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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 - 조선 500년 명문가 탄생의 비밀
한정주 지음, 권태균 사진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5년 5월
평점 :
<호를 통해 보는 조선 선비의 의지와 마음>
사실 조선 선비의 호보다도 먼저 익숙하게 다가온 것은 중고등학교 때 시인이나 소설가를 배우면서 그들의 호를 외웠던 것이 먼저인 듯하다.
소월 김정식, 만해 한용운 등등 ..이렇게 외우면서 그들이 지닌 호가 자신을 표현하는 한 방법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멋지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그러나 현대에서 거의 사라진 호는 조선시대 선비들에게는 자존심 그 자체였다고 한다. 이 책의 제목이 다소 과장된 면도 있지만 책을 읽어가다보면
조선 선비들에게 호가 의미하는 바를 알게 되면 그러한 제목에 딴지를 걸지는 않게 된다.
제목에 반해서 꼭 한번 읽고 싶었던 호에 얽힌 이야기. 이 책은 우선 분량 면에서는 그리 녹록하지는 않다. 700쪽 가량 되는 분량이니
웬만한 책 3권 정도의 분량이 되지 않을까 싶다. 분량에 압도당하고 조선시대의 이야기가 어렵지 않을까 살짝 주눅이 들었지만 역사에 관심이 있고
이야기와 시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결코 따분하게 읽지 않을 책이다. 처음부터 차례로 읽어도 좋지만 목차에서 자신이 관심있는 사람을 먼저
찾아서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되겠다.
현대인들은 이름 하나로 평생을 사는게 보통이지만 조선시대 선비들은 이름과 자, 호를 가지는게 보통이었다. 이름이나 자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지어주시는데 이름은 태어나면서 짓고, 자는 성년식을 거치면서 보통 스승이나 부모에게서 받는게 보통이다. 그러니 자를 지을 때도 이름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지어주는게 보통이란다. 그에 비해 호는 자신이 스스로 짓기도 하고 친한 벗들이 지어주기도 했다니 분명 이름이나 자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름과 자에 비해서 호는 주변 사람들이 그 사람을 어떻게 보는지 혹은 스스로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지 의지나 마음이 훨씬
담겨 있는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유명한 성리학자인 율곡 이이의 호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예전에 파주에 갔다가 밤나무가 많이 나는 지명을 따서 이이의 호를
율곡이라고 지었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이렇게 지명을 따서 짓는 경우도 있다. 또한 가장 인기 있는 조선의 실학자 중의 한사람인 정약용은 차를
즐겨 마셔서 '다산'이라는 호도 있고 남인이기에 늘 경계하고 조심하는 마음을 담아 '여유당'이라는 호를 짓기도 했다. 여유당의 의미를 되짚어
보면 겨울에 시냇물을 건너듯 신중하고(여), 사방을 경계한다(유)는 뜻이니 그가 얼마나 주의깊게 살았는지 알만하다. 아직까지 가보지 못한
남양주의 다산기념관을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개인적으로 관심있게 읽은 부분은 오성과 한음으로 알고 있는 이항복과 이덕형의 호에 대한 이야기이다. 산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부암동의
백사실 계곡을 가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백사가 바로 이항복의 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오성은 그가 공신으로 받은 직위이다. 강가 어느 노인의
'백사'라는 호를 너무도 갖고 싶어서 그가 죽은 다음 이항복은 말년에 '백사'라는 호를 쓰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너무 흥미로웠다. 흰모래
나룻토의 노인처럼 청렴하고 욕심없이 살고자 한 그의 뜻이 담겼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의 절친인 이덕형은 원래 호가 '한음'이란다.
한양의 남쪽을 뜻하는데 그가 태어난 곳이 경기도 광주이고 그가 마지막을 보낸 곳도 두물머리 부근이니 그의 호대로 살다 간 것인가? 재미난 것은
이덕형이 태어나 묻힌 그 곳에서 150년 후에 최고의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이 태어난다는 사실이다. 아직 한번도 제대로 다녀보지 못한 남양주와
두물머리의 운길산을 꼭 한번 걷고 싶어지는 것은 두 학자 때문이기도 하고 일년에 한두번은 꼭 가는 백사실 계곡의 백사 이항복의 이야기도 알게
되었다.
조선시대 선비의 호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다지만 실제로는 그의 인생과 사상을 집약적으로 이야기 듣는 셈이 된다. 호가 바로 선비의 마음과
의지, 혹은 그를 판단하는 주변사람들의 마음을 담은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읽는 내내 인용되는 기록이나 시문이 많아서 또 다른 색다름을 맛볼 수
있다. 분량은 많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기에 역사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는 정말 강추하고자 한다.
'호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재미있게 접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