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성국 발해 주춧돌 2
이이화 지음, 김태현 그림 / 사파리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발해는 우리 민족에게만 존재한다]
 
언어세상의 주춧돌 시리즈를 즐겨보고 있던 터에 마침 아직 읽지 못한 발해 부분을 접하게 되어 무척 기대가 컸다. 역사...역사는 그렇다. 모든 것이 승자와 강자에 의해 기술되기 때문에 편중되는 무언의 압력과 사라진 기록에 대한 아쉬움이 함께 한다. 삼국의 통일을 내세우는 신라에 의해서 기록되어지는 우리의 역사는 고구려나 백제에 대한 기록도 많은 부분 훼손되거나 손상됨이 적지 않고 발해에 대한 부분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전에 백제를 말하던 한 학자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백제라는 거인의 아주 일부일 뿐이라고 했는데.. 긴 역사는 아니지만 광활한 영토를 누비던 발해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것은 거인의 옷자락 정도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이화라는 지명도 높은 역사학자를 따라서  발해의 자취를 따라가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의 역사이기는 한데 우리에게는 없는 역사라니 참 아이러니하다. 우리의 역사에서 발해에 대한 기록을 찾으면서 신라는 아니더라도 고려에서는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고구려가 멸망하고 고구려 유민들에 의해 세워진 나라가 바로 발해였고 고려 역시 고구려를 이어받는 정통성을 말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고려 어디에도 고구려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조선에서는 어떤가? 조선에서도 전기가 아닌 후기 북학자 유득공이 지은 [발해고]에서 발해에 대한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그의 발해고 전문을 읽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북쪽의 우리 역사에 대한 무지함과 무관심에 대해 꾸짖으며 발해가 공존한 남북극시대를 논한다.
 
우리가  배웠던 국사시간의 역사에는 통일신라시대라는 명칭이 훨씬 더 많이 쓰였다. 통일 신라로만 우리 역사를 한정할 것인지 아니면 고구려 유민이 주축이 되었으나 많은 말갈족을 거느렸던 발해사까지 함께 보는 남북극시대로 역사를 논할 것인지는 좀더 적극성을 띄고 역사 교육에 거론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우리 나라에는 자료가 너무도 빈약해-실은 전무해서 중국의 사서에 나온 기록에 의존해서 더듬어 가는 발해사는 더듬어지는 자취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역사가 되어가는 것 같다. 불과 10년 전만해도 의지가 있었으면 언제든 날아가서 발해의 영토였음직한 산성이나 무덤, 궁궐터를 연구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의해 발해사는 이미 중국변방의 한 역사로 귀속되어가고 심지어 우리 고구려사도 그렇게 변질되어간다. 한국인의 역사탐방을 반가워하지 않는 중국측에 의해서 이제는 중국에 있는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은 손대기 어려워져서 정말 안타깝다..
 
책을 읽으면서 발해의 생성과 성장 ,그리고 붕괴까지의 역사를 알아가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가장 현실에서 우리가 고민해야하는 역사적 입장에서 생각이 자꾸 머물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알게된 발해 3대 문왕의 두 딸 정혜공주와 정효공주의 무덤에 관심이 갔다. 두 공주의 무덤은 정확한 묘비석을 통해서 발해의 문화와 역사를 추정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자료라고 한다. 문왕의 둘째 딸인 정혜공주의 무덤은 고구려 후기의 돌방무덤 형식을 따랐고 넷째인 정효공주는 세월이 흘러 중국당의 무덤양식을 많이 수용해서 고구려와 중국의 혼합된 양식을 따랐다고 한다. 특히 무덤 양식과 벽화를 비롯해 많은 자료를 남긴 정효공주의 무덤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어 많은 자료를 찾아보기도 하였다.
 
