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낙원 세계기독교고전 32
존 밀턴 지음, 귀스타브 도레 외 그림, 박문재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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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낙원

 

이 책은?

 

그 유명한 존 밀턴의, 그 유명한 작품 실낙원을 읽었다.

이제야 읽었다.

그동안 차마 읽었다고도, 읽지 않았다고도 말하지 못한, 그저 제목만 불러대던, 거기에 몇 마디 중요한 구절을 덧붙여 소개하던, 말 그대로 유명하지만 읽지 않은고전 중의 고전 실낙원을 드디어 읽었다.

 

읽고난 소감은, 이런 거였구나, 왜 이런 작품을 그저 이름만 알고도 만족하고 있었을까?

이 작품을 읽지 않고서도 성경을 읽었다고 말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이 책의 내용은?

 

밀턴은 이 책의 시작부터 한 가지를 분명히 하고 시작한다.

이 책은 서사시의 형식이다. 그러나 압운은 고려하지 않고 썼다.

내가 이 서사시에서 압운법을 무시한 것이 통속적인 독자들에게는 결점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결점이 될 수 없고, 도리어 영웅 서사시에서 압운에 신경쓰는 오늘날의 거추장 스러운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옛적의 자유를 회복시켜준 영국 최초의 모범을 확립한 것으로 평가받는 것이 마땅하다.”(9)

밀턴 본인의 말이다.

 

그다음 본론에서 모두 12권으로 이루어진 장대한 서사가 펼쳐진다.

 

이 작품은 성경 <창세기> 3장에 기록된 아담과 하와의 타락을 주제로 삼는다.

 

성경본문과 관련되는 곳을 몇 가지 비교해 보았다.

 

<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성경, 창세기 31- 5)

 

이 부분을 밀턴은 어떻게 풀어놓고 있을까?

 

<당신들이 이 나무의 열매를 먹는 날에는, 지금 아주 분명하게 보고 있는 것같이 느껴지지만 사실은 희미하게만 볼 수 있을 뿐인 당신의 눈이 완벽하게 열려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여서, 신들처럼 되어 신들처럼 선악을 알게 될 것임을 그분은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내가 짐승이었다가 인간이 된 것, 그러니까 이렇게 적어도 내면만은 인간이 된 것처럼, 당신들이 인간이었다가 신들이 되는 것은 이치에 맞는 일입니다.

게다가 당신들이 죽는다면 그때에는 인간의 모습까지도 벗어버리고 진정으로 신들이 될 것이니, 당신들에게 결코 더 나쁜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을 죽음은 두렵기는 하지만 바람직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376 )

 

성경에서 단 두 절에 해당하는 사탄의 말을 밀턴은 위와 같이 풀어놓는다.

 

그 후 하와가 금단의 열매인 선악과를 먼저 먹은 후, 아담에게 먹기를 권하는데 성경은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기술하고 있다. 단 한 줄 문장으로 끝난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창세기, 36)

 

그런데 실제 우리 인간들은 그렇게 간단히 말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 일이 엄청나게 중요한 일인데, 그것을 한 마디로 끝낼 수 있었을까? 그런 의문에 답하는 듯, 밀턴은 그 말을 다음과 같이 풀어 놓는다.

 

<그러니 우리 두 사람이 사랑과 마찬가지로 운명이나 기쁨도 함께 할 수 있도록, 이 열매를 드세요. 당신이 이 열매를 먹지 않는다면, 우리는 서로 갈라져서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 갈 수밖에 없게 될 것이고, 그때에는 내가 당신을 위해 나의 신성을 포기하고 싶어도, 이미 때가 늦어서, 운명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 (384)

 

물론 이 말이 전부는 아니다. 무려 한 페이지 반에 걸친 길고긴 말로 아담을 설득,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게 한다.

 

이 작품의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이런 풀이는 성경을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 확실하다.

 

글로도, 그림으로도

 

이 책 밀턴의 실낙원은 글로 발표된 작품이다. 그러니 글로 그 내용을 이해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혹 이런 생각을 하는 독자도 있지 않을까? 말 자체, 개념 자체는 이해하겠는데, 그것들을 구체적으로 이미지로 이해할 수 있다면 더 좋겠는데.....라는 생각 말이다.

 

그래서 그런 독자들을 위해 이 책에 이미지를 집어넣었다.

프랑스 삽화가인 귀스타브 도레의 명화 50점과, 윌리엄 블레이크의 판화 8점을 삽입하여 독자들이 글로도, 그림으로도 이 작품을 이해하여 한 걸음 더 깊게 읽어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다시, 이 책은?

 

실명(失明), 그는 1652년 완전히 실명했다.

그 덕분(?)에 왕정복고 후 찰스 2세가 왕위에 오르자, 처형될 위기에 처했지만 살아남게 된다.

정적들은 <그의 실명을 그의 잘못된 정치사상과 활동으로 인한 천벌로 해석해서 그가 죽을 때까지 그대로 놓아두고서 다른 이단자들에게 본보기가 되게 하기 위하여 살려두는 것이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533)

 

이 작품 실낙원(1667)은 밀턴이 실명하고 난 후의 작품이니, 그 산고가 어땠을지? 우리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밀턴은 이 작품을 딸의 도움을 받아 완성할 수 있었다.

 

파란만장한 굴곡의 역정을 겪은 바 있는 밀턴은 이 작품에 그의 인생과 인류의 역사를 담아 놓았는데, 인류의 타락한 모습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근본적인 데에서부터 파헤쳐보고자 했던 그의 안타까운 마음을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밀턴이 딸을 앞에 앉혀 놓고, 한마디 한 마디 그의 인생의 심연에서 흘러나오는 말, 문장을 불러주고 있는 밀턴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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