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바라보는 입체적인 시선>
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어....얼마나 모순적인 말인가? 그렇지만
모순적이면서도 공감이 가는 말이기도 하다. 현대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군중으로부터 떨어져 조용히 혼자있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군중으로부터 떨어지면 불안감이 들기도 하고 왕따가 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군중 속에 있을 때는 혼자이고 싶고 혼자있으면 다시 사람이
그리워진다. 나도 당신도 어쩌면 이 느낌이 공감하지 않는가?
혼자이고 싶지만 외로운 건 싫다면 다소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이 문구가 바로 저자
피터 홀린스가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가 숨어있는 말인 듯 하다. 저자는 유명한 심리학자이자 저자라고 한다. 어려서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던
자아를 벗어나 지금은 만인의 앞에서 강의도 하고 상당도 해주는 적극적인 면모를 지닌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이
전자이다 후자이다 콕 짚어서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내면에 다양성을 가지고 있지 않는가?

저자는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보통 흑아니면 백이라는 양분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활달한 사람.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사색적이고 조용한 사람. 이런 식으로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부분에까지
편견으로 상대를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상대를 판단하듯이 나 역시 다른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판단되어지기도 한다. 내면에
가지고 있는 다양성, 적어도 양면성을 무시하고 그는 어떤 사람이라고 단정짓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단편적인가 말하고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양면성이 하나의 우세함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서로 균형을 이루고
있기도 하고 혹은 크고 작게 내재하고 있기도 한다. 그래서 저자는 혼자있고 싶은 나의 내향적인 모습과 사람들에게 섞이고 싶어하는 외향적인 모숩을
인정하자고 한다. 그가 말하는 입체적인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상대를 바라보자고 하는 것이다. 나를 규정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에게 좀더 관대하게 상대에게 좀더 관대하게 서로 인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다는 이 말이 무척이나 공감된다는, 나 뿐
아니라 당신도 그러하다는 것을 인정할 거라고 본다.나를 규정하는 것으로 부터 자유로워지기. 입체적 시선으로 바라보기. 이 모두 색다르면서도
환기가 되는 특별한 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