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버지와 아들 ㅣ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40
이반 세르게예비치 뚜르게녜프 지음, 이강은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6년 4월
평점 :
<19세기의 러시아 사회의 갈등이 드러난 문제작>
정말 오랜만에 러시아 문학을 접하는 것 같다. 그것도 투르게네프의 작품 <아버지와 아들>로 말이다. 사실 학창시절에 투르게네프의 작품은 한작품 밖에 읽지 못했기에 중년이 된 지금에서야 그의 대표작인 <아버지와 아들>을 접하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원래 제목은 <아버지들과 아들들>이었단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 집안의 아버지와 아들이 아닌 당시의 아버지들과 아들들의 모습이 작품속에 드러난 작품으로 19세기 러시아의 사회적인 상황과 신구세대의 갈등이 담긴 문제작으로 알려져 있다.
도시에 나가 공부를 하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아들, 그 아들은 나의 뒤를 이어서 일을 하겠지 싶었는데 어느 순간 나타난 아들이 이제 자신은 컸으니 자신의 인생을 가겟다. 상관하지 말라라고 말한다면 상처받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것은 비단 19세기 러시아의 상황에서만 아니라 전 인류를 통틀어 발생하는 보편적인 일일 수 있다. 그런 과정에서 기득권과 그렇지 않은 세대간의 갈등을 통해 사회는 자연스럽게 변화하고 진화해 가는 것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두 명의 아들의 모습은 지금 상황에서 만나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군의관 출신 아버지 아래서 풍요롭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아들 바자로프와 그에 비해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낸 또 한명의 아들 아르카디. 이 둘은 자라난 환경은 다를 지 모르지만 두 사람이 새로운 시대에 품는 열정과 동경은 동일한 것일지 모른다. 바자로프와 아르카디의 모습은 보면 개인적으로는 어딘지 모르게 헤세의 싱클레어와 데미안이 떠오르기도 했다. 친구간에는 누군가 영향을 주는 인물과 그 영향을 받는 인물이 있다. 두 사람 가운데는 자신의 의지가 확고한 바자로프가가 강하게 느껴진다.
의학도를 꿈꾸는 바자로프는 과학적인 사실이 아닌 대부분을 다 부정한다. 또한 권위와 당연시 되던 사회적 원칙도 부정하다. 그래서 허무주의자라는 별칭도 받게 되는 인물이다. 모든 것을 부정하는 듯하지만 오히려 더 강력한 사실을 추구했던 그는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얻고 버리고 그리고 사실을 확인하는 삶을 택한다. 그런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기도 하지만 그의 행보는 결코 가볍지 않음을 느낀다. 그에 비해 아르카디는 바자로프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아버지의 삶을 인정하는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면이 강하다.
당시의 사회에서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변화하는 러시아 사회를 담아내고 그 가운데서 갈등하는 두 세대의 모습을 담아냈기에 문제작이라는 칭호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에서 보여지듯이 아들의 세대라고 해서 모두 같은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공통점이라면 기성세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모두 미래에 대한 열망과 동경이 있기에 조금씩이라도 변화하는 삶을 택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아버지와 아들이라면 갈등이 있을 수 밖에 없지만 아버지의 삶을 부정하는 아들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안에 머물기를 갈구하는 아들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립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기 때문이기도 하기에 말이다. 탄탄한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었고 시대적 배경은 다르지만 지금도 가지고 있는 문제들이기에 같은 고민을 생각하면서 작품을 읽게된다. 늘 느끼는 바이지만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시리즈에서 제공하는 작품 해설과 배경 설명은 작품을 읽고 해석하는 데 많은 도움을 얻는 것 같아서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