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짊어진 당나귀 히말라야를 걷다 - 여행은 연애처럼 인생은 축제처럼
임대배 지음 / 아라크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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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짊어진 당나귀 히말라야를 걷다.

 

이 책은?

 

이 책, 책을 짊어진 당나귀 히말라야를 걷다는 히말라야 트레킹 기록이다.

 

저자는 임대배, <한국방송공사(KBS)에서 32년간 프로듀서로 일하며 [TV쇼 진품명품] [도전 지구탐험대] [아침마당] [인간극장] 등을 담당했고, 은퇴 후 새로운 삶을 고민하며>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선배 따라 히말라야에 갔다가> 그 기록을 책으로 펴낸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저자는 선배와 함께 의기투합하여, 히말라야 트레킹을 떠난다.

한 달 동안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를 거쳐 랑탕 계곡, 안나푸르나, 이렇게 두 곳을 트레킹으로 경험하고, 휴양 도시 포카라와 부처의 탄생지인 룸비니도 방문한다.

 

그런 과정을 세세하게 기록하며, 트레킹 도중에 길어낸 생각들도 같이 담아놓았다.

 

그런데 책 제목인 책을 짊어진 당나귀는 무슨 의미일까?

저자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실상 네팔의 당나귀는 한평생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다녀야 하는 가련한

존재일 뿐이다.

(……)

 (몽테뉴의 ) “책을 짊어진 당나귀.”

특히 그건 내 얘기였다. 내 아픈 데를 콕 찌르는 말이었다. 이 말은 탈무드에도 나오는데, 어려서부터 책만 많이 읽고 판단력이나 창의성을 키우지 않으면 결국 책을 짊어진 당나귀에 불과한 존재가 될 것이라는 경고다. “위장에 고기를 가득 채운다 한들 그것을 소화할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얘기다.

(88)

 

책을 짊어진 당나귀라는 말은 책만 읽었지, 책에만 의존한, 해서 책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지식을 말하는 것이다. 짐만 잔뜩 싣고 갈 뿐이라는 것이다.

 

해서 내친 김에 몽테뉴의 수상록에서 책을 짊어진 당나귀를 찾아보았다.

 

어린애의 교육에는 욕망과 애정을 돋우어 주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책을 짊어진 당나귀밖에 만들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매질해서 그 주머니에 학문을 잔뜩 넣어 줍니다만, 이 학문을 잘 하려면 담아두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것을 만들어야 합니다.

(몽테뉴 수상록, 1, 몽테뉴, 동서문화사, 193)

 

저자는 히말라야 트레킹 중에 보게 된 당나귀를 보고, 몽테뉴가 말한 책을 짊어진 당나귀를 떠올리며, 자신이 그 짝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당나귀를 떠올리는 것 자체가 그가 짐을 짊어진 당나귀는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몽테뉴, 에피쿠로스 등 철학자들의 말을 저자는 그저 줄줄 외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그것을 트레킹의 고비 고비마다, 다른 말로 말해서 인생길을 걷는데 적재적소에 활용하고 있으니 결코 책만 지고 가는 당나귀는 아닌 것이다.

 

저자가 철학자들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그러한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저자는 트레킹을 하면서, 책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하곤 한다.

그중에 특히 몽테뉴, 에피쿠로스, 그리고 에픽테토스 등 철학자와 더불어 생각해 볼 거리를 많이 남겨, 새삼 밑줄 그으며 읽고, 기록해 본다.

 

몽테뉴

 

흔히 수상록이라고 불리는 몽테뉴의 에세는 어찌 보면 나다움을 지키는 기술에 관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자기만의 삶에 관한 얘기다. 젊었을 때는 이 책이 좋은 줄 몰랐는데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보니 몽테뉴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책은 인생에서 시련이나 좌절을 겪어 본 후에야 더 절실하게 읽히는가 보다.

