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와 함께하는 여름 함께하는 여름
실뱅 테송 지음, 백선희 옮김 / 뮤진트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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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와 함께하는 여름

 

이 책은?

 

이 책의 저자인 실뱅 테송은 독자들에게 제안한다.

하던 일을 멈추고, 당장 일리아스오디세이아를 펼쳐 들고 바다 앞에서, 방 창문 앞에서, 산꼭대기에서 큰 소리로 몇 구절 읽어볼 것을. (25쪽)

 

그런데 독자인 나로서는 그 전에 할 일이 하나 있다는 것, 말해두고 싶다.

바로 이 책을 읽는 것이다.

이 책 호메로스와 함께하는 여름, 호메로스의 두 서사시 - 일리아스오디세이아- 를 공부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기 때문이다. 해서 호메로스를 읽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읽고 난 다음에 두 책을 읽으면, 단지 몇 구절을 읽는다 하더라도, 보다 더 잘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실뱅 테송, 프랑스의 작가·여행가이다.

<일찍부터 극한 조건의 여행과 탐험을 일삼았고 두 발로 세상을 살며 다수의 책을 출간했다. 노숙 인생Une vie a coucher dehors으로 2009년 중편소설 부문 공쿠르 상과 아카데미 프랑세즈 상을 수상했고, 시베리아 숲속에서Dans les forets de Siberie2011년 에세이 부문 메디치 상을 수상했으며, 눈표범La Panthere des neiges으로 2019년 르노도 상을 수상했다. 그의 여러 책이 대중의 사랑을 받았는데, 특히 호메로스와 함께하는 여름2018년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팔린 에세이이자 전 분야의 베스트셀러 6위에 자리매김했다. >

 

이 책의 내용은?

 

이 책은 라디오 방송국 [프랑스 앵테르]에서 2017년 여름에 방송된 [호메로스의 함께하는 여름]이라는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저술된 책이다.

 

이 책을 몇 번 읽으면서, 어느 다른 호메로스 관련 책보다도 호메로스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결과 다음과 같이 호메로스와 그의 책들을 정리해 볼 수 있었다. 그게 가능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 책에 실린 정보와 정보 제공방법이 탁월한데 있지 않나 싶다.

 

다음은 이 책을 읽고, 호메로스와 두 서사시 - 일리아스오디세이아- 를 나름 요약 정리한 것이다,

 

호메로스에 대하여

 

호메로스가 누구일까, 누구였을까?

저자는 이런 말로 그 문제를 간단히 해결한다.

 

호메로스는 오디세이아의 도입부에서 므네모시네를 소환한다. 기억의 여신인 그녀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시인인 그는 그 멜로디의 정수를 받아 적기만 할 것이다. 텍스트가 여신의 입에서 나왔는데 필사자의 가면을 벗겨서 무엇 하겠나.(27)

 

해서 오디세이아일리아스를 찾아본 결과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는 것, 기록해 둔다.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아카이오이족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으며

숱한 영웅들의 굳센 혼백들을 하데스에게 보내고

그들 자신은 개들과 온갖 새들의 먹이가 되게

그 잔혹한 분노를!

인간들의 왕인 아가멤논과 위대한 아킬레우스가

처음에 서로 다투고 갈라선 그날부터

이렇듯 제우스의 뜻이 이루어졌도다.

(일리아스, 11-7)

 

들려주소서, 무사 여신이여!

트로이의 신성한 도시를 파괴한 뒤

많이도 떠돌아 다녔던 임기응변에 능한

그 사람의 이야기를.

(오디세이아, 11-2)

 

호메로스는 기원전 8세기에 살았다.

헤로도토스는 그가 나보다 400년 앞서살았다고 주장한다. (28)

 

이런 발언은 헤로도토스의 저술인 역사에 나오는 말이다.

<헤시오도스와 호메로스는 나보다 기껏해야 400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생각되며>

(역사, 헤로도토스, 253)

 

그리스의 일반적인 생각과 호메로스의 개별적 가르침의 토대는 이것이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제자리를 벗어나는 데서 오며, 삶의 모든 의미는 내쫓긴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데 있다는 것. (119)

 

일리아스오디세이아

 

저자는 호메로스의 저작인 두 서사시에 대하여 그 의미를 잘 보여주고 있는데, 어떤 때는 개별 작품을 논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두 작품을 연결하고, 비교하면서 작품의 특성을 잘 추출해 보여주고 있다.

 

일리아스는 우리에게 하나를 가르쳐주었다. 인간은 저주받은 피조물이라는 것. 세상을 이끄는 것은 사랑도 아니고 선의도 아니고 분노라는 것. (99)

 

일리아스는 인간들에게 내린 저주를 주제로 한 노래였다.

