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처럼 - 도청의 마지막 날, 그 새벽의 이야기
정도상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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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처럼

 

이 책은?

 

이 책, 꽃잎처럼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를 그린 소설이다.

 

저자는 정도상.

저자의 경력을 살펴보니, 광주 민주화 운동에 관한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대의 그늘과 그 안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서정적이면서도 사실적인 문체로 그려온 작가다. 1986년 평화의 댐 건설 반대시위사건으로 구속·제적되었다. 1987년 전주교도소에서 수감중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 십오방 이야기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같은 해 6월항쟁으로 사면 복권되었다.>

 

이 책의 내용은?

 

이 책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한 시점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소설이지만, 시간적 순서를 따라 당시 광주에서, 특히 전라남도 도청을 중심으로 하여, 시간대별로 일어나는 일들을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그려놓고 있다.

 

1980526일 저녁 7시부터 527일 새벽 515분까지의 기록이다.

 

그 시간에 광주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던가?

계엄군이 광주 시내로 진입을 앞두고, 도시는 어둠의 침묵 속에서 숨을 죽이고 무언가를, 어떤 파국을 기다리고 있’(20)는 시점이다.

 

당장 내일, 당장 몇 시간 후에 계엄군이 중무장을 하고 시내로 진입, 도청을 향해 올 것인데거기에 있던 사람들의 상황은 어땠을까?

 

등장인물들은 그래서 당연히 실재했던 인물들이 이름만 바꿔 달고 나온다.

작품의 화자인 노명수는 투쟁위원회 대변인인 윤상우의 경호원 격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아무튼 지금 나는 상우 형이 가는 데마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경호하는 중이다. 상우 형은 그것을 몰랐다.”(19)

 

그렇게 투쟁위원회의 대변인을 지근거리에서 경호하는 화자의 시각으로 광주 민주화 운동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 시각, 광주에서 벌어진 일들

 

왜 광주사람들은 총을 들었을까?

그것을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런 질문에 그래서 답해야 한다.

<당신의 부인이나, 딸이 정부군에 의해 무자비하게 살해되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29)

 

그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고등학생, 대학생 그리고 시민들이 총을 들고 나섰다. 그렇게 나선 그들, 과연 계엄군에게 제대로 대항할 수 있었을까?

 

그 과정과 결과를 이 책은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계엄군이 도청으로 진입하는 순간에 벌어진 일들이다.

 

<시민군은 총을 쏘지 못하고 망설이기만 했다. 시민군은 군대가 아니라 시민의 모임에 불과했다. 사람이 죽을까봐 겁이 나서 총을 쏘지 못하는 허망한 순간이 이어졌다.> (220)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당겨지지가 않는 것이었다.> (221)

 

반면 거기에 진입한 공수대원들을 어땠을까?

 

<반면에 계엄군은 마구잡이로 총질을 하며 진격해 왔다.> (220)

<공수대원이 올라오더니 화장실 문을 열고 소총을 난사했다. 단발마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223)

<그들은 무조건 난사를 한 다음에 대응사격이 없자 수색에 들어갔다.> (243)

 

그렇게 시민들은 진압되었고, 총과 군화발에 철저하게 무너져갔다. 그 과정에 이런 일도 있었다.

 

<공수대원 하나가 두 손을 번쩍 들고 내려오는 고등학생들을 가리키며 보고했다. 집에 돌아가라고 해도 끝까지 남겠다고 고집을 피우던 눈에 익은 학생들이었다. 공포에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오호, 살려준다니까 그제야 항복을 했다고?” 소대장이 물었다.

네 그런 것 같습니다.” 공수대원이 대답했다.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들이, 호적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벌써부터 빨갱이질이야? 이런 것들은 아예 일찌감치 싹을 잘라야 해. 야 새끼들아, 살려줄 줄 알았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소대장이 학생들을 향해 드르륵 총질을 해댔다. >(236)

 

그렇게 죽어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이런 기록, 의미 있다.

<어떤 여자 한 분이 흰 양말 수십 켤레를 가져와 시신의 맨발에 하나하나 정성스레 신겨주던 모습> (73)

 

소설적 장치 하나, 희순의 존재다.

 

이 작품에서 화자를 도청, 그 자리에 있게 한 인물이 있다.

희순이라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상우 형을 끝까지 지켜.”

아침나절에 YWCA에서 등사기 롤러를 밀 때 꿈결처럼 희순의 목소리가 들렸다.

희순은 곁에 없었지만 나는 그 목소리를 어떤 계시처럼 느꼈다.>(18)

 

<나는 민주화도 투쟁도 잘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곁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뿐이다.>(67)

 

그런데 정작 희순이라는 사람은 작품에서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뒤로도 화자가 계속하여 희순에 대하여 생각하고, 회상하면서 그 존재를 부각시키는데, 정작 나타나야 할 희순은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화자는 계속에서 이런 힌트를 던져주고 있었다.

 

<분수대를 돌면서 희순을 생각했다.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는 사랑.> (79)

 

이 말을 읽을 때에 알아봤어야 했다.

이 말이 말하고자 하는,어떤 이야기를, 눈치 챘어야 했다. 희순이라는 사람의 존재를.

그래도 그저 막연히 어디 멀리 가 있는 사람이거니 하면서, 그냥 읽었었다. 미심쩍은 마음을 자꾸만 무시하면서.

 

과연 희순은 어떤 사람일까, 어디에 있을까?

삭막하고 살벌한 그 현장에서 화자는 희순이라는 존재에 기대어, 죽음을 각오하고 버티고 있는데, 과연 희순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다시, 이 책은?

 

<원하지 않았으나 운명이 나를 목격자로 만들었다. 나는 도청 마당에서 귀로 듣고 눈으로 보았> (237)으니, 기록을 해야 할 것이다.

작가 정도상은 당시 광주에서, 도청에서 죽어간 사람들,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을 대신하여 이 작품을 쓴 것이다. 해서 이 책은 오롯이 역사의 기록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발언은 역사에 길이 새겨져, 기억되어야 한다.

 

여러분은 지난 아흐레 동안 이 도시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을 지켜보았습니다. 여러분은 목격자입니다. 우리의 항쟁을 잊지 말고 후세에도 이어가게 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패배할 것입니다. 한 치도 흔들림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기록할 것입니다. 그 기록자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계엄군이 밀려오기 전에 어서 여기 도청에서 떠나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충정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 싸움은 어른들이 해야 합니다. 나이 어린 학생들은 살아남아 오늘의 목격자가 되어 역사의 증인이 돼주시기 바랍니다. (74-75)

 

당시 고등학생, 대학생이던 사람들이 이제 노년의 나이가 되어서, 광주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증언하는 것을, 어제 그저께 매스컴을 통해 듣고 보면서, 위의 글을 다시 한번 새겨보았다.

 

이 책에는 광주의 그런 한과 눈물과 그리고 피가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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