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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선언
김정주 지음 / 케포이북스 / 2020년 6월
평점 :
은밀한 선언
이 책은?
이 책 『은밀한 선언』은 소설이다. 장편소설.
저자는 김정주, 몇 편의 소설을 발표한 작가인데 구체적인 정보가 없어서 안타깝다.
이 책의 내용은?
이 책은 모두 10개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단편 열 개가 아니라, 하나의 장편소설을 이루어가는 열 개의 이야기다.
특이한 것은 10개의 이야기가 모두 화자가 제각각이다. 다르다.
해서 맨 첫 이야기를 읽고, 두 번째 이야기를 읽기 시작하면서, 잠시 의아해했었다. 이게 단편집인가? 그래서 표지 앞을 다시 살펴보니, 분명 ‘장편소설’이라 적혀 있다. 그렇다면 앞의 이야기를 딛고 뒷이야기가 연속해서 이어진다는 것. 그런데 저자는 마치 별개의 이야기처럼, 이어진다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그 연결고리를 여간해서 보여주지 않으려든다. 그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염두에 두어야하는 첫 번째 유의할 점.
해서 먼저 각 이야기의 화자를 따져보았다.
첫 번째 이야기인 「피스톨을 당겨」 는 화자가 ‘세은’이다. 이 이름은 첫 이야기 어느 곳에서도 드러나지 않는다. 이 이름은 두 번째 이야기에 나오고, 두 번째 이야기의 화자인 ‘두하’는 첫 번째 이야기에 나온다. 저자의 애씀이 돋보이는 장치다.
「말에 말을 걸어」에서는 두하(남자)가 화자. 그는 경마장에서 호피 무늬 옷을 입은 여자를 만난다.
「추격을 추격해」, 호피를 입은 여자(여자).
「나의 나를 레이어드」, 호피를 입은 여자의 언니가 좋아했던 남자(남자).
「나의 살던 고향은」, 호피를 입은 여자의 언니가 좋아했던 남자와 같이 모텔로 갔던 여자(여자).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호피를 입은 여자의 언니가 좋아했던 남자와 같이 모텔로 갔던 여자가 들렀던 동네 음반 가게 주인(남자).
「[오브라디 오브라다]를 불러」
여기서는 화자가 ‘너’라고 말을 하니 화자가 마치 제 3자 같지만, 실상 그게 아니다. 여기 화자는 세컨드(뭐, 이 말의 뜻을 다 아시겠지)다. 그런데 세컨드의 십계명이 있는 모양인데 그 중에 이런 게 있다. ‘내가 아닌 너로 살기’(198쪽) 그러니, 여기서 ‘너’라고 말하는 화자는 곧 ‘너’라고 불리는 ‘나’다. 곧 나는 너요, 너는 세컨드라는 공식이 성립이 된다.
여기서 화자가 누군가 하니, 호피를 입은 여자의 언니가 좋아했던 남자와 같이 모텔로 갔던 여자가 들렀던 동네 음반 가게에서 [오브라디 오브라다] 음반을 사간 여자다(여자).
여기쯤 읽다보면, 슬슬 어떤 조바심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 소설의 시작은 '세은'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소설 중반이 넘어가는데도 다시 등장할 생각을 하지 않으니 이게 뭔 일, 하는 순간, 그 여자가 러닝머신에서 달리기를 하는 순간, 세은이 이름이 짠, 하고 나타난다.(206쪽) 내가 조금 성급했나 보다. 고작 한 페이지만 더 참고 읽었어도 되는 것을.
이쯤해서 연결고리에 걸리는 게 있다. 이번 이야기의 화자가 세은의 어머니다.
자, 이 대목부터 이야기는 마무리 단계로 그 치열한 고리 끼우기가 서서히 결론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 다음 이야기인 「역주행의 원리에 따라」, 「비난은 야하게」, 「그 날을 거닐다가」 에서 어떻게 이야기가 매듭지어질지?
독자들은 아주 신선한 방법을 선보이는 작가의 아주 특별한 소설 한 편을 읽고 있는 것이다.
행동 반 의식의 흐름 반,
어떤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어떤 심사위원이 ‘소리 반, 공기 반’이란 말을 사용했는데, 이 소설도 그렇다. 등장인물들이 모두다 그 말을 따라하는 것 같다. 자기에게 할당된 부분을 이야기하는데, 행동 묘사 반, 의식의 흐름 반, 이렇게 딱딱 나누어 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처럼, 각각을 반으로 나눠 말하고 있다. 아니, 행동의 묘사는 반절에도 미치지 못하는 듯?
행동은 현재의 시간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그 행동을 하면서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의식의 흐름은 과거와 현재를 부지런히 오가며, 이 소설의 줄거리 얼개를 맞추어간다. 마치 직소 퍼즐을 하나하나 맞춰가다가, 결국 하나의 그림이 서서히 드러나듯이.
다시, 이 책은? - 처음 보는 소설 기법 하나
두 번째 이야기인 「말에 말을 걸어」에서. 두하의 시선에 어떤 여자가 포착된다. 경마장에 간 두하의 앞자리에 호피 무늬 옷을 입은 여자가 등장하는 것이다. 그 여자가 두하에게 이런 쪽지를 보낸다. ‘밤중까지 같이 있어 줄 수 있어요?’
이런 여자?
그래서 호기심은 증폭된다. 이야기는 어떻게 될 것인가? 두하는 무심하게 그 쪽지를 돌려준다. 그리고 ...
다음 이야기 「추격을 추격해」에서 호피옷을 입은 여자의 정체가 드러난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야기들. 이렇게 전개되는 소설, 처음이다.
그러니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세은이 두하를 만나고,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두하가 호피 입은 여자를 만나고.....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면, 다음 차례는 어떻게 이어질 것인지, 기대가 점차 증폭이 된다. 이 소설 이렇게 독자들을 끌고 간다. 재미? 엄청나다. 재미? 재미있다. 몰입? 몰입도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