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현재의 나를 바라본다] 10년 뒤의 나를 상상해 본다는 일이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일까? 과연 그럴까? 솔직히 난 그렇지 못했다. 무슨 시간인지는 모르겠지만 10년 뒤의 나를 상상하면서 미래를 설계하는 그런 시간을 가졌는데 막막했던 것 같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자유롭게 아주 크게 뻥 튀겨서 상상을 해도 뭐라하지 않는데도 미래를 상상한다는 것은 약간의 두려움과 막연함이 강하게 지배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과연 나는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결국 문제는 현재였다. 현재의 연속선상에 과거와 미래가 함께 만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를 생각하면서 추억에 젖고 후회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래에 대해서는 막연한 희망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막연함이 거대해지지 않는 것은 지금의 내가 현재에 있기 때문이다. 17살의 현재 예슬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27살인 10년 후의 자신을 만나게 된다. 미래의 나에 대한 환상과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17살의 오예슬은 실망하고 만다. 10년이라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멀리서도 미모와 날씬한 몸매로 기고만장하던 17살의 오예슬이 후덕해진 살집을 가지고 칼로리 계산없이 먹어대면서 모델이 아닌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는 27세의 오예슬로 변했으니 놀랄 수 밖에... 궁금했다. 과연 무엇이 예슬이를 변하게 했을까? "어디 넌 얼마나 자기 관리 잘 하며 사는지 보자"고 했던 뚱보 여인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살면서 닥칠 수 많은 시련 속에서 한결같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여인을 알았기에 자신의 외모만 믿고 뚱뚱한 사람을 향해 비난의 말을 날리던 17살의 예슬에게 그런 말을 했으리라. 10년동안 예슬에게는 분명 많은 변화가 있었다. 늘 자신감에 충만했었지만 많은 모델들 사이에서 알 수 없는 초조감에 자신의 못살게 굴면서 학대하듯 다이어트를 하고 점차 자신감을 잃어가고 결국에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하고싶어하던 일이 자신을 가장 힘들게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자신을 놓아버린 27살의 오예슬에게 17살의 현재 예슬은 어떤 말을 하고 싶었을까? 자신을 잡고 있으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까? 27살의 현재 오예슬은 과거의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고싶었을까? 남을 의식하고 자신을 못살게구는 것보다 자신의 삶을 더 사랑하고 아끼라고? 비록 조금은 살집이 삐집고 나오는 몸매지만 날씬함을 자랑하던 때보다 훨씬 당당하고 가슴 뿌듯한 워킹을 선보이는 27살의 오예슬의 마지막 모습이 생각난다. 도망치지 않고 드디어 자신을 당당하게 사랑하는 현재의 오예슬로 돌아왔으니 말이다. 17살의 오예슬과 27살의 오예슬이 교차하면서 서술하는 방식이 무척 재미있었다. 단 하나의 시선이 아닌 10년의 차이를 두고 변화된 두 사람의 시점에서 생각하고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왜 우리에게 10년이라는 간격을 두고 한 사람의 인생을 바라보게 했을까? 미래의 나를 위해 정진하고 과거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을 삶을 살라고? 결국 미래와 과거의 나를 온정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나는 현재의 나이다. 과거에 대한 동경과 후회,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희망,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현재의 내가 있다. 그러하기에 현재의 나를 바라보도록 하고자 한 것이아닐까? 흔들리는 자아를 발견하고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내딪는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조금은 유쾌하게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