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남은 조선 자기 문화의 흔적]
벌써 두 달이 되었나? 리움 미술관의 고미술관에 갔는데 오랜만에 분청사기전이 열리고 있었다. 분청사기라고 하면 조선시대의 귀족적인 자기였던
백자에 비해서 서민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도자기이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역사적인 당시의 환경에서 분청사기가 등장했다는 것도 익히 알고
있다.
우리나라의 도자기 문화에 대해서는 과거의 영광과 빛이 클 뿐이다. 지금 세계적인 도자기로 인정받는 유럽에 비하면 동양권에서는 일본의
자기문화를 으뜸으로 쳐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면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통해서 일본으로 끌려간 우리의 도공들이 있었음을 잘 알고
있다.
[일본 도자기 여행]이라는 제목 외에 소제목으로 제시된 규슈의 7대 조선가마라는 문구 때문에 이 책이 더 궁금했다. 일본 도자기 문화의
발달이라는 측면보다는 일본에 끌려간 조선 도공들이 남긴 조선의 가마 문화에 대해서 더 깊이 있게 다루겠구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은 도자기전쟁이라 할 만큼 배후에 일본으로 조선의 도공을 끌고 가거나 조선의 도자기를 반출하는데 혈안이 되었던 전쟁이었다. 이미 역사책을
통해서 많이 알고 있겠지만 이전부터 해안가에 출몰하는 왜군때문에 주민들이 힘들었는데 전쟁으로 인해서 강진과 같은 도자기 문화가 발달할 환경적
조건을 갖춘 곳에서 점차 내륙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고운 흙을 얻던 환경에서 그렇지 못한 환경으로 바뀌니
분청사기와 같은 다른 종류의 도자기가 등장하게 되기도 했다.

이러한 양란 이후에도 우리는 일본과 끈질긴 악연을 오랫동안 유지하게 된다. 익히 알겠지만 일제강점기 때에는 조선의 왕실 태반이 담긴 태실을
파헤쳤다는 만행도 많이 들었다. 이유인즉 태를 모시는 가장 훌륭한 도자기를 얻기 위해서였고,..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일본인들의 조선
자기에 대한 애착과 열망은 대단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등한시 되면서 산업발전에만 목을 메는 동안에도 일본에서는 자기문화를 발전시키는데 공을
들여왔다. 조선에서 건너간 도공들이 일본에서 정착하면서 일본 환경에 맞는 조선식 가마를 만들면서 수공예 작업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차문화의 발달과도 연관되기도 한다. 차문화의 발달은 명상과 부의 상징같은 것으로도 여겨지는가 보다. 자연스럽게 차를
마시는 다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다기의 질적 향상에도 관심을 갖게 디니 말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도자기 산업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에는 너무도
멀리 뒤쳐져 있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규슈에 남겨진 7대 조선 가마를 저자의 소개와 함께 둘러보면서 우리나라 자기 문화의 현실에 대해서 좀더 현실적인 발전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과 함께 일본에 남겨진 우리의 흔적도 등한시 하지말고 그에 대한 학문적 역사적 연구도 함께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