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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당무 ㅣ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39
쥘 르나르 지음, 전혜영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4년 9월
평점 :
<19세기 프랑스 중산층의 솔직한 모습을 그린 작품>
어려서 책을 읽을 때는 늘 혼동되는 게 있었다. 나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등장인물을 이해하는 것이다. 시대가 다르거나 혹은 장소가
다르거나. 무작정 읽기 시작할 때는 이런 배경지식을 등지고 내용 자체에만 매달릴 때가 많았다. 그러나 나중에야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품이
쓰여진 당시의 시대상황이나 작가에 대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을.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 다시 읽게 된 홍당무는 어린 시절 동화책으로 봤던 그 작품과는 정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가족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사랑받지 못하는 못난이 홍당무의 이야기로만 기억되었는데 지금 다시 읽은 작품에는 홍당무 외에 당시의 시대상도 함께 보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러한 작품에 대한 배경은 푸른숲 주니어이 담고 있는 상세한 작품해설 때문이다. 작품의 가장 마지막에 국어 선생님이 작품의
배경지식에 대해서 예상치 못한 다양한 정보를 주기 때문에 정말 많이 배우고 있다.
목차를 다시 보고 작품을 읽어나가다 보니 홍당무가 가지고 있는 기억의 조각들을 만나는 느낌이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기억의 조각이고
자기가 느끼는 감성으로 그것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이야기 속에 늘 연극 대사같은 형식이 삽입되는 구조가 홍당무가 가지고 있는 기억의
조각을 보여준다는 느낌을 더 갖게 만드는 것 같다.
머리카락이 붉어서 붙여진 별명이 홍당무이지만 어머니가 말하는 이유는 사실 섬뜩하다. 그 아이의 속은 머리카락보다 더 붉다고 한다. 마치
자기 자식을 흉보는 듯한 느낌은 작품의 곳곳에 드러난다. 가족끼리 애정이라는 것이 없어보이기까지 한 이유는 뭘까? 그런 의문은 바로 작품이
쓰여진 당시의 시대적 모습과 통하는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19세기 말 프랑스의 중산층의 일반적인 가정의 모습을 그대로 담았다고 한다. 물론
작가의 어린시절 기억이 바탕이 되었지만 말이다. 사랑과 애정을 말하기에 각박했던 당시의 시대적 모습과 달리 작품들은 사랑을 강조하는게
보통이었다고 한다. 작가 쥘 르나르는 오히려 솔직한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독자들로 하여금 더 관심과 사랑을 받았는지 모르겠다.
책을 읽는 때가 있다고 하지만 어려서 보던 책을 성인이 되어 다시금 보면 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어른들의 독서도 아이들처럼
꾸준하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푸른숲의 징검다리 클래식의 국어선생님이 들려주는 상세한 작품해설은 너무도 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