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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 - 서양과 조선의 만남
박천홍 지음 / 현실문화 / 2008년 7월
평점 :
[기형적인 근대의 출발? 악령의 이양선?]
조선의 근대화 문이 열리기 시작한 때를 생각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발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 힘들 것이다. 조선의 근대화 문은 사대주의와 중화사상에 절어있던 당시 지배층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밀려드는 서구열강과 일제 세력에 의해 강압적으로 열렸음을 알기에 그렇다.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정말 제목한번 강렬하다. 조선의 앞바다라는 그 말과 악령이라는 말이 절로 서구의 이양선을 떠올리게 한다. 말처럼 이 책은 조선의 근대화와 연관된 이양선의 출현과 그에 대한 조선의 반응과 서양의 반응을 한꺼번에 접할 수 있는 책이다.
16세기부터 1860년대 초까지 조선 앞바다에 나타난 서양 이양선은 조선에 있어서는 원치않는 무대에 나타난 불청객이라고 표현된다. 그도 그럴 것이 가장 거부하게 되는 원인은 천주교라는 종교와도 무관하지 않다. 조선을 강렬하게 지배하고 있던 유교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이 충과 효이다. 충이 임금에 대한 신하로써의 충성이라면 효는 대부분의 양반가에서 중시하는 조상에 대한 섬김 그리고 제례와도 통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서양 이양선에 대한 거부감은 후에는 천주교 박해라는 커다란 맥과도 상통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처음부터 우리가 서양 이양선에 대해서 배타적인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조선은 표류선(대부분 외국 선박)에 대해서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대했다고 한다. 무조건 서양 이양선이라고 해서 배척하지 않고 유원지의라는 성리학의 가르침에 따라 먼 곳에 사는 백성이나 먼 곳에 있는 나라에 대한 배려였던 것 같다. 1808년 <만기요람>이라는 책에는 표류인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까지 언급되어 있따고 한다. 악천후나 여러가지 이유로 표류하게 되는 배와 사람에 대해서는 이렇듯 관대하지만 측량이나 통상, 선교등을 요구하는 외국선박에 대해서는 아주 강경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는 중국의 요구가 있었다기 보다는 중국의 외국 선박에 대한 외교권에 대한 압력과는 무관하게 아편으로 서구열강에 점차 침식되어가는 중국을 바라보며 오히려 소중화사상을 지속하고자 했던 폐쇄적인 당시의 지배층의 생각 때문이었다고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나도 어느정도 이 부분에는 동감한다. 그러나 처음 서양 이양선이 나타났을 때와 그 수가 빈번해지고 강력해지는 18세기 말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고 생각된다. 처음에는 탐사적인 면이 강했다면 나중에는 의도적인 도발이 더 강했고 그런 차이를 지배층에서도 어느정도 감지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대처하는 면에서 일방적인 쇄국이 옳지 않다는 생각에는 동감하지만.
조선의 앞바다와 악령이라고 지칭되는 서양이양선. 이 둘의 관계는 조선의 기형적인 근대화와 우리 나라의 근대 기원이라는 측명에서 살펴볼 수 있는 이야기였다. 저자의 주관적인 시각이 담겨있어 옳고 그름을 판가름하기 보다는 알지 못했던 당시의 상황이나 문헌을 살필 수 있고 조선이나 성야에서 서로의 눈에 비친 사람을 표현한 그림을 살펴보는데 흥미로움이 있었다. 처음에는 분량에 압도되어 언제 읽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막상 책을 잡으면 지루하지 않게 조선의 근대사와 바다, 서양 이양선의 관계에 빠져들게 된다. 마지막 서양인들에 의해 기술된 조선의 두 얼굴이라는 표현이 깊게 남는다. 조선에는 두 얼굴이 있는데 권력이 높아질수록 타자를 강경하고 거칠게 대하고 그렇지 않을수록 호의적이고 격의가 없다는...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말이다. 대부분의 결정은 윗선에서 이루어지지만 결국 변화라는 것은 아래에서부터 서서히 밀려온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