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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오브 도어즈
개러스 브라운 지음, 심연희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10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떤 문이든 모든 문이 된다. 어린시절 참 많은 상상을 했던 것 같다. 내가 읽던 동화 속 세계에 들어가 공주도 되보고 싶었고, 탐나는 보석들을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조금만 크면 알게 된다. 그 모든 것은 동화 속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성인이 되고 나서 한번씩 내게 초능력이 있다면, 내가 원하는 장소로 순간이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만원 지하철에 끼어탔을 때,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 아이가 아프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너무 피곤한 월요일 아침이면 매일 같이 드는 생각이다. 그렇게 어린시절 내 상상력은 지극히 실 생활에 필요한 정도의 선 안에서만 펼쳐지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잠시나마 나 또한 주인공 캐시 처럼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다. 정말 내 손에 문의 책이 있다면 나는 어디를 가장 먼저 떠올릴까? 상상만 해도 괜시리 기분이 좋아진다.
뉴욕 어퍼 이스트사이드에 있는 서점 컬너북스의 직원 캐시는 단골손님인 존 웨버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웨버 씨는 늘 옷을 단정히 차려입고 늦은 시간 와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책을 읽는다. 그는 지금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읽고 있다. 오래 전 읽었던 책을 다시 읽어도 그때마다 새로운 느낌이라는 사실을 잘 아는 웨버 씨이기에 그 익숙한 감정에 머무는 것을 좋아한다. 눈보라가 치는 날이었던 지라, 바깥을 돌아보는 사이 그렇게 웨버 씨는 조용히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은 캐시에게도 꽤 큰 충격이었다. 경찰과 구급차에 웨버 씨를 인계한 캐시. 가게를 정리하다 웨버 씨 자리에 두고 간 두 권의 책을 보게 된다. 그 중 한권은 웨버 씨가 죽기 전에 읽었던 몬테크리스토 백작이고 또 한권은 가죽으로 쌓인 작은 책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이건 문의 책이다.
손에 들고 있으면 어느 문이든 모든 문이 된다.
라는 글이 쓰여있었다. 또한 이 책을 캐시에게 준다는 웨버 씨의 편지도 담겨있었다. 이게 무슨 뜻인 지 언뜻 이해가 되지 않은 캐시. 룸메이트인 친구 이지와 함께 웨버 씨 이야기를 하면서 책을 꺼낸다. 과거 여행을 갔던 베네치아 이야기를 나누던 둘. 갑자기 캐시의 눈 앞에 참 좋았던 베네치아의 광경이 펼쳐진다. 그렇게 캐시와 이지는 문의 책의 사용법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지는 이 책의 대단한 능력에 걱정이 앞선다. 캐시 같이 선량한 사람에 손에 이 책이 있으니 망정이지, 나쁜 마음을 먹고 악용하는 사람 손에 들어갔으면 어쩔 뻔했냐는 내용이다. 이 말은 꼭 복선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의외로 세상에는 많은 특별한 책들이 있었다. 문의 책 뿐 아니라 환상의 책, 그림자의 책, 행운의 책, 치유의 책... 그 마다의 쓰임이 있기에 이 책들은 누군가의 손에 들려있다. 문제는 앞에서 말했듯 책의 능력을 노리고 소위 사냥을 하는 책 사냥꾼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캐시에게 문의 책이 있다는 사실을 들은 책사냥꾼은 그녀를 쫓기 시작한다. 그들에게는 단지 책을 소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것 조차 아무렇지 않았다.
다양한 책 만큼이나 숨가쁘게 추격전이 벌어지기도 하고,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사실 처음에는 모두가 다 의심스러웠다. 이 사람이 정말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는 건가를 자꾸 의심하게 되기도 했다. 왜 하필 웨버 씨는 캐시에게 이 책을 준 것인지도 무척 궁금했다. 물론 끝까지 읽어야 그 모든 비밀과 진실이 풀린다는 사실.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곱씹을 수 있었던 캐시에게 문의 책은 꼭 필요한 책이 아니었나 싶다. 뻔한 이야기일 지 모르겠지만, 이 부분을 읽으며 괜시리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그리움의 깊이와 감정이 내게도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신비한 여러 책이 등장하다보니 어떤 책을 가장 가지고 싶은지를 나도 모르게 상상하게 된다. 과거였으면 문의 책이 가지고 싶었겠지만 지금은 치유의 책이 꼭 필요하다. 많이 아픈 조카가 꼭 건강하게 일어설 수 있을거라는 작은 바람을 담아본다.
