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교복의 소리도 듣는 시인에게 반했다] 평소 '나는 무딘 인간이다'를 느끼게 되는 한 가지가 시집을 읽을 때인데 이번 시집을 읽다가 문든 눈물이 흘러내렸다. 마흔이 넘는 중년의 엄마가 되고 중학생이 된 딸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어도 마음 속 어딘가에는 청소년기의 그 감성과 느낌이 남아있기 때문인 듯하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대학교 1학년 때 친구와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난 왜 저런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을까? 연극이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아이의 죽음에 목이 메이던 것도 생생하다. 단지 그 기억만으로도 마음이 흔들리는 영화인데 작가 역시 이 영화를 보고 키딩 선생처럼 되고자 교직 생활을 시작했단다. 과연 어떤 사람일까? 하는 의구심을 그의 시를 읽는 순간 더 이상의 질문도 필요없었다. 독자는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쓴 시를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진심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미사여구가 있어서 시의 가치가 오르는 것이 아니다. 난해하고 복잡한 은유를 통해 시의 단계를 높이는 것도 아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대상을 이해하고 자기화 했을 때의 진심이 가장 진정성 어린 시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교직 생활을 하면서 청소년들의 생활을 가까이 보고 그들의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기 위해 애썼던 키딩선생이었던 듯하다. 작품 곳곳에 아이들이 느꼈을 외로움과 그리움, 억눌리는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나서 나도 모르게 시를 읽다고 눈물을 흘리고 말았으니.. <연어> ...중략 부모님과 선생님의 말을 거슬러 거슬러 나는 누구인가의 알 왜 살아야 하는가의 알 무엇을 해야 하는가의 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알 자신의 존재감에 대해서 고민을 느끼는 시기는 청소년기가 가장 강할 때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기성세대의 말에 거스르는 경험을 해보지 않은 어른이 어디 있겠는가?그렇지만 묘하게도 어른이 되고 나면 다시 과거의 기성세대가 그러했듯 아이들의 감성을 무디게 바라보게 된다. <교복 두 벌> ... 헌 교복으 지난 학교 거 새 교복은 이번 학교 거 ..... 친구가 그리울 때면 헌 교복을 입어 본다 옷이 꼭 안아 주는 느낌 '힘내 우리들이 있잖아' 교복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친구들의 귓속말로 들린다 학장시절 아이들의 기억 속에 있는 가장 힘든 순간은 바로 전학이란다. 새 학교에서 새 친구를 사귀는 것은 상상 이상의 스트레스와 절망감, 외로움을 갖게 한다는데 이런 아이들의 외로움을 느끼게 해주는 시였다. 전학교의 교복을 입고 옛친구들을 생각하면서 위안을 받는 외로운 아이의 뒷모습이 상상된다. 아이의 외로운 교복 뒷태를 시인은 감지하고 있었나 보다. 나 역시 아이의 외로운 어깨에 살며시 위로의 손을 얹어주고 싶다. <이에는 이> 동민이는 욕쟁이다 .... 10초 줄 테니 네가 한 말 열 번 입력해서 문자로 보내라 하셨다. ...동민이 독수리보다 빠르게 12초 걸려 보냈다. 다 끝났나 싶었는데 선생님 받은 문자 동민이 아빠께 보낸다 하셨다. 안보내는 대신 동민이 2주동안 욕도 못하고 선생님께 충성하기로 했다 이 시를 읽는 순간 얼마나 웃었던지. 욕쟁이 학생을 가장 재치있게 손들게 한 선생님이 아닌가 싶다. 문자빨리치는 실력 뽐내고 욕도 원없이 했지만 결국 선생님 말에 고분고분해지게 되는 상황이 정말 재미나게 그려졌다. 아이들이 욕하면 대부분의 선생님들 화부터 내실텐데~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고 싶어진다. 이장근.. 중학교 교사가 되고 아이들과 시를 함께 지으면서 이제는 서로의 공감대를 형성해가는 작가가 너무나 부럽다. 그가 바라던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키딩같은 선생님이 되어가고 있는가 보다. 이 시집을 읽은 아이들은 '그래, 선생님 다워..'라고 진심으로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시를 매개로 아이들과 어른이 마음을 열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