반면 오디세이아는 집단적 광기에서 벗어나 인간으로서 타고난 조건 - 자유롭고 존엄한 - 과 다시 관계를 맺으려고 애쓰는 인간의 시간을 다루고 있다. (108-109)

 

오디세이아는 영원한 난파 야야기다. (53)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괴물들은 폭풍을 의인화 한 것이 아니었을까? 밧줄을 때리는 바람의 울부짖음을 들으면 어떤 짐승이 깨어난 모습을 상상하게 되지 않는가? 그 울음소리는 인간을 벼룩처럼 작아지게 한다. 바람의 고삐가 풀리면 그 분노는 얼굴을 갖게 되고, 그것을 그리는 건 시인의 몫이다. (55)

 

마녀들의 섬도 솟아나는데, 마녀들의 유일한 목적은 인간이 제 열망을 잊게 만드는 것이다.

로토파고이 족의 섬도 나타나는데, 이 왕국에 들어서는 자들은 나태한 쾌락에 빠져든다. (58)

 

로토파고이 족은 선원들에게 꿀처럼 달콤한로토스(Lotus)라는 식물을 준다. (126)

로토스는 우리를 핵심에서 멀어지게 하는 기회들을 은유한다. (127)

 

오디세이아는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한 진혼곡이다. (115)

 

오디세이아는 도주에 관한 책이다.

신이 되게 해주겠다는 칼립소의 품에서

외딴 섬에서 마약을 하는 로토파고이족으로부터

혹은 연인들을 짐승으로 바꿔버리는 키르케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185)

 

오디세이아는 탐험의 책이다.

그리스 섬들은 저마다 보물을, (), 약속을, 위험을 감춘 채 에게 해 위에 떠있다. 각 섬이 하나의 세계다.

오디세이아는 그 세계들을 가로지르는 이야기다. (195)

 

오디세이아는 우리의 척후병이다. (196)

 

고국으로 돌아오는 것, 사적인 균형을 복원함으로써 우주적 질서를 바로 잡는 것, 이것이 오디세이아의 목표다.(108)

 

오디세이아의 구성은 단선적이지 않고 연대순도 아니다. 현대식 구성이라고 볼 수 있다. (107)

 

오디세이아에는 플래시백이 가득하다.(110)

오디세우스는 파이아케스 인들의 연회에서 한 음영시인이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나서야 자신이 겪은 파란만장한 모험을 말하기 시작한다. 그때까지는 익명을 지켰다. 그런데 갑자기 음영시인이 그에게 생명을 부여하고 그를 익명에서 끌어낸다.(110)

 

오디세우스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자기 정체를 밝힌다.

당신이 언제 우는지 말하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소. (122)

우리의 정체성은 눈물 속에 담겨 있다. (122)

 

알키노스 왕의 요청을 받고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 모험담부터 칼립소의 동굴에 이르기까지 야야기를 들려준다.(124)

 

외눈박이 거인에게서 빠져나오면서 보여준 호메로스가 자기 이름을 아무도 아니다라고 말한 것을 두고, 저자는 그걸 언어유희로 해석한다.

 

외눈박이 거인은 오디세이아의 계략으로 눈을 잃고, 동료들이 누가 그랬는가 묻자, 오디세우스의 꾀에 넘어가 아무도 아니다라는 대답을 하게 된다.

그건 오디세우스가 자기 이름을 말해주기를 아무도 아니다라고 했기에, 자기 눈을 멀게 한 사람이 자연스럽게 아무도 아닌 사람이 한 것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호메로스는 역사상 최초로 언어유희를 만들어낸 것이다. (129)

 

키르케의 섬에서 :

신들은 인간들을 망각보다 더 고약한 위험에 직면하게 한다. 신체적 정체성을 잃을 위험 말이다. 오디세우스는 헤르메스의 해독제, 즉 자기 자신으로 남게 해주는 묘약 덕분에 그 위험을 모면한다. (132)

신들은 언제나 고통을 감내하는 영웅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은 심지어 자신들이 영웅에게 겪게 한 위기들에 대한 해독제도 제공한다. (132)

 

이런 말은 밑줄 긋고 새겨볼 만하지 않는가?

 

호메로스는 다시 강조한다.

인생의 모든 것은 힘들게 얻어진다. (143)

 

우리 모두는 마음속에 내면의 이타케를 하나씩 품고 있다. 그곳을 되찾기를, 때로는 그곳으로 되돌아가기를 꿈꾸지만, 대개는 그것을 지킬 수 있기를 꿈꾼다. (167)

 

호메로스가 말하는 인간이란?’

 

인간은 비장하게도 애처롭다. 타인에게는 통찰력을 발휘하면서 자기 자신에게는 그러지 못한다. (93)

 

호메로스의 시 속에서 인간들은 신들의 도움을 받지만 동시에 일정한 자유를 고수한다. 그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운명을 향해 열정을 가지고 달려갈 수 있고, 때로는 어떤 조작도 시도해볼 수 있는 것이다. (254)

 

인간은 언제나 신들을 탓한다. - 인간들에게는 편리한 일이다. 인간은 스스로 길을 선택할 수 있지만 책임을 전가하는 편을 선호한다. (259)

 

인간이란 마치 나뭇잎과 같아서 때로는

대지의 열매를 먹고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때로는 생명을 읽고 시들어지지요. (일리아스21464 -466)    

 

우리가 그리스 영웅들에게서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길 좋아하는 것은 그들 중 누구도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멀고 추상적인 유일신의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아직은 쉬이 과오를 범하는, 정감 가는 신들의 시대였다. 신들도 자기 내면의 구렁텅이 가장자리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172)

 

호메로스가 말하는 신이란?’

