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담 클래식 7번째 작품은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포함한 3편의 단편선이다. 세 번째 만나는 변신인데, 주 내용은 같지만 역시 번역자에 따라 작품의 맛이 다른 것 같다. 올해가 변신이 출간된 지 110주년 되는 해라고 하니, 그런 면에서 더 뜻깊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 같이 수록된 화부와 선고는 이번에 처음 만나는 작품이었다. 그중 선고에는 "프란츠 카프카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있어서 더 궁금했다. 이게 무슨 뜻일까? 싶었는데, 책의 말미에 해설을 통해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이 3편의 단편소설집을 한 권으로 펴내면서 프란츠 카프카가 붙인 제목은 "아들"이었다고 한다. (실제로는 그렇게 펴내지 못했지만 말이다. 한국에서 역자에 의해 한 권이 되었으니 소원은 풀었겠다 싶었는데, 역자가 그런 작가의 의도를 알아서 이 작품을 한 권으로 묶었다는 사실!) 세 작품을 다 읽고 나니, 이 세 작품의 공통점이 "아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이었다. 화부의 카를, 선고의 게오르크, 변신의 그레고르가 그 주인공이다. 서평을 쓰다 보니 또 하나의 공통점을 찾았는데, 세 작품 모두 제목이 두 글자라는 것?!
처음 등장한 화부는 우선 그 제목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나중에 찾아보니 화부(火夫)는 난로나 보일러 등의 불을 때는 일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이 작품 속에서는 선원 중 한 사람이다. 미국행 배를 탄 카를 로스만은 차별을 받고 일하는 화부에게 마음이 쓰인다. 화부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는 카를. 선장을 찾아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 화부를 두둔하는 이야기를 하지만 생각보다 그의 말을 힘이 없었다. 오히려 누명과 오명까지 쓰는 화부는 마치 그 일을 저지른 게 화부 일 수밖에 없다는 취급까지 당하지만, 카를을 제외하고 누구도 그런 화부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
카를의 이야기 도중 한 남자가 등장한다. 야콥이라는 이름의 이 남자는 순식간의 분위기는 반전시킨다. (나 역시 앞에는 좀 지루한 감이 있었는데, 이 부분부터 흥미로워지긴 했다.) 그 남자는 자신의 조카 이야기를 꺼낸다. 자신의 조카가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는데, 그녀가 임신을 한 것이다. (사실 가정부가 조카를 노골적으로 유혹했다는 이야기도 꺼낸다.) 조카의 부모는 조카를 미국으로 보냈고, 가정부는 아들을 낳는다. 이 사실을 외삼촌인 야콥이 알게 된 것은 (의외로) 가정부의 편지를 받아서였다. 그리고 그 조카는 바로 카를이었다.
화부가 당하는 일을 보고, 왜 카를은 마음이 쓰였던 것일까? 자신도 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상원 의원인 야콥이 자신의 조카 카를의 말을 막으며 그의 이야기를 했기에 결국 이들은 보트를 타고 배에서 내릴 수 있는 특권(?)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 일은 결국 카를이 더 이상 화부의 편을 들 수 없이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기도 한다.
세 편의 작품 중 가장 짧은 선고에도 아들 게오르크가 등장한다. 친구와 편지를 보내는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친구와 게오르크는 자신의 약혼 소식을 친구에게는 전하지 않는다. 서로 상처받을까 봐 걱정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소식이지만, 이 사실을 듣고 자신의 친구가 의기소침할 가봐다.) 사실 반전 아닌 반전은 게오르크의 아버지에게 있는데, 친구의 편지를 받고 이제는 자신의 약혼을 털어놔야 할 것 같다는 고민에 오랜만에 아버지에게 의논을 하러 간 것이었는데, 병약했던 아버지의 반응이 가히 폭발적이었다.
아버지의 반응과 그의 선고에 게오르크가 한 행동이 의아했는데, 어쩌면 그랬기에 그는 늘 눌려있고 친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대놓고 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부제로 붙어있던 제목의 의미는 해설에서 만나볼 수 있으니 작품을 깊이 감상한 후에 꼭 해설을 읽어보도록 하자.
책 속에 등장하는 세 아들은 자신의 뜻을 온전히 펼치지 못하는 안타까운 모습들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이 작품의 표제작인 변신 속의 주인공인 그레고리가 제일 안타까웠던 것 같다. 처음 읽었을 때 보다 그의 상황을 이해하는 폭이 더 넓어진 것은 그 사이 내 인생의 경험이 조금이나마 쌓여서일까? 보통 우리의 경우 자녀보다는 부모의 희생이 큰데, 이 작품 속에서는 아들 그레고리가 모든 가족을 먹여살리는 가장의 역할을 했었다. 하지만 가족 누구도 그런 그레고리에게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는다. 마치 호의가 계속되면 그것이 권리인 줄 착각하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레고리에게 미안하지만, 그의 희생(벌레로 변한)이 가족들을 밖으로 내몰게 된 계기가 되긴 했지만 역시나 희생자는 그레고리라는 사실이 참 씁쓸했다. 이 비슷한 장면을 얼마 전 마주한 적이 있었는데, 그래서 다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도 같다.
변신을 세 번째 읽으니 조금 더 선명하게 메시지가 와닿는다. 처음 만난 선고와 화부 역시 예상치 못한 감정선들을 발견하게 되었던 시간이었다. 다음 소담 클래식의 고전 작품은 무엇일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