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장애를 극복한 사람으로만 보지 말라] 어려서 헬렌켈러를 위인전에서 읽으면서 무척 감동을 받았었다. 어려서 보았던 헬렌켈러에 대한 기억은 40이 다 된 지금까지 남아있다. 기억속의 헬렌켈러는 설리번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장애를 극복한 위대한 여인이다. 그렇지만 장애를 극복한 여인이라는 한정된 수식어가 그동안 헬렌 켈러의 진정한 가치를 받아들이는데 커다란 장애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도 유명하고 익숙한 인물이기에 헬렌 켈러를 위인전으로 다시 읽는다는게 한편으로는 식상했다. 그러나 그것은 자만이었다. 어려서 기억하고 있던 헬렌은 얼마나 단편적이었는지 모른다. 권태선 작가는 헬렌 켈러를 장애를 극복한 사람으로만 한정한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차별받는 약자의 편에 섰던 사람임을 부각시켰다. 사회의 주류가 아닌 소수의 사람들은 모두 사회적인 약자이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 뿐만 아니라 여자도 투표권조차 갖지 못했던 사회적 약자였다. 헬렌은 자신의 장애를 극복한 위대한 사람임과 동시에 그녀의 일생을 사회적 약자를 위한 대변인으로 살았던 사람이다. 그리고 그녀의 인생 중심에는 사람들과 헬렌의 다리 역할을 했던 설리번이라는 위대한 스승이 있었던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몰랐던 헬렌의 생애를 엿보면서 그녀가 넘어서야 했던 사회적 인식의 벽과 장애의 벽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처음 그녀가 사물의 단어를 인지해가고 소리를 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결국 그 부단한 노력 때문에 비장애인들이 내는 평범한 음성을 내는데 실패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마음이 아팠던 것은 어린 헬렌이 교장 선생님을 위해서 지었던 이야기 한 편을 둘러싸고 벌어진 진실공방이었다. 11살 헬렌이 교장 선생님의 생일 선물로 자신이 지은 <서리 왕>이 마거릿 캔비가 쓴 <서리 요정들>의 이야기와 너무나 흡사하다는 것이다. 과연 헬렌이 표절을 했는가 안했는가에 맞춰진 진실공방. 결국 헬렌이 <서리 요정들>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지만 어린 소녀가 표절이라는 것도 모르고 지었을 자신의 창작 세계를 무참히 짖밟히고 마는 결론에 이른다. 평범하지 않은 유명인이었기에 오히려 장애인으로 무시받을까 도리어 헬렌을 다그치는 또 하나의 세계를 보면서 헬렌이 감당했어야 할 삶의 무게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무거웠을거라는 짐작을 해본다. 자신의 건강보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달려가 연설을 해주고 (물론 모든 순간에 설리번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가) 끝없이 공부하는 모습 속에서 삶의 약자들 편에 서려고 했고 자신의 삶을 늘 채찍질하면서 깨어있으려고 했던 그녀의 삶에 경외감이 든다. 헬렌은 단순히 장애를 극복한 사람으로 수식되어지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사람이다. 그녀가 들려주고자 했던 소외된 사람의 편에서 그녀를 다시 생각한다면 그녀의 삶을 한층 소중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