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피의 다락방
베치 바이어스 지음, 김재영 옮김, 오승민 그림 / 사계절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책표지에는 아주 우울한 표정의 한 소년이 자신만의 공간에서 무한정 만화를 그려대고 있다. 그 표정의 우울함에 [앨피의 다락방]의 이미지가 결코 낭만적이고 경쾌한 다락방이 아닐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책장을 한 장씩 넘기면서 예전에 보았던 영화 한 편이 자꾸 어른거렸다.  제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거대한 체구의 엄마와 자폐증 동생을 돌보는 남자 아이가 주인공이었던 영화..마지막에 엄마의 장례식을 치루고 여행을 하는 여자 친구를 따라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로 끝맺음을 하던 영화였다. 그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소통없이 지내는 가족간의 불엽화음이 내내 극을 이끌었는데...

[앨피의 다락방]을 읽으면서도 가족 간에 이어지지 않고 교류되지 않는 소통의 문제에 집중될 수 밖에 없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가장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우린 너무 잘 알고 있다.너무도 편하고 가깝기 때문에 남들에게 지킬 수 있는 예의도 최소한의 배려도 쉽게 무시되어지기 쉬운 것이 또한 가족이다. 앨피의 식구들간의 대화 속에서는 행복함 ,화기애애함을 찾아 보기 힘들다. 생활에 찌들려 살면서 큰아들 부버의 부재로 자신의 인생에서 즐거움은 사라졌다고 말하는 엄마, 그런 엄마의 곁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상실하고 사는 앨피, 지난 날의 폐차장 생활을 그리워 하면서 자신의 늙음에 기대어 사는 외할아버지..이들 식구들은 나름의 외로움과 아픔이 있지만 이 상처를 서로 보듬어주는 힘이 부족하다. 서로의 상처에 다시 상채기를 내는 말과 무관심이 이들이 안고 있는 답답함의 모든 이유였다.  자신을 인정해주고 받아들여 주는 사람이 없을 때 성장하는 아이들은 자신만의 세계를 그리게 된다. 앨피는 그 공간으로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다락방을 택했다. 앨피의 다락방은 꿈을 그릴 수 있는 비밀스러운 공간이라는 기본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무게가 너무 무겁다. 희망적인 꿈이라기 보다는 도피의 장소로 택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 다락방에서 앨피는 만화를 그린다.  그리는 만화는 자신의 또 하나의 이면이지만 그 누구에게도 보여지지 않는 마음의 표현이다. 그렇지만 그렇게라도 앨피는 다락방이라는 공간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다락방을 돌아오는 부버형에게 내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앨피는 자신의 세계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다락방을 사수하기 위한 작은 항거를 시작해야 했다. 단지 다락방에서 나오지 않는 작은 시위로 말이다. 그런데 실상 책 속에는 부버형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가족의 불행의 원천인 듯한 부버는 가족의 대화 속에서 등장하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지만 그들의 문제는 모두 부버에게서 비롯되어졌다. 결국 부버가 오지 않는다는 연락으로 어이없게 앨피는 다락방을 사수하는데 성공했지만 실상 앨피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지만 이 작은 사건을 계기로 가족들은 자신이 담고 있던 마음의 빗장을 하나씩 푸르고 소통의 장으로 나서는데 한 걸을씩 내딪는 계기가 되었다. 자신이 그린 만화를 들고 다락방을 나서는 앨피를 통해서 분명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책에서 가장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역시 가족간의 이해와 소통에 대한 문제인 것 같다. 가족은 사회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자신의 성장이 이루어지는  기본적인 공간이다. 그 공간 안에서의 소통의 단절은 결국 사회와의 단절로 가는 길도 많다. 앨피의 다락방을 보면서 부버라는 한 가족 구성원으로 인해서 잘못된 가족관계가 형성되고 수많은 갈등이 풀리지 않는 과정을 보면서도 역시 해결은 그 구성원 안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대화로 풀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싸우든 이해를 하든 우선을 표현이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에는 그 표현의 핵심에 안테나를 잘 맞추어야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앨피의 우울한 다락방이 몇 년 뒤에는 조금은 밝은 공간으로 자신의 만화를  표현하는 곳이 되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본다. 아니 분명 그렇게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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