 

신들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길에 개입해 시련을 부과한다. 하지만 몇몇 신들은 그가 그 시련들을 뛰어넘도록 도울 것이다. 여기에 고대 신들의 모호성이 숨어있다. 그들은 판관이면서 당사자다. 그들은 함정을 마련해두고, 그것을 뛰어넘을 도움의 손길도 제공한다. (108)

 

이 책에서 가장 압권인 해설

 

<아테나가 아가멤논을 죽이려는 아킬레우스를 말리는 것은 내적 갈등의 은유가 아닐까?> (248)

 

이 걸 읽고 그간 막연하게 느껴지던 일리아스, 안개 때문에 뿌옇게 보이던 길이 안개가 걷히고 나면 뚜렷하게 보이듯, 보이기 시작했다.

 

인용한 글은 일리아스 1권에 나오는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의 갈등 국면에서 아테나 여신이 등장하여 아킬레우스를 진정시키는 장면에 대한 저자의 해설이다.

 

해당 장면을 원문을 통해 읽어보자.

 

(아킬레우스가)

넓적다리에서 날카로운 칼을 빼어 들고 사람들을 모두 쫓아버리고

그 자신은 아가멤논을 죽일 것인가, 아니면 마음을 억제할 것인가 하고

그 마음속으로 이런 일들을 곰곰이 생각하며 칼집에서 큰 칼을 빼는 사이에 [………………………………………………]

그는 은으로 만든 칼자루 위에 무거운

손을 얹어 큰 칼을 도로 칼집에 밀어 넣었고,

아테나의 명령을 거스르지 않았다. (일리아스, 1, 190-220)

 

[       ] 부분 :

………아테나는 아킬레우스의 뒤에 서서

그의 금발을 잡아당겼다. 그러나 그에게만 보일 뿐, 그 누구도 그녀를 보지 못했다…….

 

[      ] 부분에서 아킬레우스와 그를 돕는 아테나 여신과의 대화가 이어진다.

 

(아테나와 아킬레우스의 대화)

-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 나는 그대의 분노를 가라앉히려고 하늘에서 내려왔노라. 헤라가 보내셨노라. 그러니 자, 말다툼을 멈추고 칼은 빼지 말아라. 다만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하여 그를 꾸짖어라.

- 그대들 두 분의 말씀이라면, 마음 속으로 아무리 화가 나도 복종해야겠지요.

 

아가멤논을 죽이려는 아킬레우스가 진정하는 그 순간을, 호메로스는 신화적 방법을 사용해 아테네 여신을 등장시켜 처리하고 있지만, 저자는 <아테나가 아가멤논을 죽이려는 아킬레우스를 말리는 것은 내적 갈등의 은유가 아닐까?> (248)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하니, 거의 3000년 전에 쓰여진 책이 지금도 읽히는 이유가 비로소 이해가 되는 것이다.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을 죽이려고 칼을 빼드는 순간, 그 찰나같은 순간에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오고갔을까? 그걸 호메로스는 아테네 여신과의 대화로 돌려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VS. 텔레마코스

 

또한 저자는 프로이트가 주장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한 반론도 제시하는데, 타당한 주장이라고 여겨진다.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에 호메로스의 텔레마코스를 맞세우고, 결별이 아니라 재회에 토대를 둔 새로운 증후군을 만들어낼 수 있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싶어 하지 않고 어머니를 탐하지도 않는다. 그는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를 되찾아 왕좌에 다시 앉히기 위해, 부모를 결합시키기 위해 싸운다. 반면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는 개별성을 주장하기 위해 자신의 기원을 모독한다. (116-117)

 

다시. 이 책은?

 

그렇게 이 책으로 호메로스와 그의 두 서사시를 정리해 볼 수 있었는데, 그렇게 나름 기쁨으로 정리해 볼 수 있었다는 것은 행운에 가까운 일이라 여겨진다.

 

1957년 역사가 버나드 베렌슨은 이렇게 털어놓았다.

나는 일평생 호메로스에 관한 자료들을 읽었다. 문헌학·역사학·고고학·지리학의 자료들을. 이제 나는 그저 순수예술로서 호메로스를 읽고 싶다.”

 

이제 호메로스에 관해 이정도 정리가 끝났으면, 베렌슨의 말처럼 이제부터 순수예술로서의 호메로스 작품을 읽어갈 차례다. 그게 가능하다는 것, 이 책을 읽었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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