몽테뉴는 무엇보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처럼 근엄하지 않아서 좋다. 훨씬 더 인간적이다. 에세에는 다른 철학자의 책과는 달리 추상적인 개념이나 뜬구름 잡는 얘기가 없다. 다 현실적인 얘기들이다. 그것은 몽테뉴가 다양한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털어놓기 때문이다. (87-88)

 

몽테뉴 어록

 

이성과 양심 앞에서 발을 헛디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도록 하라. (45)

습관은 판단력의 눈을 잠들게 한다. (72) 에세

책에만 의존한, 책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지식은 얼마나 열등한 것인가? (88)

 

에피쿠로스

 

나는 특히 사모스섬에 가보고 싶다. 내가 추종하는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는 내 삶의 후반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철학자이다. 그는 쾌락주의자로 알려져 있으나 굳이 말하자면 합리적인 쾌락주의자였다. 그는 우리에게 즐거운 삶을 권한다. (40)

 

책을 읽을 때는 그저 피상적으로 다가왔던 구절도 생생한 경험을 통하게 되면 온전한 자기 것이 된다. 이른바 체화이다. 나는 히말라야 트레킹을 통해서 에피쿠로스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되었다. 그가 말하는 자연스럽고도 꼭 필요한 욕구라는 게 어떤 것인지를 절감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적 욕구였다. (129)

 

에피쿠로스주의는 거칠게 말하자면 즐거움의 추구를 이상으로 하는 철학이다. 물론 그 즐거움은 현실을 소박하게 즐기는데서 오는 잔잔한 기쁨이다. 반면에 스토아주의는 정념으로부터의 해방을 목표로 한다.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절제와 인내라는 미덕을 실천해야 한다. (220)

 

죽음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우리에게 불멸을 향한 욕망을 없애줌으로써 유한한 삶을 즐길 수 있게 해 준다.(264)

 

에피쿠로스 어록

 

즐겁게 살지 못하면 지혜롭거나 바르게도 살 수 없다. (40)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가 살아있을 동안에는 죽음이 없고, 죽음이 있으면 우리가 없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264)

 

이런 글, 공감하게 된다.

 

요즘 유행하는 이른 바 소확행인데, 나는 이 말을 싫어한다. 지나치게 일본 냄새가 나는데다 어감도 부드럽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작은 행복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22)

 

다시, 이 책은?

 

얼마 전에 읽었던 책들을 새삼 상기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촐라체(박범신), 히말라야 환상방황(정유정), 함께, 히말라야(문승영).

 

그 책들을 읽으면서 히말라야 트레킹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는데, 이 책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트레킹의 모습을 새롭게 알 수 있었다.

 

트레킹은 원래 소달구지를 타고 먼 길을 여행한다는 뜻이었다.

사전적 의미로는 오지 여행, 특히 산악 지대를 며칠 또는 몇 주에 걸쳐 걸어다니는 것이다.

트레킹은 등산이나 등정과는 다르다. 특히 등정은 산꼭대기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트레킹은 산길을 걸으면서 자연을 감상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48)

 

트레킹의 주된 목적은 정상을 오르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연을 감상하며 때로 생각에 잠기거나 걷기를 즐기면 그만이다.(76)

 

걸으면서 틈틈이 사색의 시간을 갖는다는 건 히말라야 트레킹의 취지와도 잘 맞는 일일 터였다. (91)

 

이런 취지에 걸맞게, 저자는, 저자 일행은 걷는데, 걷는 일정에 얽매이지 않는다. 필요하면 일정도 단축하기도 하고, 또 차를 타고 다니기도 한다.

 

내 생각도 그렇다.

히말라야 등정이 목표가 아닌 이상 히말라야 공기를 쐬면 되는 것 아닌가?

물론 가다가 중지하면 아니 감만 못하니라라는 격언 같은 시조말에 얽매여 살아가기에, 구색을 갖추지 못한다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걷는 것도 다 사람에게 좋으라고 하는 것 아닌가? 해서 저자 일행이 보여준 트레킹의 자세, 오히려 당당하고 능동적인 모습으로 생각이 된다.

 

그렇게 트레킹을 하면서 저자는 책을 짊어진 당나귀를 통해 더 깊고 넓은 사유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그러니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히말라야 트레킹에 관한 실질적인 정보도 얻을 수 있고, 트레킹의 의미도 새겨보면서, 인생길을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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