한 권의 책이 시발점이 되어서 잊혀졌던 혹은 잊고 지냈던 우리 역사의 한 자락을 다시 더듬어 볼 수 있었기에 정말 만족스러웠다. 앎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내 아이들이 지속해서 우리 역사에 관심을 갖고 내것으로 할 때, 그 때 함부로 남의 역사를 왜곡시킬 수 없는 내공이 쌓이게 되리라 생각한다. 알아가자..그리고 지켜가자..그것이 발해사를 보면서 지속적으로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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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한 홈스쿨링을 위해  우선 발해에 대한 유적지를 담은 자료를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두루 수집해 보는 작업을 했다. 그러면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중국여행을 통해서 개인들이 남긴 자료나 학자의 자료들을 조금씩 얻을 수 있었다. 조사하면서 느낀 점은 발해나 고구려 등 우리나라 북방의 역사에 대해서는 우리보다는 북한에서 훨씬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수용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발해를 인식하면서 남북극시대를 말하기 시작한 1980년대보다 훨씬 전에 북에서는 통일신라시대가 아닌 남북극시대를 사용했으니 말이다.




표지에는 발해 전성기의 지도와 조선후기 발해에 대해서 언급했던 북학자 유득공의 [발해고]의 일부를 담아 고구려를 이어받은 우리역사의 한 부분으로 발해를 논하는 부분을 실어보았다.
 
 





발해 3대 문왕의 둘째 정혜공주와 넷째 정효공주의 무덤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두 무덤이 발해사 연구에 큰 의미를 갖는 것은 기록이 남아있는 묘지석 덕분이다. 기록이 있고 없음에 따라서 남겨진 유산으로 역사를 추적하는데는 상당한 영향력을 주기 때문이다.
 
정효공주의 무덤은 대부분 발해 무덤에서 보여주는 고구려 후기의 돌방무덤 형태가 아니라 당의 영향도 함께 받은 무덤 형태였다. 두 공주가 약 20년의 시간차를 보이는데 그 동안 발해 역시 중국의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된다. 공주의 무덤에는 고구려 벽화에서 보이는 벽화가 발견되었는데 당시 발해의 문화를 추론하는 소중한 자료가 된다. 벽화 속의 12사람인 과연 남자인가?여자인가?에 대한 논란도 흥미롭다. 남장을 한 여장이라는 설이 강한 편이라고 한다.
 
발해 무덤의 독특함은 무덤 위에 있는 탑에서도 찾을 수 있다. 탑이라고 하면 절에만 세우는 것으로 아는데 발해에서는 무덤 위에도 이런 탑을 세웠다고 한다.
 
무덤 외에 발해가 진나라고 세워진 최초의 건국장소인 동모산, 정혜공주의 무덤이 나온 육정산, 이외에 다른 산성들을 담은 자료를 모아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꼭 집고 넘어가야 할 한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발해사를 바라보는 주변국가들의 시선이다.
남북한과 일본, 러시아, 중국은 과연 발해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우리나라를 제외한 모든 곳은 발해의 민족은 말갈로 본다. 우리나라만 고구려 후예 혹은 지배층은 고구려인 피지배층은 말갈이라고 본다.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하고자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 나라 뿐이라니...
 
국가체제를 보면 우리나라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로 고구려 문화외에 당의 문화도 받아들인 것으로 보나 중국은 당나라 관할지방으로 당문화를 띤다고 보고 러시아는 당나라 문화와 주변문화가 형성되었다고 본다. 일본은 한 술 더 떠서 말갈이 건국하고 일본에 조공을 바친 나라라고 한다. 물론 최근에는 바뀌었지만 말이다.
 
약하다..고개를 돌린다..싶으면 어느새 역사는 우리 것이 아닌 남의 것이 되고 조작되고 변질된다. 우리는 그동안 국사 교과서와 일본의 국정교과서 등을 통해서 경험한 바있다. 다시 또 한번 우리 후손들에게 변질된 역사를 안겨줄 것인가 말것인가는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몫으로 남게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설픈 자료모음이지만 하나 만들어서 아이의 거실의 한 구석에 놓고 오며가며 아이와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자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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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석 2011-06-21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멋지십니다! 발해는 우리의 역사입니다 ^ㅡ^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