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슈필라움의 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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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이 책은?

 

궁금했었다. <여러 가지 문제연구소> 소장 김정운 박사의 최근 행보가.

일본 유학중에 펴낸 책은 읽었지만 그 뒤 소식이 궁금했는데. 이 책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로 해결이 되었다.

 

여수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것, 이 책을 펴낸 것 보니 저술 활동도 여전하시다.

게다가 슈필라움이란 공간까지 잘 마련해서 활용하고 있는데 이 책 부제가 <슈필라움의 심리학>이다.

 

저자는 김정운, 소개할 필요가 전혀 없지?

 

이 책의 내용은?

 

먼저 부제에 들어있는 개념 슈필라움이란 말, 짚고 가자.

 

독일어에만 있는 개념인 슈필라움(Spielraum).

놀이(Spiel)’공간(Raum)’의 합성어인데, 굳이 번역해 보자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공간을 말한다. 여기에는 물리적 공간은 물론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된다. (6)

 

이 책에는 그러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저자의 노력이 펼쳐지는 한편, 공간을 화두로 하여 펼쳐지는 저자의 화려한 입담이 펼쳐진다.

 

일단 저자의 글을 읽으면, 속이 시원해진다.

그의 문장은 단언적이다. 또 하나 그의 글은 추상적인 개념을 관운장의 언월도처럼 휘두르는데, 어찌된 셈인지 추상이 구체적으로 내 머릿속으로 들어와 박히니, 그것도 신기한 일이다. 그러니 단언적인 그의 문장이 머릿속으로 구체적으로 들어와 꽉 박히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말 들어보자.

 

<‘침 바르기존재 확인의 숭고한 행위다. 우리는 귀한 것에 꼭 침을 바른다. 뭉칫돈이 생기면 우리는 한 장 한 장 침을 발라가며 돈을 센다. 사랑하는 이가 생기면 어떻게 해서든 그에게 혹은 그녀에게 침을 바르고 싶어 안달 난다. 책도 마찬가지다. 전자책이 아무리 효율적이어도 아날로그 책 읽는 재미를 따라갈 수 없다. 침을 바를 수 없기 때문이다.> (126)

 

침 바르기에 이런 고차원적 의미가 있었다니!

그의 글에서 존재 확인이라는 추상적이고 고매한 용어가 침 바르기라는 생물학적인 설명을 타고 넘어오면, 어느새 머릿속으로 세 가지 침 바르기 행동이 번개처럼 떠오르는 것이다. 

책 읽는 것도, 지폐를 세는 것도, 또한 사랑을 하는 것도 침 바르기라는 행동을 통해 고귀한 존재 확인이 이루어진다는 것, 새삼 깨닫게 된다.

 

<인간이 세상을 보는 기준은 항상 자기 몸이다. 어릴 적 그렇게 컸던 학교 운동장이 나이가 들어 찾아가보면 그렇게 작을 수가 없다. 그 넓었던 집 앞 신작로가 그렇게 좁을 수가 없다. 내 몸을 기준으로 보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의 작은 몸으로 본 세상은 크고 놀라웠다. 호기심에 가득 차 세상을 올려다봤다. 그러나 성인의 몸을 기준으로 보면 죄다 시시하고, 볼품없다.>

(220)

 

어라, 이게 내 얘기인데. 맞다, 맞어.

어릴 적 살던 곳을 지나쳐가다가 몇 번이나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지나다니던 그 골목은 이제 내 어깨가 닿을 듯 느껴지고, 친구들과 같이 뛰놀았던 학교 운동장은 걸리버 소인국의 왕궁 뜰처럼 보이니, 이거 신기한데, 저자가 나서서 맥을 짚어주니, 이제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승화되는 것이다. 저자의 통찰, 들어보자,

 

<지금 내 삶이 지루하고 형편없이 느껴진다면, 지금의 내 관점을 기준으로 하는 인지 체계가 그 시효를 다했다는 뜻이다. 내 삶에 그 어떤 감탄도 없이, 그저 한탄만 나온다면 내 관점을 아주 긴급하게 상대화시킬 때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221)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해서, 이 책에서는 밑줄 긋고 새겨볼 말이 지천이다. 그 중에 몇 개만 옮겨본다.

 

의사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순서 주고받기. 타인의 순서를 기다릴 수 있어야 진정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105)

 

에드워드의 공간학에 따르면 45센티미터가 기준이 된다.

낯선 이가 이 거리 안으로 침입하면 몹시 불편해진다. (194)

 

이런 19금도 소개 해본다.

 

배에서 해 봤어요?”

광선이 형은 잠시 멈칫하더니 아니, 아직 못 해봤어. 근데많이 달라?”하며 아주 궁금한 표정으로 물어보는 것이었다. ( …… )

, 띄어쓰기만 잘 못해도 사람을 아주 쉽게 음탕해진다. (45)

 

이런 것 소개하는 것은 우리말 띄어쓰기를 잘 하자는 취지에서다, 결단코!

 

다시, 이 책은?

 

역시 김정운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 읽고 나니, 그는 녹슬지 않았다는 느낌이 물씬 든다.

하기야 그의 책장 뒤쪽으로는 습기가 침투 못하도록 칸마다 석고 보드를 쳤‘(268)다니 그의 글 솜씨 역시도 어디 녹 슬을 리 있겠는가?

 

, 그가 만들었다는, 아니 만들고 있다는 창고 서재 작업실, 이름이 무엇이든지,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그저 부럽다. 부러워.. 책을 읽으면서 이런 부러움, 느껴보기는 또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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