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지다 - 강요배가 그린 제주 4.3
강요배 지음, 김종민 증언 정리 / 보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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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정치적 항쟁이나 의거라고 불리우는 수많은 일들을 보면 어느 하나 민중의 힘이 보태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행해지는 집단 행동에는 그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 그런데 그 이유라는 것을 가만히 살펴보면  정치적인 거대하고 복잡한 명목은 몇사람의 선동자에 의해서 명명지어질 뿐 대다수의 사람들은 정치적 이념이 아닌 현실적인 삶의 이유로 항거하게 된다.

현재보다 조금만 더 나은 삶을 꿈꾸면서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항거를 한 이름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나 역시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어 가슴에 멍이 들 때가 많다.

[동백꽃 지다..]제목만으로도 붉은 동백꽃 한 잎 한 잎이 떨어지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선혈이 뿌려졌을까 생각해게 만든다. 강요배라는 인물도 내게는 익숙하지 않고 제주의 4.3항쟁이라는 것도 역사적인 한 사건으로만 기억될 뿐이었다. 굳이 가슴 속에 비장함을 품고 있지 않더라도 뚜렷한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고 강요배가 그린 제주의 4.3사건에 대한 그림을 보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울음을 멈출 수가 없다.

생생한 34명의 증언을 통해서 그려진 그림들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절규이면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남로당이 주동이 되었다고는 하나 참여한 대다수의 사람이 이념을 떠나서 조금만 더 나은 삶을 꿈꾸었던 이들에게 현실은 너무도 가혹했다. 익명의 섬처럼 제주도라는 섬에 갇혀 많은 살상으로 얼룩진 이들의 모습은 곳곳에 베어 있다. 젖먹이를 엎고 총에 맞은 여인네는 숨을 거두고 관통한 총알에 아이는 어깨쭉지를 날려버리는가 하면, 죽은 어미의 빈젖을 물고 이내 떨어질 줄 모르는 아이, 이승과 저승의 한 가운데 놓인 마냥 넋이 나간 모습으로 쳐다보는 여인네, 새벽을 가르는 총소리와 화염에 뒤덮인 아비규환에서 목놓아 울면서 정신없이 도망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천명'에서는 그 암울한 핏빗의 어두운 하늘에 가슴이 무너지는 듯하다.

책의 후반에 실린 제주도의 4.3희생자 지도를 보면 이때의 희생은 어디 한곳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제주도라는 섬의 전역에서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그 때의 이들에게 피할 곳은 바다 이외에는 어디에도 없었을 것이다. 아름다운 섬 제주도의 이국적인 정취를 느끼기 전에 땅속에 묻힌 수많은 혼령들의 흙노래를 생각하지 못하는 지금의 우리들은 분명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 멀지도 않은 우리의 과거를 통해서 지금도 억울하고 비참했던그 날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차가운 흙속에서 암울하게 묻혀있는 영혼을 어루만져주고 싶은 것이 현재에 서 있는 한 사람의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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