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나누었던 순간들
장자자 지음, 정세경 옮김 / 도도(도서출판)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우리가 나누었던 순간들  

 

우리 곁에 이런 사람, 이런 이야기 있다.

 

중국 작가 장자자 (張嘉佳) 의 소설이다.

중국에서 일천만부가 팔렸다는 소설인데, 읽어보니 그 말이 과장은 아닌 듯하다.

 

단지 판매부수로 따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많은 사람이 읽었다면 그 안에 무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과연 그랬다.

 

일단 이 소설은 스토리 면에서 대단하다, 탄탄하다.

줄거리 면에서 흔히 스토리텔링의 구성요소인 쫄깃쫄깃하고 밀고 당기기 같은 것은 아예 없다. 흔히 볼 수 있는 인물, 그가 의외로 인물이다.

 

등장 인물들

 

류스산 : 우리의 주인공, 우리는 그를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그리고 졸업후 직장생활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왕잉잉 : 류스산의 외할머니,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로, 진짜 할머니가 떠오르는 인물이다.

청샹 : 몸이 안 좋아 류스산이 사는 곳으로 잠시 머물러 가는데, 그게 단 한 번의 인연으로 끝나지 않는 사이가 된다.

 

지리적 배경은 윈벤진(雲邊鎭)이라는 산속 작은 마을.

이곳을 주인공인 청샹은 <사람들이 먼 미래를 보기보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면서 먹고 마시며 하루하루를 보내지 않는가> (287) 라며 좋아한다.

 

소설 전체의 느낌은?

 

경쾌한 슬픔이라는 말이, 말이 되는지 모르겠다.

주인공들이 만나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기조는 경쾌하다. 그러나 슬픔이라는 물결이 그 아래 흐르고 있다는 것, 그게 이 소설의 매력이다.

 

중국 대중 문화의 흔적들

 

둥장 인물들이 나누는 이야기 중에 중국 문화를 대표하는 여러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중에 몇 몇은 아는 사람들이 있어, 읽으면서 조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노래 제목 하나가 등장한다.

등려군의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 (103)

달빛이 내 마음을 말해주네요.”라는 의미의 노래다.

 

또 이런 표현 읽으면서, 어떤 영화 하나가 떠오른다.

 <외할머니는 삼지창을 들고 먼지를 일으키며 류스산의 뒤를 쫓았다. 류스산은 비명을 지르며 먼 길을 번개같이 뛰어갔다.>(193)

 

먼지를 일으키며라는 말을 읽는 순간, 저절로 어떤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주성치가 주연으로 출연하는 영화 <쿵후 허슬>에서, 주성치를 추격하는 돼지촌 여주인이 달려갈 때 그야말로 먼지가, 아니 태풍급 먼지가 일어나지 않는가. 그 장면이다.

 

그만큼 글이 경쾌하게 흘러간다는 말이다. 물론 그 안에 흐르는 슬픔은 별도로 하고.

 

중국 경전에서 읽은 구절들

 

중국 소설인지라 그 저변에 중국 경전의 여러 말들이 숨겨져 있다. 

 

<그런 류스산을 보면서 교수는 썩은 나무에는 조각할 수 없다는 옛말이 무슨 뜻인지 확실히 깨달았다.> (129)

 

썩은 나무에는 조각할 수 없다는 말은 논어』 「공야장(公冶長)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宰予晝寢 子曰 朽木 不可雕也 糞土之墻

不可?也 於予與 何誅

 

낮잠을 자는 재여(宰予)를 보고 공자가 말씀하셨다.

"썩은 나무에는 조각할 수 없다.

더러운 흙으로 쌓은 담장은 흙손질을 할 수 없다.

너처럼 게으른 자를 무슨 말로 꾸짖겠느냐!"

 

五光十色(오광십색)

색채가 아름답고 종류가 다양하다. 오색찬란하다. (275)

 

이 말은 노자 도덕경12장과 연관이 있다.

 

五色令人目盲 오색영인목맹

五音令人耳聾 오음영인이농

五味令人口爽 오미영인구상

 

다섯 가지 색깔은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는 것이고,

다섯 가지 소리는 사람들의 귀를 먹게 하는 것이며,

다섯 가지 맛은 사람들의 입맛을 버리게 하는 것이다  

 

옛말에 나뭇잎은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가고, 사람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고 했잖아요.”(302)

 

나뭇잎은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가고라는 말은 落葉歸根에서 나온 말이다.

 

궁즉사변(窮則思變) (315)

주역에 나오는 궁즉통과 관련된 말로 궁하면 변화를 원한다는 의미이다. .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아무리 기다림이 익숙하다 해도 기다리던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슬프게 마련이다. 그런 슬픔을 책에서는 실망이라고 했다. 나중에 어른이 된 뒤에야 류스산은 그보다 더 큰 슬픔인 절망이 있다는 걸 알았다.> (57)

 

<기다리기만 하는 것도 노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상대가 떠나기를 기다린 걸까. 아니면 스스로 표현하기를 기다린 걸까?>(274)

 

다시, 이 책은?

 

외할머니 왕잉잉 손에서 자란 류스산, ‘우리 외손자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좀 모자라’(395)라는 평을 받는 주인공 류스산의 진솔한 좌충우돌 이야기가 독자들의 마음속으로 파고든다, 고 평가할 수 있겠다. 그게 인기의 비결이 아닐까?

 

눈부시게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어서 좋고, 또 그렇다고 실수가 때로는 반전이라는 결과를 가져오는 식상한 구조가 아니어서 좋다.

그러니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사람, 실제 인간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래서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는 것이라 생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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