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을 불러낸
사람들
『글쓰는 엄마의 이탈리아 여행법』(김춘희/ 더블엔)을 읽다가 이런 글을 만났다.
<베니스의 집,
그리고 아일랜드의 수도 더불린의
집들이 저마다 예쁜 색깔의 대문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늦게 귀가하는 남편들 때문이다.
술에 취해 늦게 돌아오는 남편들이
집을 헷갈려 다른 집 초인종을 눌러대는 바람에 곤란한 일이 자주
생기자,
그걸 막기 위해 대문의 색을
다르게 칠했다는 것.>
(146쪽)
그렇게 일단 색은 달라야 한다.
그래야 서로 구분이
된다.
색깔이 달라 구분이 되니, 집들이 저마다 예쁜 색깔의 문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색의 쓰임새가 다양한 것,
알게 되었는데 이 책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색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다.
새롭게 듣는 이야기가 많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도 재미있다.
다양한 내용들이 펼쳐져서 색에
관한 이야기가 총천연색으로 펼쳐지는 느낌이다.
먼저 이 책의 제목을 보면,
단순하게 색에 관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모아놓은 것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색을 불러낸 사람들』이니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어떤 사람들?
색을 연구한 사람들이다.
색이라 함은 그저 우리가 떠올리는 크레파스 색깔 차원의 이야기에 그치는 게 아니라는
점,
먼저 짚고
가자.
색에 대한 그 정도의 인식을 넘어선,
색을 과학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하고,
또한 색에 의미를 부여한 사람들이
이 책에 등장한다.
세상에,
색깔을
이야기하는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등장하다니.
의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공헌,
하나 이야기
해보자.
그는 어느 날 대리석 사이를 거닐다 한 가지 신기한 현상을
발견한다.
색이 없는 빛이 노란 유리와 파란 유리를 동시에 통과해서 대리석 벽에 비치니 녹색으로
보였다.
그래서 녹색은 노랑과 파랑의
구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녹색의 정체를 노랑과 파랑의
합성이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18쪽)
우리가 미술시간에 배웠던 ‘녹색 =
노랑 +
파랑’의 공식,
아리스토텔레스가 발견한
것이란다.
이런 재미있고 의미있는 이야기가 계속된다.
또 있다.
괴테와 뉴턴의 공통점이
있는데,
무엇일까?
뜻밖에도 그 두 사람은 색채 심리에 관한 연구를 오랫동안 했다는 점이
같다.
(32쪽)
또 하나,
그간 우리가 잘 못 알고 있었던
것,
바로
잡아보자.
<우리는 어렸을 적 미술 시간에 물감의 삼원색은
빨강,
노랑,
파랑이고 이 세가지 색을 다
섞으면 검정이 된다고 배웠다.>(47쪽)
그게 사실일까?
저자는 분명히 말한다.
<그러나 빨강,
노랑,
파랑을 섞으면 절대 검정이 되지
않는다.
섞을수록 어두워지지도
않는다.>
아,
이런 사실을
이제야,
이 책으로 알게
되다니!
그동안 나의 머릿속에 들어있던
잘못된 지식하나 바로 잡는다.
다행이다.
감사한
일이다.
정리하자,
물감은 섞을수록 중간색이 나오는
중간혼색의 원리를 가지고 있다.
빛은 또
다르다.
빛은 더할수록
밝아진다.
이게 올바른
내용이다.
그렇게 하나씩,
한명씩 소환하여 그들이 주장한
바를 읽다보니,
이제 색에 의미를 부여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러니 애초에 색은 감정이
없었다는 것이다.
무감정의 색에 감정을 넣어 채색을 하게 된
것은,
놀랍게도 알타미라 동굴에 그림을
그린 시대부터다.
<색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움을 전하지만 정보 전달하는
수단으로 쓰이기도 한다.
온통 붉게 칠해진 곳을 보면
위험하다고 느끼는가 하면,
녹색으로 표시된 녹십자를 보면
안전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처럼 색은 지역과 언어를 초월한
표시의 수단이 되었다.
그렇다면 누가 언제부터 이런
색채의 기능을 연구하고 개발하였을까?
자연스럽게 얻어진 것도 있지만
확실한 색채 규범을 만든 사람이 있다.
바로 미국 예일대학교 교수를 지낸
파버 비렌이다.>
(97쪽)
그렇게 색깔에 의미를 부여한 결과,
색깔이 이제 만국공통어가 되었다는
것이다.
파버 비렌이 오렌지 색을 위험을 알리는 장치로
설계해,
사고를 줄이는데 기여했다는 점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화가들의 이야기,
화가들이 화폭을 채우는 다양한
방법들.
색깔과 화가들에 얽힌
일화들,
읽다보면 상식도 겸하여
풍부해진다.
이 책 덕분에 색깔을 그저 눈에 보이는 색깔로만 인식하고 그치는 게
아니라,
색 속에 색이
있고,
색 넘어 색이 있다는
것,
그렇게 색의 무궁한 의미와 역할
알게 되니 이제야 진짜 색이 제대로 보이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