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에 탄 나무토막 같구나, 아스케 보림문학선 8
레이프 에스페르 안데르센 지음, 김일형 옮김, 울리치 뢰싱 그림 / 보림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인권을 이야기 해 주는 또다른 안데르센] 



안데르센 이라고 하면 [인어공주]와 [눈의 여왕]의 안데르센을 떠올리는게 보통이다. 풀 네임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은 탓에 [불에 탄 나무토막 같구나 아스케]라는 작품을 대하면서 내가 아는 그 안데르센을 떠올렸다. 그러나 작품을 읽으면서 감이 너무도 달라 다시 작가를 살피니 내가 알던 그 안데르센이 분명 아니었다. 레이프 에스페르 안데르센... 덴마크의 작가이나 어린이를 위한 동화를 썼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과 다른 작가이다. 아이들의 인권과 성장을 문학적으로 풀어내면서 문제작을 다루었던 작가라고 평가되는 작가는 레이프 에스페르 안데르센이다. 그의 글에는 아름다운 표현보다는 심도있는 주관과 타인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반영되고 있다.

지금은 너무도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노예의 아들과 족장의 아들이 이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다. 바이킹인 어른들이 떠난 뒤에 다른 족의 침입을 받아 마을에는 족장의 아들 얀과 노예의 아들 아스케만 남게 되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족장의 아들과 노예의 아들이라는 신분이 이 둘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시킬까 하는 긴장감이 흐른게 된다. 처음에는 서로를 견제하지만 이들은 어른들과 달리 나와 다른 남에 대한 호기심과 이해하려는 배려가 전반에 흐른다. 아스케는 처음부터 노예가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침략을 당해 노예로 전락하게 되었다는 것을 아는 순간 얀은 미안함마저 느낀다. 이 둘이 서로를 알아가면서 신분, 차별은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달라지고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서로가 진정으로 알아가면서 신분의 구별이 무색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작품을 읽는 내내 아이의 감정과 갈등에 동화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먼 발치에서 이들을 내려다보는 또 하나의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과거의 어느시점이지만 결코 현재의 이야기와 전혀 무관하지 않기에 그들을 먼 발치에서 내려보게도 되는 것 같다. 만들어 놓은 사회적 규범과 제약이 마치 원래부터 그랬듯 무심하게 지키면서 살지만 그 역시 처음부터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들은 아니었다. 때로는 불합리하지만 타성에 젖어 순응하는 제약에 대해서 과감히 턔클을 걸며 생각을 전환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도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작가는 잘 짜여진 틀 속에 갇혀 지내는 아이들을 향해 자신의 인권과 평등, 사회적 제약과 모순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지녔던 것 같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지는 못했지만 생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느낄 수 있었다. 입시에 매달려 수행점수에 민감해져가는 아이들에게 세상을 달리 보고 자아 성찰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 줄 이런 작품 교과서 속에서라도 만났으면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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