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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강변
임미옥 지음 / 봄봄스토리 / 2020년 3월
평점 :
꿈꾸는 강변
이 책은?
이 책 『꿈꾸는 강변』은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임미옥. 수필가로, 대한기독문인회, 한국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에서 활동중이고 청솔문학작가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음악처럼』, 『수필과 그림으로 보는 충북명소』가 있고, 이 책이 저자의 세 번째 저서다.
이 책의 내용은?
수필을 읽다보면 구차해 보이는 글을 만나기도 한다.
수필, 쓰면서 자꾸만 설명을 덧붙이는 것이다. 자꾸만 자기를 보여주려고 애를 쓰는 글을 읽다보면 구차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 정도만 얘기해도 충분히 앞뒤를 알아들을 텐데, 자꾸만 글을 늘여 설명하고, 덧대고 하니 구차해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그칠 때를 안다. 해서 딱 알맞게 그친다. 더해도, 더 말해도 될 법 한데, 아쉬운 마음이 들도록, 그러한 마음이 들 때 그친다. 이러한 점이 이 책을 읽게 만든다. 책을 놓고 싶지 않게 만든다.
거기에 저자의 눈, 사물을 보는 눈이 무척 깊다. 더해서 입심도 있다. 가락을 얹어 말하는 솜씨 또한 보통이 아니다. 이런 글 읽어보시라.
움직임 속에서 고요함, 고요함 속에서 움직임을 느껴보시라. 세상은 온통 동(動)과 정(靜)이다. 참새가 시끄럽게 재잘거리면 제비는 조용히 날아오르고, 배가 통통거리면서 지나가면 물살은 가만히 번진다. 천둥번개가 요란하면 머잖아 햇살이 부드럽게 퍼지고, 격정의 시간이 지나면 평화가 찾아온다. 벌판을 뛰는 노루가 있는가 하면 그 아래로 소리 없이 피어나는 들꽃도 있고, 열정을 다하여 노래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조용히 경청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동(動)과 정(靜)은 함께 있다. (53쪽)
이글을 한번 가만히 소리 내어 읽어보시라. 읽어가다 보면 어느새 입에 가락이 붙어 흘러나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위의 글을 다음과 같이 재배치해 놓으면, 읽지 않고 보기만 해도 머릿속에 가락이 퍼져 나오는 것 같지 않은가?
움직임 속에서 고요함, 고요함 속에서 움직임을 느껴보시라.
세상은 온통 동(動)과 정(靜)이다.
참새가 시끄럽게 재잘거리면 제비는 조용히 날아오르고,
배가 통통거리면서 지나가면 물살은 가만히 번진다.
천둥번개가 요란하면 머잖아 햇살이 부드럽게 퍼지고,
격정의 시간이 지나면 평화가 찾아온다.
벌판을 뛰는 노루가 있는가 하면 그 아래로 소리 없이 피어나는 들꽃도 있고,
열정을 다하여 노래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조용히 경청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동(動)과 정(靜)은 함께 있다.
저자는 이야기꾼이다. 이야기꾼이라는 건, 다시 말하면 아는 것이 많다는 말이다. 아는 게 많아야 할 말이 생기는 법이다. 저자는 초반부터 그리스 신화를 여기저기에서 운을 떼더니, 오디세우스에 대하여 이런 이야기도 해준다. 들어보자.
그리스 신화 한 도막도 생각난다. 오디세우스 일행은 미지의 땅을 찾아 트로이아를 출범했는데 해상에서 강한 폭풍을 만나 여러 날 표류하다가 ‘연(蓮)을 먹는 사람들’이란 나라에 도착한다. 그 섬 주민들은 오디세우스 일행을 따뜻하게 영접하고는, 자신들이 먹고 있던 연실(蓮實)을 먹어보라고 권했다. 이 연실은, 먹는 순간부터 고향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언제까지 그 나라에 살고 싶게 만드는 힘을 지닌 불가사의한 약초다. 오디세우스 일행은 그 연실을 먹고, 세상없어도 그 나라에 눌러 앉아 살겠다고 고집을 피운다는 마치 동화 같은 이야기다.(83쪽)
해서 오디세우스를 배경으로 쓴 영국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를 소개한다.
처음 듣는 이야기니, 귀가 솔깃해진다.
‘연(蓮)을 먹는 사람들’
얼마나 달콤하랴. 눈을 반쯤 감고 떨어지는 물소리를 듣는다.
살포시 찾아드는 비몽사몽!
산상의 몰약수, 덤불에 비치는 석양의 호박 빛 같은 꿈 … 또 꿈 …
날마다 연실을 먹으며 바라보는 모래톱을 넘는 물결 …
저자가 소개한 ‘연실을 먹는 나라’는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아』 9권에 등장하는 곳으로 로토스를 먹고 사는 전설상의 나라다. (『오딧세이아』, 천병희 역, 217쪽)
이 책 곳곳에 정이 가는 대목이 등장하는데, 예컨대 이런 글이다.
홍학들이 무리지어 바닷가를 가득히 메우는 곳, 방드르디가 있을 것 같은 태평양 끝까지 가보고 싶다. 대서양이나 인도양을 지나서 가고 가다가 어느 이름 모를 섬을 만날 때 소설 속에서처럼 ‘스페란차'란 이름을 붙여주는 거다, 그것이 너무 추상적이라면 환상의 공간이 아닌 실재하는 곳, 아프리카 나미비아 사막으로 가보는 건 어떨까?(115쪽)
위 글에서 반가운 단어가 둘 보인다. ‘방드르디’와 '스페란차'.
방드르디란 사람 이름이다.
프랑스의 거장 미셸 투르니에가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를 통하여 새롭게 눈뜨게 된 인류학적 성과를 활용하여 디포의 『로빈손 크루소』를 자기 식으로 쓴 게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이란 소설이고, ‘방드르디’는 그 주인공이다.
소설 속 주인공인 로빈손이 ‘스페란차'라 이름 붙인 섬에서 만나 구해준 사람이다.
그 소설을 읽은 후, 이제껏 그 어느 글에서도’ 방드르디‘란 이름을, ‘스페란차'란 지명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 누구도 그 이름을 들먹이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니 이 책에서, 그 이름을 들었을 때 그 반가움, 방드르디를 아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반가움, 그래서 이 글에 정이 더 간다.
다시, 이 책은?
수필이란? 수필집을 여러 권 읽었다.
수필이라니, 꽃과 나무, 풍경만 줄창 읊어대는 글들이 많다. 주구장창 자신의 감상을 경치에 얹어 옮겨야 수필인 줄 아는 글들이 많다. 그러나 꽃노래도 어디 한 두 번이지, 수필집엔 다양한 주제로 변주가 일어나야 한다. 풍경화도, 정물화도, 인물화도 한두 점은 있어야만 읽는 이가 지루해 하지 않는다.
이 수필집이 그렇다. 이 책에는 다 있다. 그러니 이 책, 읽을게 많다는 점, 점수를 후하게 주고 싶다. 읽고 또 얻을 게 많으니 더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