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이
책은?
궁금했었다.
<여러 가지
문제연구소>
소장 김정운 박사의 최근
행보가.
일본 유학중에 펴낸 책은 읽었지만
그 뒤 소식이 궁금했는데.
이 책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로 해결이 되었다.
여수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것,
이 책을 펴낸 것
보니
저술 활동도
여전하시다.
게다가
‘슈필라움’이란 공간까지 잘 마련해서 활용하고 있는데 이 책 부제가
<슈필라움의 심리학>이다.
저자는
김정운,
소개할 필요가 전혀
없지?
이 책의
내용은?
먼저 부제에 들어있는 개념
‘슈필라움’이란 말,
짚고 가자.
독일어에만 있는 개념인
슈필라움(Spielraum).
‘놀이(Spiel)’와 ‘공간(Raum)’의 합성어인데,
굳이 번역해 보자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공간’을 말한다.
여기에는 ‘물리적 공간’은 물론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된다.
(6쪽)
이 책에는 그러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저자의 노력이 펼쳐지는 한편,
공간을 화두로 하여 펼쳐지는
저자의 화려한 입담이 펼쳐진다.
일단 저자의 글을
읽으면,
속이
시원해진다.
그의 문장은
단언적이다.
또 하나 그의 글은 추상적인
개념을 관운장의 언월도처럼
휘두르는데,
어찌된 셈인지 추상이 구체적으로
내 머릿속으로 들어와 박히니,
그것도 신기한
일이다.
그러니 단언적인 그의 문장이
머릿속으로 구체적으로 들어와 꽉 박히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말
들어보자.
<‘침 바르기’는 ‘존재 확인’의 숭고한 행위다.
우리는 ‘귀한 것’에 꼭 침을 바른다.
뭉칫돈이 생기면 우리는 한 장 한
장 침을 발라가며 돈을 센다.
사랑하는 이가 생기면 어떻게
해서든 그에게 혹은 그녀에게 침을 바르고 싶어 안달 난다.
책도
마찬가지다.
전자책이 아무리 효율적이어도
아날로그 책 읽는 재미를 따라갈 수 없다.
침을 바를 수 없기
때문이다.>
(126쪽)
‘침 바르기’에 이런 고차원적 의미가 있었다니!
그의 글에서
‘존재 확인’이라는 추상적이고 고매한 용어가 ‘침 바르기’라는 생물학적인 설명을 타고
넘어오면,
어느새 머릿속으로 세 가지 침
바르기 행동이 번개처럼 떠오르는 것이다.
책 읽는
것도,
지폐를 세는
것도,
또한 사랑을 하는 것도
‘침 바르기’라는 행동을 통해 고귀한 존재 확인이 이루어진다는
것,
새삼 깨닫게
된다.
<인간이 세상을 보는 기준은 항상 자기
몸이다.
어릴 적 그렇게 컸던 학교
운동장이 나이가 들어 찾아가보면 그렇게 작을 수가 없다.
그 넓었던 집 앞
‘신작로’가 그렇게 좁을 수가 없다.
내 몸을 기준으로 보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의 작은 몸으로 본 세상은
크고 놀라웠다.
호기심에 가득 차 세상을
올려다봤다.
그러나 성인의 몸을 기준으로 보면
죄다 시시하고,
볼품없다.>
(220쪽)
어라,
이게 내
얘기인데.
맞다,
맞어.
어릴 적 살던 곳을 지나쳐가다가
몇 번이나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지나다니던 그 골목은 이제 내
어깨가 닿을 듯 느껴지고,
친구들과 같이 뛰놀았던 학교
운동장은 걸리버 소인국의 왕궁 뜰처럼 보이니,
이거
신기한데,
저자가 나서서 맥을
짚어주니,
이제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승화되는 것이다.
저자의 통찰,
들어보자,
<지금 내 삶이 지루하고 형편없이
느껴진다면,
지금의 내 관점을 기준으로 하는
인지 체계가 그 시효를 다했다는 뜻이다.
내 삶에 그 어떤 감탄도
없이,
그저 한탄만 나온다면 내 관점을
아주 긴급하게 상대화시킬 때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221쪽)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해서,
이 책에서는 밑줄 긋고 새겨볼
말이 지천이다.
그 중에 몇 개만
옮겨본다.
의사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순서 주고받기’다.
타인의 순서를 기다릴 수 있어야
진정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105쪽)
에드워드의 공간학에 따르면
45센티미터가 기준이 된다.
낯선 이가 이 거리 안으로
침입하면 몹시 불편해진다.
(194쪽)
이런
19금도 소개 해본다.
“배에서 해 봤어요?”
광선이 형은 잠시 멈칫하더니
“아니,
아직 못
해봤어.
근데…
많이 달라?”하며 아주 궁금한 표정으로 물어보는
것이었다. (
……
)
아,
띄어쓰기만 잘 못해도 사람을 아주
쉽게 음탕해진다.
(45쪽)
이런 것 소개하는 것은 우리말
띄어쓰기를 잘 하자는 취지에서다,
결단코!
다시, 이
책은?
역시
김정운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 읽고
나니,
그는 녹슬지 않았다는 느낌이 물씬
든다.
하기야 그의
‘책장 뒤쪽으로는 습기가 침투 못하도록 칸마다 석고 보드를
쳤‘(268쪽)다니
그의 글 솜씨 역시도 어디 녹
슬을 리 있겠는가?
참,
그가
만들었다는,
아니 만들고 있다는 창고 서재
작업실,
이름이
무엇이든지,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그저 부럽다.
부러워..
책을 읽으면서 이런
부러움,
느껴보기는 또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