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불능 시대의 가슴을 움직이는 아몬드>
중년이 되어도 읽으면서 가슴이 뛰는 이야기들이 있다. 바로 청소년 성장소설이 나에게는 그러하다. 아이들을 키우고 나 역시 그 시간들을
지나쳐왔지만 인생에서 가장 큰 흔들림이 있는 시기이기 때문일까? 그래서 청소년 성자을 다룬 이야기들은 내게 늘 특별한 이야기가 되어
다가온다.
<완득이><위저드베이커리>처럼 가슴에 콕 박히는 창비청소년 문학상 수상작품 <아몬드>. 아몬드라고 하면
먹는 아몬드? 그걸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지 않나? 그런데 첫장부터 심상치가 않다. 너에게도 있고 나에게도 있다고 말한 아몬드의 고소하고 달콤한
이야기의 시작을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죽음으로 시작하는 이야기. 괴물이 괴물을 만난 이야기라니...
그렇게 <아몬드>는 고소함이 아닌 기괴한 의문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간식이 되는 아몬드가 아닌 누구의 뇌에도 존재하는 편도체를
이 소설에서는 아몬드라고 표현했다. 감정을 느끼는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편도체가 남들과 달리 작동하지 않는 윤제. 그래..그저 감정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고 가정해 보자. 그게 뭐 어때서? 요즘 세상이 얼마나 감정에 메말랐는데 하면서도 그리 무시할 수는 없다.
남들은 웃고 울고 호들갑을 떨만한 일이지만 그런 것을 모르는 윤제, 그래서 엄마는 윤제가 세상 속에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 애쓴다. 아몬드를
매일 일정량 먹고 먹고 또 먹게하고, 남들이 웃으면 비슷하게 따라 웃고 차가 오면 위험하니 피해야 한다는 아주 기초적인 것들을 가르치면서
말이다. 그러던 어느날 윤제가 아니면 그 누구도 감당하지 못할 일이 생겨난다. 윤제의 눈 앞에서 엄마와 할머니가 묻지마 집단살인의 희생자가 되는
끔찍한 사건. 그런데 윤제에게는 그 어떠한 느낌도 없다. 아무런 느낌없이 살인마를 향해 문을 열고 나서려는 윤제를 막기 위해서 처절하게
몸부림쳤던 가족의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윤제는 아무런 느낌이 없다.
이런 윤제를 주위 사람들은 특별한 로봇으로 대한다. 그러던 어느날 운명같은 또 하나의 문제아 곤이가 윤제 앞에 나타난다. 윤제를 괴롭히던
그 아이가 윤제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모습, 그러나 윤제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느낄 수 없다. 그리고 뭔가 꾸물거리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포인트였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지만 그래도 윤제가 뭔가 꼬물거리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는 것. 두 아이들의 변화가 극에
치달으면서 긴장감을 더하고 마음도 아프지만 기적처럼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는 윤제의 모습에서 독자는 어느새지금 우리의 모습과 맞닿게
된다. 감정불능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 모두 작동하지 않는 아몬드 하나씩 가지고 있는게 아닐까? 가슴으로 느껴야 할 그것이 무딘 머리를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것 작가는 우리에게 말해주고 싶었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