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디낭 할아버지 너무한 거 아니에요
오렐리 발로뉴 지음, 유정애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결국 사랑과 관심이 누구에게나 필요하지]

 

인류 문명이 발달하고 의학이 발달하면서 이제 60은 더 이상 노인이 아니고 70이상 되는 분들도 주위에서 쉽사리 만날 수 있다. 선진국에서만 고령 인구가 증가하는게 아니라 인류 전체에서 아이보다는 고령인구가 증가하는게 맞는 거 같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은 문학에서도 나타나는게 아닌가 싶다.

 

처음 <창문너머 도망친 100세 노인>이 히트를 쳤을 때는 우연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후로 노인이 주인공인 작품이 우리나라에 참 많이 소개된 듯하다. 거의 비슷하게 주인공의 얼굴이 커다랗게 그려진 표지에 뭔가 한마디 전하는 제목으로 말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북유럽의 도서로 주로 만났었는데 이번에는 프랑스 작가의 작품으로 만나게 된 점이다.

 

페르디낭 할아버지, 결코 인자하고 자상한 할아버지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외쳐대는 할아버지의 목소리도 들린다.

 

"양로원에 가느리 콱 죽어버리겠다."

 

고집불통의 팔순 노인인 페르디낭의 삶은 처음부터 무난하지 않았다. 서양사람들이라면 다 꺼리는 13일의 금요일에 태어났다는 것만으로도 . 그의 엄마는  어떻게든 14일에 낳으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결국 20여분을 남긴 13일의 금요일에 아이는 태어났고 그 때문인지 우리는 페르디낭의 삶에 사랑이 충만하지 않을 거라는 걸 예감하게 된다. 무난하지 않았던 그의 삶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음이 분명하다. 이제는 생을 정리하면서 살아야 할 때, 모든 것에 불만이고 사람들과 어울이지도 못하고 심술을 부리는 페르디낭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면서 살짝 화가 나기도 한다. 어쩌면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하는 시기에는 불안전하기에 더 많은 것을 수용하고 변화하지마 성인이 되고 그리고 더 훌쩍 지나 80이 되어버린 때는 뭔가 달라진다는 건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독거로 살면서 사회와 타협하지 못하고 사는 경우가 빈번해진다는 사실이다. 그때문에 페르디낭과 같은 사람을 우리는 문학에서 만나게 되기도 하고 말이다. 페르디낭이 주변 사람들과 겪는 갈등을 보면 간혹 어린애 보다 유치한 듯하기도 하고 심술이 덕지덕지 난 놀부 같기도 하지만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그와 갈등을 겪는 사람들도 비슷한 경향이 있음을 알게 된다.

 

노인이 된 다음 가장 그리워 하는 건 결국 사람인 듯하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서 심술을 부리지만 곁에 두는 애완견을 통해서 대화를 하고 그리움을 달래는 모습을 보면 말이다. 그렇기에 페르디낭에게 다가가는 어린 소녀 줄리앳과의 소통이 반갑기도 하고 말이다.

 

페르디낭은 과연 양로원으로 갈까? 그보다 더 중요한 실마리가 풀리면서 해피앤딩이 되는 과정을 소설 속에서 만나보면 좋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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