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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4월
평점 :
<슈퍼히어로가 되어 준 할머니>
작년 다산에서 나온 <오베라는 남자>는 가히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톡톡 튀고 괴팍한 오베를 통해서 우리는 삶에 대해서 참
많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올해 오베를 지은 프레드릭 베크만의 또 다른 장편소설을 만나게 되었다.
오베만큼이나 표지가 인상적이다. 괴팍한 할아버지 대신 호기심이 가득한 천진난만한 소녀가 표지를 장식하는데 제목은 이러하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표지의 주인공은 할머니의 미안함을 담은 편지를 전달하게 되는 일곱살 소녀 엘사이다. 엘사가 전하게 되는 편지의 주인공 할머니는 자그마치
일흔일곱이다. 둘 간의 공통점은 칠로 끝난다는 것. 둘의 나이는 일흔살이나 차이가 난다. 이 둘이 과연 어떤 통하는 점이 있었길래 엘사는 이런
매신저의 역할을 하게 될까?
이 책은 첫 페이지를 펼치면서부터 호기심을 자극받게 된다. 아파트 입주민들에 대한 인물 소개가 있고 심지어 이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그림에 누가 살고 있는지 위치까지 표시되어 있으니 말이다. 결국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 하나하나 휘리릭 넘겨버릴 인물이 아니라는 뜻이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할머니와 할머니의 딸이자 엘사의 엄마, 그리고 엘사.
이렇게 삼대의 모녀지간이 한 아파트에 사는데 과연 이들의 사이는 어떨까?그것도 궁금해진다.
오베만큼 괴팍한 건 아니지만 누구든 미치게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할머니의 성격도 무난하다고 보기는 힘들다 . 할머니도 예전에는
의사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하면서 워커홀릭을 했는데 그 덕에 늘 딸은 혼자 남아 외로운 생활을 했어야 했다. 그 딸이
바로 엘사의 엄마이자 지금은 할머니보다 더 워커홀릭에 빠진 병원운영자가 되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엘사에게는 정말 특별하고 좋은 할머니일 수 밖에 없다. 늘 일만 열심히 하는 엄마때문에 때로는 외롭고 친구들과의 불화때문에 때로는
혼란스러울 때 할머니는 엘사를 위해 끊임없이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이야기꾼이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는 그 누구도 들어오거나 앗아갈 수 없는
엘사와 할머니만의 세상인 것이다.
그런 어느날 엘사는 엘사는 할머니로부터 안부편지 한통을 받게 됩니다. 난데없이 미안하다고 인사를 건네는 할머니의 편지...그 편지를
시작으로 엘사는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 한명한명에게 할머니의 편지를 건네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사실 할머니가 엘사에게 건넨 편지를 보는 순간 너무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 편지의 의미는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할머니의 미안함이
담겼기 때문이다. 누구나 세상의 끝을 맞이하게 되는데 끝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이도 있고 혹은 처절한 몸부림으로 혹은 무기력하게 받아들이는
이도 있다. 그런데 할머니는 정말 기발하게 주변 사람들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무심한 듯, 혹은 괴팍한 듯 아파트
입주민을 대했지만 사실 그들의 삶을 하나하나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의 편지를 받아든 사람들이 이야기하지 않기에 편지의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엘사의 말처럼 모두에게 미안함을 전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마지막 누군가 내게 편지를 쓴다면 그 편지를 읽고 어떤 느낌이 들까?
할머니의 편지는 그렇게 아파트 입주민들과 하나뿐인 딸과 하나뿐인 손녀 엘사에게 생의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특히 마지막 할머니가 엘사에게 쓴 맞춤법도 다 틀린 편지의 첫 문장을 읽는 순간부터 할머니의 진심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주글 수밖에 없어서 미안해. 주거서 미안해. 나리 먹어서 미안해. 너를 두고 떠나서. 이 빌어먹을 암메 걸려서 미안해....."
그러나 읽는 독자와는 달리 엘사는 야무지게 그리고 당차게 할머니의 죽음을 용서하기로 한다. 자신의 슈퍼히어로가 되어준 할머니가 있었듯이
자신도 누군가의 슈퍼히어로가 되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성장했기 때문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