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왕부루 1 책읽는 가족 35
박윤규 지음, 이선주 그림 / 푸른책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포효하는 백두대간의 울림]

 

어두운 밤하늘 달빛 아래에서 용맹있는 기상으로 쳐다보고 있는 호랑이 한 마리. 책 속의 주인공이 바로 이 호랑이였다. 그것도 고조선의 2대왕 이름과 똑같은 부루라니. 다소 당황하면서 책의 처음을 읽어나가던 독자들도 약간의 시간만 책읽기에 투자를 한다면 금세 주인공이 호랑이라는 사실을 잊은채 책속의 부루에게 빨려들어가게 된다.

 

이 책은 지리산 동물 세계에서 산왕인 호랑이 고시리가 죽고 나서 그의 아들 부루가 산왕의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그러나 단순한 동물의 왕위 쟁탈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 않다. 빨간 토끼 눈을 보고도 겁을 먹고 도망치는 부루, 작은 동물 하나 헤치지 못하던 부루가 어떻게 용맹성을 되찾고 백두에서 한라까지 백두대간의 정기를 이어가면서 산왕으로 거듭나는지 그 과정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작가는 서문에서 자신이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를 외국의 애니메이션 '라이온킹'에서 찾는다. 우리 아이들이 서양의 호랑이를 보고 [햄릿]의 풀롯을 빌어 삼촌과의 싸움에서 왕이 되는 애매모호한 과정을 보는 것에 얼마나 답답함을 느꼈을까? 이쁘고 귀여운 마스코트로써의 호랑이가 아니라 백두대간의 정기를 담고 있는 이 땅 호랑이의 기상을 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알 수 있다. 

 

동물 세계에서도 산왕이 되고자 하는 동물들간의 싸움, 그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약한 짐승들의 모습은 사람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그 가운데서 어부지리나 우연함이 아니라 자신의 나약함을 극복하고 산왕으로써의 면모를 찾아가는 부루의 이야기는 어찌보면 우리가 잊고 있던 포효하는 호랑이 형상의 이 땅이 주는 기운을 다시금 생각하게 할 수도 있다.

 

산왕이었던 고시리의 말 속에서 일제가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서 호랑이 형상을 한 땅에 말뚝을 박고 결국에서 호랑이의 몸통에 쇠가시를 감은 꼴이 된 3.8선의 이야기를 할 때는 가슴 한 구석이 쿵 무너지는 느낌도 든다. 그 막힌 쇠가시 사이로 힘든 것은 인간 뿐 아니라 땅에 발을 디디고 사는 모든 짐승도 매한가지지만 결국 그 쇠가시줄을 풀어야 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라는 고시리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아버지인 고시리의 죽음 후 부루는 인간의 자리가 아닌 동물의 자리에서 자신의 산왕으로써의 위엄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부루의 성장과정을 보면서  우리 민족의 정기를 찾아가는 듯한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부루는 바로 우리를 대변하는 또 하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예사롭지 않게 등장하는 동물들과 이들의 이름, 낯설지만 최대한 우리 것으로 표현하려고 했던 명칭들- 쇠가시줄, 시나브로 등-은 우리 것에 대한 색채를 많이 유지하고자 한 작가의 의도였고 충분히 작품의 맛을 우리것으로 살리는 한 요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조금만 단련해서 맛서 싸우는 라이온 킹과는 달리 바다를 건너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의 여정을 택한 부루는 분명 다르다. 이 작품을 읽고 그렇게 말하지 않을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애매모호한 서양 작품에 빠져 있는 아이들에게 가끔은 우리 것의 정서가 물씬 풍기는 이런 책을 떡 하니 안기고 "아마 안읽고는 못배길 것이다"하고 자신있게 미소짓고 싶다. 한 번 잡으면 이야기 끝을 보고야 말 정도로 재미를 갖추면서도 분명 부루의 성장하는 과정에서 포효하는 백두대간의 정기를 느끼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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