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리피 할로우 - 워싱턴 어빙의 기이한 이야기 아르볼 N클래식
워싱턴 어빙 지음, 달상 그림, 천미나 옮김 / 아르볼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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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피 할로우

 

립 밴 윙클, 찾고 찾았다.

대학 때 원서 강독에선가 립 밴 윙클을 읽은 적이 있다. 그 후 잊고 있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한국 번역판을 찾았는데 그게 표제작이 아니었는지, 찾지 못하고 그냥 지냈었다.

그러다가 이 책 슬리피 할로우목차를 보니, 립 밴 윙클이 들어있지 않은가. 해서 이 책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이 책 슬리피 할로우에는 표제작 슬리피 할로우를 비롯하여 모두 6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악마와 톰 워커

독일인 학생의 모험

립 밴 윙클

슬리피 할로우의 전설

책 만드는 기술

유령 신랑

 

이 책은 부제에서 말하는 것처럼 <워싱톤 어빙의 기이한 이야기> 들이다.

그런 기이한 이야기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원래 워싱톤 어빙의 스케치북에 실린 것들이다. 그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스케치북1819년부터 1820년까지 영국에 체류하며 집필하여 출간한 것인데, 수필과 기행문을 비롯해 영국의 전통과 미국의 전설을 담은 수십 편의 단편을 실었다.

 

그러니까. ‘기이한 이야기라 하는 것은 영국의 전통과 미국의 전설들을 수집, 각색해 놓은 이야기인 것이다.

 

예컨대, 립 밴 윙클같은 경우, ‘세상을 떠난 디드리히 니커보커 씨가 남긴 서류들 가운데서 발견’(49)한 것이라는 식으로 서두를 장식하고 있다. 물론 그건 사실이 아니고, 어빙이 작품소재를 어디선가 수집해서 각색을 했다는 것을 소설식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Nice to meet you, 립 밴 윙클!

  

하여튼. 립 밴 윙클, 몇 십 년전에 읽었던지라, 그 줄거리조차 희미해져, 다만 립 밴 윙클이 뒷산에 올라가다, 술통을 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 술 몇잔을 마시고 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20년이 흘렀다는 것만 기억에 남아 있었다.

 

<마을에 가까워지자 립은 여러 사람을 마주쳤지만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조금 놀랐다. 이 인근에는 자기가 모르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차림새 또한 눈에 익은 옷들과는 달랐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놀란 얼굴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고, 그에게 시선을 던질 때면 예외 없이 턱을 쓰다듬었다. 이러한 행동이 자꾸 되풀이되자 립은 자기도 모르게 똑같이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다 자신의 턱수염이 30센티미터도 넘게 자라나 있는 걸 깨닫고 깜짝 놀랐다!> (66)

 

잠에서 깨어나 마을에 돌아올 때 립 밴 윙클의 모습이다. 하루 동안이라 생각했는데, 그 동안에 턱수염이 30센티가 넘게 자랐다니? 참으로 기이한 일 아닌가?

 

그렇게 돌아온 립 밴 윙클, 후일담이 무척 궁금했다. 산에서 내려온 후 어떻게 살았는지?

 

이렇게 살았다.

<립은 이제 예전에 하던 행동이나 버릇대로 생활을 이어갔다. 그 모습은 시간이 흘러 예전과 달리 많이 상하긴 했어도, 곧 옛 친구들을 여럿 찾아냈다. 그러면서도 신세대와 어울리는 일을 더 좋아했는데, 그들도 차츰 립에게 큰 호감을 느꼈다.>(77)

 

브라보!!, 몇 십년간 찾고 찾았던 립 밴 윙클의 인생이, 알고 보니 이렇게 잘 풀렸다니. 잘 됐지 뭔가! 그전에는 엄처시하에, 공처가로 꼼짝 못하고 살았던 사람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워싱톤 어빙은 이런 말로 이야기를 끝맺는다.

<주변 공처가들이 삶이 고달플 때 품게 되는 공통된 소망은 립 밴 윙클이 마셨던 그 술을 한잔 쭉 들이켰으면 하는 것이다.>(78)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결말이다.

이런 결말은 다른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유령 신랑같은 작품도, 어디선가 그런 전설이 내려오는 것을 수집해 놓은 것이겠지만, 단지 유령의 출현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게 아니라 결말은 사랑의 개가를 그려놓고 있으니, 해피 엔딩이다. 그런 유령은 몇 명 만나도 좋을 것 같다.

 

이 시대에 새겨볼 작품은?

 

이 작품집에서 가장 의미있게 읽히는 것은 책 만드는 기술이다.

그 작품을 요즘 한창 책쓰기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여러 가지 책을 대충 띄엄띄엄 읽고는, 원고를 휘리릭 넘겨가며 이 책에서 조금, 저 책에서 조금씩 갖다 붙였다. 다시 말해, 한 줄에 한 줄을 더하고, 격언에 격언을 더해 여기저기서 조금씩 가져다 쓰는 식이었다. 그가 완성한 책의 내용은 맥베스에 나오는 마녀의 가마솥에 들어가는 재료처럼 마구잡이로 뒤섞인 것 같았다. 여기에서 손가락 하나, 저기에서 엄지 하나를 가져다 넣고, 개구리 발가락과 발 없는 도마뱀의 독침을 섞어 만든 잡탕을 걸쭉하고 맛있게 만들겠다며 자기 자신의 잡답을 개코원숭이의 피처럼 마냥 들이붓는 식이었다.> (137)

 

이런 식으로 책을 찍어내는지, 어떤 사람은 수십 권 책을 펴냈다고 자랑질을 하던데, 그런 말을 들으면, 고개를 저절로 갸웃거리게 된다. 그런데 그건 나만 그런 게 아닌 모양이다. 책 만드는 기술」이란 작품 읽어보니, 워싱톤 어빙도 분명 그런 책 찍어내기에는 갸우뚱 고갯짓을 할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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