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한 스푼까지 사랑하며 살고 싶은 이야기>
인생의 덧없음을 이야기 하는 경우를 이제는 종종 만나게 되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짧은 인생을 살면서 뭘 그리 욕심내고 아둥바둥거리면서
살았던지 인생은 짧다고 싸우지 말고 욕심내지 말고 편하게 살라고 하는 말을 종종 듣게 되는건 순전히 부모님의 연세가 깊어지기 때문이다. 실은
그런 말은 책에서건 드라마에서건 들었지만 피부로 와 닿게 되는 건 나의 부모님의 진심어린 말이기 때문이다.
구병모 작가의 <위저드베이커리>를 처음 대했던게 언제였던가? 오랜 시간이 흘렀다. 처음 작품을 접하면서 판타지스러운 요소를
가지고 삶의 의미에 깊이 다가가는 모습에 매력을 느꼈었다. 얼마전 <파과>를 접하고 오래지 않아 다시 만나게 된 구병모의 소설 [한
스푼의 시간]은 처음 내가 그의 작품을 대했을 때의 느꼈던 그 삶에 대한 애잔함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마지막 한 스푼까지 사랑하며 살라는
부모님의 진심어린 말처럼...

처음부터 예상을 깬다. 아내를 여의고 하나뿐인 외아들마저 먼 타국의 이슬로 사라져버린 명정에게 어느날 아들이 죽기 전에 보낸 소포가 하나
도착한다. 이 설정부터 뭔가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소포가 무엇이든 아주 특별한 의미가 되겠구나 하면서 말이다.
아들의 시신인가 착각할 만한 크기의 사람이 들어있다. 아니 실은 사람이 아니라 아들이 보낸 17세의 소년 모습을 한 로봇이었다.
로봇이라니. 동물도 아니고 로봇에게 구병모 작가는 생명을 불어넣어주었다. 작가의 바람처럼 우리는 그 로봇에게 함께 생명을 부여한다.
명정이 둘째를 낳으면 붙여주고 싶었던 이름 '은결'이 붙여지는 순간 우리는 그 로봇을 또 하나의 생명체로 대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로봇
은결, 입력된 시스템에 의해서 판단하고 행동하는 은결이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전해줄 수 있을까?
놀랍게도 은결은 입력된 시스템 이외의 것을 스스로 조금씩 배워나간다는 것이다. 자신은 17세의 모습으로 성장하지 않지만 주변의 친구들은
성장해나가도 그 차이를 느끼게도 되고 그리고 입력하지 않은 감정도 조금씩 자라기도 하니 말이다.
그렇지 않을거라고 생각한 룰을 깨뜨리고 작가는 로봇이지만 사람화 되어가는 은결을 통해서 삶을 배워가는 순수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하고 그리고 늙어가지만 은결은 늘 그대로이다. 마지막 순간 명정은 혼자 남겨진 은결에게 마지막 남은 한 스푼의 세제 이야기를
하면서 인생에 대해서 이해시키려고 하고 은결의 거처를 정해주고자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은결은 그의 죽음을 통해 슬픔을 그리고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생을 결정하고자 한다.
공기가 늘 곁에 있기에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듯이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이 있기에 그 소중함을 모르고 살기도 한다. 그저 열심히
사는데 정말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사는 것 말이다. 은결을 통해서 어린 아이가 삶을 배워가듯 그렇게 세상을 조금씩 배워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무디지만 그 순수함을 다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인생의 덧없음을 이야기 하는 부모님의 말씀이 오히려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역설적으로 하는 말임을 더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한 스푼의 시간이 남겨져도 그 삶을 사랑하고 아끼면서 살고 싶어지게 만드는 소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