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보 씨의 더블린
산책
이
책은?
작가 황영미의
소설집이다.
작가 황영미는
1992년에
등단했지만,
소설
이외의 일 –
교수와
영화 평론 –
로
바쁜 나머지 이제야,
무려
26년이
지난 지금에야 소설집을 펴냈다.
이 책의
내용은?
이 소설집에는 표제작인
「구보
씨의 더블린 산책」
등
모두 8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이중에서 특히 의미있게 읽은 것은
표제작 「구보
씨의 더블린 산책」인데,
내가
이 책을 골라 손에 든 이유이기도 하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읽고 있었기에,
이
소설은 제임스 조이스와 셰익스피어를 공부하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제임스
조이스는 『율리시스』에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거의 모두다 담아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셰익스피어 작품을 도처에서 언급하고 있다.
일례로 이런
것이다.
「구보
씨의 더블린 산책」에서 『율리시스』가
언급되는데, 그 안에 햄릿이 나타난다.
<구보는
던스터와 도서관 구경을 하다가 밖으로 나왔다.
“『율리시스』
9장이
국립도서관에서 스티븐이 사람들과 『햄릿』에
대해 토론하는 내용이잖아.
특히
‘햄릿의
말은 우리들의 마음을 영원한 지혜,
플라톤의
관념의 세계와 접촉하게 하는 것’이라는
러셀의 말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해?”
던스터는 뭔가 생각하는 듯 손으로
턱 끝을 잡더니 말했다.
“음,
모든
철학적 내용은 플라톤이 바탕이니까 『햄릿』
안에
담겨 있는 인생의 본질이 바로 철학과 만난다는 말이라고 생각하네.”>
(241쪽)
저자가 소설에서 말한
<‘햄릿의
말은 우리들의 마음을 영원한 지혜,
플라톤의
관념의 세계와 접촉하게 하는 것’>이라는
러셀의 발언은 어디에 나오는 말일까?
『율리시스』
9장에 러셀이
발언하고 있는데, 그것을 옮겨본다.
“셸리의
가장 심원한 시나,
햄릿의
말은 우리들의 마음을 영원한 지혜,
플라톤의
관념의 세계와 접촉하게 하는 것이오.
나머지
모든 것들은 학생들을 위한 학생들의 사색인 거요.”
(『율리시스』
2권,
김종건
역,
범우사,
26쪽)
『율리시스』를
읽으면서 그냥 무심히 넘어갔던 그 말의 의미를,
이
소설을 읽으면서 깨닫게 된다.
“음,
모든
철학적 내용은 플라톤이 바탕이니까 『햄릿』
안에
담겨 있는 인생의 본질이 바로 철학과 만난다는 말이라고 생각하네.”
작품 중 던스터가 한 말이 바로
저자가 『햄릿』을
해석하는 방법인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햄릿』
안에
인생의 본질이 담겨있다고,
따라서
『햄릿』을
읽으면 철학과 만나게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공부도 이런 공부가
없다.
저자의
오랜 경륜을 통한 『햄릿』
해석이
마음에 와 닿는다.
또 하나의 작품
「모래바람」은
질 들뢰즈의 의미의 논리를 소개해주고 있기에 의미가 있다.
물론 그것은 해설자인 문학평론가
우찬제 덕분이긴 하지만,
‘내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타자를 통해 볼 수 있다’는
질 들뢰즈의 발언을 상기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화자
‘나’는
의사다.
그런데
의료사고로 갈등을 겪게 된다.
그런
와중에 어떤 성찰의 시간에 도달한다.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행동 하나가 그를 생각의 자리로 이끌어간다.
바로
환자 대기용 의자에 앉아보는 일.
<개업한지
10년이나
되었지만 한 번도 이 의자에 앉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더군.
....... 더구나
여기 앉아서 뭔가를 기다릴 필요가 없었지.
이
의자에 앉아보지도 않은 사람이 어떻게 환자의 고통을 내 것으로 할 수 있겠나.>(33-34쪽)
환자의
자리,
곧
타자의 자리에 앉아보게 되자,
자기
자신이 제대로 보이게 된 것이다.
그렇게 타자가 자기 자신 속에 자리
잡게 되면 그제야 자아가 제대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라는 깨달음,
이
작품에서 얻었다.
다시,
이
책은?
해서,
이
소설집은 단순한 소설 모음이 아닌 것이다.
나에겐
공부요,
성찰이요.
인식의
확장이다.
「구보
씨의 더블린 산책」
에서는
구보씨를 따라가 제임스 조이스를 만나게 되고,
그가
걷던 더블린도 걸어보게 되며,
덤으로
『햄릿』을
해석하는 방법도 하나 알게 되었다.
또한
「모래바람」에서는
타자의 자리에 앉아보는 경험도 하게 되었다.
타자의
자리에 앉아보는 것이 곧 나를 아는 것이라는 것도 배웠다.
이렇게 이 소설집은 의미를 담뿍
담고 있어,
지금껏
읽었던 어떤 소설보다도,
더
가치가 있다. 그런 평은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