지 않았다는 점을 어느 정도 드러냈다. 전 세계적 위기 상황에서 시민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저버려 교회는 바이러스 전파의 온상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거친 입으로 비난받았던 전광훈 목사는 드디어 국가의 방역 체계를 위해하는 심각한 사태를 초래했다.>(21쪽)
가뜩이나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상황이 엄중한 이 시기에, 교회가 도움은 주기는커녕 오히려 방해가 되고 있으니, 문제라는 것이다.
그럼 대체 지금의 시점에서 종교는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가?
여러 종교가 있지만, 현재 기독교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종교로만 국한해 살펴보자.
우선 저자의 발언, 두 가지 먼저 들어보자.
오늘날처럼 대형교회의 비리가 만연하고 이른바 이단이라고 하는 종교단체가 사회문제를 계속 일으킨다면 종교는 게토화할 가능성이 크다.(127쪽)
대체 왜 신도들은 전광훈의 거친 표현에 열광하고, 단순무지한 행동에 영혼을 빼앗기는 것일까? 대체 왜 저런 말초적인 자극에 그토록 약한 것일까? (20쪽)
나도 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 대체 한국교회는 왜 이 모양이 되었으며, 왜 저런 사람에게 휘둘리고 있는 것일까?
전광훈 : 현재 상황은?
한국교회는 가뜩이나 추락 중이었는데, 전광훈이라는 망가진 날개로 수직낙하의 가속도가 붙어버렸다. 어쩌면 이것이 그의 소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는 탐욕과 거짓 위에 세워진 위선의 교회를 지금 제대로 붕괴시키고 있다. (21쪽)
동성애 :
교회가 신경을 써야 하는 곳이 태산 같은데, 엉뚱한 문제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으니, 그게 동성애. 기독교가 얼마나 헛된 데 힘을 쏟고 있는지, 그 문제점을 저자는 정확히 지적한다.
개신교는 한국 사회가 아직 껄끄러워하는 동성애 문제를 꼭 짚어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곧 동성결혼도 합법화될 것이라고 겁박하는 반대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41쪽)
약자간의 혐오를 부추기는 곳이 종교계에서는 극우 개신교다. 종북좌빨에 대한 혐오감이 약간이나마 옅어지자마자 동성애와 이슬람 혐오에 전력을 쏟고 있다. 왜냐면 동성애와 무슬림들이 우리사회에선 소수자 곧 약자이기 때문이다. 혐오를 이용해서 권력을 유지하는 자들은 절대로 강자를 건드리지 않는다. (118쪽)
문제가 되는 보수 개신교는 항상 외부의 적이 필요하다. 더구나 최근 빨갱이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가 옅어지는 사회 분위기 탓에 이를 대신할 강력한 사탄이 필요해졌다. 이슬람은 충분히 혐오 정서에 적합한 상대이긴 하나 문제는 아직 우리 사회에서 그들의 영향력이 미비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혐오대상을 물색하던 차에 딱 걸린 게 동성애다. (167쪽)
‘다윗의 범죄 그리고 회개’라는 훌륭한 사례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불법적으로 취하여 수태시킨 다음에, 이를 감추고자 남편 우리야를 죽이기까지 한다. 이후 밧세바 사이에서 낳은 첫아이의 죽음과 다윗의 회개로 성서는 우리야의 사건을 정리해버린다. (152쪽)
이 사건은 우리나라에서 이상하게, 훌륭하게(?) 활용되고 있다.
교계에서 성범죄를 저지른 목회자들은 이 사건을 활용, 이런 발언으로 엄중한 추궁을 피한다.
‘다윗같은 위대한 왕도 실수하잖아.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으니 더 위대한 왕이 되었어.’
이런 발언이 전가의 보도처럼 나부낀다. 성범죄자들은 다윗의 회개를 조자룡 헌 칼 쓰듯이 들먹이며 휘둘러댄다.
이런 발언에 이의 있다. 그들에게 이렇게 소리쳐주고 싶다.
첫째, 당신은 다윗이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결코 될 수 없다.
그 다음, 다윗왕은 그 범죄에 합당한 벌을 받았다. 그런데 당신은 아무런 벌도 받지 않고 있는데?
그 다음에 이런 말, 지금이 무슨 왕권시대라도 되는 줄 아느냐? 당시 다윗은 왕국의 왕이었다, 그런데 당신은 왕은커녕, 왕 근처에 가지도 못한 일개 시민에 불과하다. 당신이 다윗처럼 골리앗을 물리친 적이 있다면 혹시 모르겠다.
물론 이런 말 해도, 어디 그 사람들이 ‘들을 귀’가 있기는 한가? 그게 문제다.
니체가 죽었다는 신은 어떤 신인가?
흔히 하는 얘기가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했기에 저주를 받아 미쳤다고 한다.
과연 그런 얘기가 맞는 것일까?
그 말이 맞는가 살펴보기 위해선, 니체가 죽었다고 말한 신은 어떤 신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말한다. 니체가 죽었다는 신은, 인간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도용하고 남용한 왜곡으로 굴절된 신이다. (217쪽)
그런 신이 ‘신’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으면, 기독교에서 말한 ‘우상’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니 니체가 죽었다고 말하기 이전에 기독교의 ‘신’은 당연히 그런 신을 죽였을 것이 분명하다. 니체는 단지 이를 선언한 것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니 니체를 그런 우상이 된 가짜 신을 죽었다고 선언한 공로를 인정해서 칭찬하지는 못할망정 저주의 말을 퍼부어서는 결코 안 되는 것이다.
통찰의 언어들
저자는 이상과 같이 도처에, ‘오 마이 갓’이라는 비탄조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어디 그뿐인가, ‘오 마이 갓’이라는 감탄사에 이어 이번엔 ‘오 마이 로드’라고 무릎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말, 있으니, 여기 몇 개만 적어본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인식의 폭이 넓어지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보다는 경험으로 선입견이 생겨서 사고를 편협하게 가둬버리는 일이 더 비일비재하다. (124쪽)
내 안의 완고함이 다양함과 상이성을 열등한 것으로 보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내 안의 무지함이 독선과 아집을 정당화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매순간 성찰할 일이다.(129쪽)
개념이 하는 역할은 구체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나아갈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지 일상의 세세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129쪽)
우리가 성서에서 경직된 교훈만 얻는다면, 그건 아주 슬픈 일이다. 성서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 않고 구속한다면 그건 창조주의 뜻이 아니다. (195쪽)
내세는 너무 멀고 사후는 모르겠고, 지금 당장 삶이 힘들어서 종교에 의지하는 것 아닌가. 그러니까 태생적으로 종교는 그런 것이다. ( …… ) 이런 종교의 속성, 그 속물성을 통제하기 위해 신학이 필요한 것이다. (212쪽)
다시, 이 책은?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숫자를 혹시 세어본 적이 있는가?
그런 셈 해본 적이 없지만, 해본다면 아마 이 책이 톱에 들지 않을까?
‘오 마이 갓’에 해당되는 부분도, ‘오 마이 로드’에 해당되는 부분도, 모두 고개를 끄덕일 테니.
그런 끄덕임 차치하고, 이 책을 읽고나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대체 왜 기독교가 문제가 되는지, 그 문제를 해결하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길이 보일 것이다. 기독교로 비롯된 현안문제에 대한 시원한 대답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읽으면? 시원하다. 더하여, 기독교, 좀 시원하게 만들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