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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식수필
정상원 지음 / 아침의정원 / 2020년 8월
평점 :
탐식수필
이 책은?
이 책 『탐식수필』은 <미식 탐험을 위한 안내서>다.
저자는 정상원,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에서 유전공학과 식품공학을 전공하고 현재 레스토랑 <르꼬숑>에서 문화총괄 셰프로 일하고 있다.
라면 레스토랑 <알라면>, 스페인 바스크 식당 <엘세르도>, 카르보나라 전문점 <석탄>과 프렌치 파인 다이닝 <르꼬숑>을 운영하면서 음식과 문화의 접점을 찾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
이 책의 내용은?
‘식탁에 먹을거리가 가득하다’라고 말할 뻔 했다.
이렇게 말해야 되는데 말이다.
‘이 책 안에 먹을거리가 가득하다.’
어디 그뿐인가, 식탁에 이야기 거리가 풍성하게 넘치고 또 넘친다.
먼저 사과 얘기부터 해보자.
뉴턴의 머리위에 떨어진 사과 품종을 알고 있는지?
‘그걸 어떻게 알아’ 라고 말하지 마시라.
저자는 알고 있다. ‘켄트의 꽃’이라는 품종이다.
그 사과는 아린 맛과 푸석한 식감 때문에 바로 먹기에는 부족하단다.
그런 사과이기에 저자의 이런 발언, 일리가 있어 보인다.
“만약 '켄트의 꽃'이 크고 단단했더라면 뉴턴의 머리에는 다른 시련이 찾아 들었을지 모른다.”(10쪽)
내친김에 저자의 생각에 나의 생각을 덧붙여본다.
‘만일 그 사과가 크고 단단해서, 그게 뉴턴의 머리에 내려 앉아 상처를 냈더라면, 뉴턴은 그 상처를 치료하느라 정신이 팔려 미처 만유인력은 생각도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
그러니, 사과 품종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어느 제빵사와 마리 앙투아네트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해선, 다른 글에서 관심을 표한 바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괴테, 그리고 메데이아 [1]
http://blog.yes24.com/document/12392183
이 책에서 또 다른 일화가 있어 옮겨본다. 식탁에서 나눌 수 있는 얘깃거리가 된다.
어느 나라에서나 제빵사는 아침으로 먹을 빵을 준비하기 위해 누구보다 일찍 새벽을 연다. 오스만제국이 유럽을 침공하던 시대, 어느 날 새벽에 빵을 만들던 한 제빵사는 오스만 군대가 오스트리아를 공략하기 위해 지하에서 땅굴을 파는 작업소리를 듣게 된다. 제빵사의 신고로 이를 알게 된 오스트리아는 오스만 제국의 침공을 막아낼 수 있었다. 이 공을 높이 산 오스트리아의 왕이 제빵사에게 상을 내리기로 하자 영리한 제빵사는 초승달 모양의 빵에 대한 특허권을 요청한다. 오스만의 상징인 초승달 모양의 크루아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후 오스트리아의 공주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 앙리 16세의 왕비로 정략결혼을 하게 됐고, 그녀가 고향을 그리며 엘리제궁의 요리사에게 크루아상을 만들게 하면서 크루아상이 프랑스에 전해졌다. 그러나 프랑스인이 가장 사랑하는 빵을 전해준 마리는 단두대의 눈물로 화했고, 아직까지도 이슬람의 몇몇 나라에서는 오스만의 패전을 조롱하는 초승달 모양의 크루아상은 판매가 금지되어 있다. (70쪽)
빈티지 vs. 빈티지
<와인의 빈티지는 포도의 수확 연도를 말하는데, 이는 와인의 품질과 개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102쪽)
여기에 더하여 치즈의 경우에도 빈티지라는 말이 사용된다.
와인이나 치즈가 만들어진 특정한 연도를 ‘빈티지’라 부른다. 우리에게는 그해 농축산 가공품의 가격을 정하는 기준으로 여겨지는 빈티지가 그들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진다. 작황을 통해 자연과 사람의 관계를 기록한 빈티지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며 매년 기록하여 후대에 넘겨주는 숙제다. 빈티지는 그해의 바람과 땅과 햇빛에 대해 적은 일기장이다. (127쪽)
그런데 또 다른 빈티지가 있다.
‘낡고 오래된 것. 또는 그러한 느낌이 나는 것’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예컨대 ‘빈티지 스타일’
이 책으로, 빈티지(vintage)라는 단어의 의미 넓혀 보게 된다.
생선은 왜 두 마리씩?
생선은 왜 두 마리를 기준으로 헤아리는 것일까?
여기 그 해답이 있다. (75쪽)
냉장고가 없던 시절, 반나절이면 생선은 상하기 때문에 새끼줄로 꿰어 처마에 걸어두곤 했다. 걸어두는데 균형을 맞추기 위해 왼쪽과 오른쪽 짝을 지어 걸어두었고, 이렇개 하는 동안에 두 마리씩 헤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문화총괄 셰프’
저자의 이력을 보니, 생소한 직책이 눈에 띤다. 문화 총괄 셰프.
음식이 단순하게 먹는 것이라는 발상은 이제 한 물 간 것이다. 음식을 차리는데 영양가로부터 멋, 맛, 분위기 등 고려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이다. 이제 거기에 한 가지 덧붙일 게 있다. 문화다.
저자, 문화 총괄 셰프는 그 직책 이름에 걸맞게 이 책에서 독자로 하여금 문화를 재료삼아 음식에 맛을 더해 맛보도록 해준다. 그의 부엌에는 다만 음식 재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가 더 맛있게 준비되어 있는 듯하다.
라만차의 돈키호테 (27쪽), 마르케스의 <천년동안의 고독> (35쪽)
<쌍화점> (51쪽), 프란츠 리스트 (56쪽)
영화 <글루미 선데이> (59쪽), 안톤 체호프 <굴>(82쪽)
영화 <봄날은 간다> (98쪽), 쥐스킨트 <향수> (140쪽)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150쪽), 고흐 <밤의 카페> (245쪽)
거트루드 스타인 (292쪽), 로맹 가리 <새벽의 약속> (297쪽)
레이 브레드버리 <화씨 451> (296쪽),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303쪽)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05쪽) 마티즈, 피카소, 마네 등등.
빅토르 위고가 했다는 말, “멜랑콜리는 슬퍼하는 기쁨이다.”(150쪽)는 후식이다.
다시, 이 책은?
저자는 영화, 그림, 음악, 문학 등등을 알맞게 섞어, 음식에 문화를 담뿍 얹어 맛깔나게 만들어내고 있으니 문화 총괄 셰프라는 직책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음식이 다만 먹거리로서의 역할을 넘어 ‘문화’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고 의미 있게 만들어준다는 데 이의가 없다. 그래서 이 책이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