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일의 겨울 사거리의 거북이 10
자비에 로랑 쁘띠 지음, 김동찬 옮김 / 청어람주니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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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너무 바쁜 집안 사정때문에 방학 내내 시골에서 지낸 적이 많았다. 방학식과 더불어 시골로 보내지는 버스 안에서 가족들과 헤어지기 싫어서 징징거리렸지만 막상 시골에서 하루이틀 지내다 보면 어느새 그곳 생활에 자연스럽게 동화되었다.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동안 시골에서 지내다가 서울에 돌아오면 가족들을 새까맣게 변한 내 모습을 보고는 "시골아이 다 됐네.."라며 웃어댔고 난 그런 가족이 조금은 서먹서먹했다. 단 한달의 시간인데도 어린 내 마음에는시골에서 들로 산으로 아이들과 뛰어놀던 자유롭던 기억이 사그라드는데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153일의 겨울...달 수로 세어보니 다섯 달 정도 되는 날들이다. 적지 않는 날들을 가족과 헤어져 있어야 하는 갈샨. 게다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괴팍한 노인네로 불리는 친할아버지와 지내야 한다니 아마도 죽기보다 싫었을 것이다. 갈샨의 의사와는 달리 아타스(할아버지) 바이타르와 지내야 했을 때 과연 이들의 일상이 어떻게 채워질까 불안하기 그지 없었다. 갈샨이 할아버지와 보내는 153의 날들은 문명사회에 길들여진 우리들이 생각지도 못한 일들로 채워진다. 이 글의 배경이 되는 몽골의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문명사회와는 동떨어진 바이타르의 생활을 엿보는 것 또한 생소한 경험이었다.

 

적대감을 갖고 있었던 갈샨을 향해 바이타르는 친절함 대신 그만이 지니고 있는 묵뚝뚝함으로 일관한다. 읽고 쓰는 것을 깨우쳐준 학교의 가르침보다 더 중요한 것을 아직 배우지 못했다고 하면서 그는 몽골의 자연 속에서 자연을 알아보고 순응하고 적응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말을 타고 경주를 하기도 하고 검독수리를 길들이기도 한다. 특히 검독수리를 사냥해서 갈샨의 독수리로 길들이는 과정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유창하고 구구절절한 언어 대신 무언의 눈빛과 숨결을 통해서 갈샨이 검독수리를 길들이도록 도와주는 바이타르의 모습에서 문명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자연과 소통하는 신비로움을 가르쳐주는 듯했다. 갈샨도 그것을 느꼈을까? 자신만의 검독수리 쿠다야 어른신을 갖게 되고 바이타르를 미친 늙은이가 아닌 아타스(할아버지)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글을 모르는 바이타르를 위해서 밤마다 <노인과 바다>를 읽어준다. 손녀 갈샨이 읽어주는 <노인과 바다>를 통해서 바이타르 역시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바다를 담은 또 하나의 자연과 인생을 경험하게 된다.

 

굶주린 늑대를 대항해 자신의 양들을 지켜나가려고 사투를 벌이는 바이타르와 그런 할아버지를 보면서 이제껏 자신이 느끼지 못했던 또 다른 삶의 모습을 보면서 갈샨은 많이 성장하게 된다. 153일이 지난 후 집으로 돌아온 갈샨은 더 이상 과거의 갈샨이 아니다. 자신의 땅과 가축을 지키며 살겠다고 몽골 평원에 남겨진 바이타르를 통해서 삶의 더 큰 의미를 배우게 되었을 것이다.

 

사실 작품을 처음 대하면서는 몽골이라는 낯선 배경과 시대를 가늠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작품을 읽는데 방해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디든 인간이 공유하는 감정은 있는가 보다. 문명과 동떨어진 몽골의 평원에서 바이타르가 갈샨에게 가르쳐주는 삶의 방식을 엿보면서 순수하고 진한 삶의 감동을 얻게 되니 말이다. 너무도 빠르게 편하게 변해가는 현대 사회에서 가끔 우리는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지혜와 사람 자체가 주는 감동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이 작품은 편리함만 추구하고 너무도 빠른 템포로 지내는 문명사회의 사람들에게 삶의 쉼표를 건네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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